‘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다소 진부할 수 있으되, 드라마 <동백꽃이 필 무렵>의 마지막 대사다. 우연히 마지막 화를 보게 되었고, 내용도 잘 모른 체 맞닥뜨린 그 대사로 인해 조그만 의문이 일었다. 진짜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사람’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사람’ 냄새를 피우기 시작하더니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으로 우리 앞에 세웠고.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 위에 담쟁이를 그려 올린 대선 슬로건을 내걸며 ‘사람’ 냄새를 피워내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사람 중심의 경제’에 대한 관심들이 늘고 있다. 자본과 권력 중심의 사회 경직성이 아직도 강고하게 버티고 있지만, 사람을 중심에 두는 경제활동을 하겠다는 사회적경제 기업과 마을기업들의 지평이 점차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사람 중심 경제활동의 대표 격인 (사회적)협동조합은 2020년 10월 기준 전국 2만 개를 넘어서며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마을 안에서 사람을 발굴하고 경제활동을 개발하는 마을활동가들의 수도 점차 늘고 있고, 직업으로서의 마을활동가 논의도 활발하다.
대학시절 사회철학으로서의 경제사상에 관심을 가졌다. 입사 후에는 자본주의에 흠뻑 취해 지냈고, 5년 전에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사회적기업을 전공하면서 ‘사람 중심의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대학시절 사회철학으로서의 경제관념보다는 좀 더 정치하게 사람 중심의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경제활동에 대한 고민을 좀더 많이 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관계에 집중되었다면, 요즘은 경제의 대상으로서의 사람에 주목하고 있다. 물적 재화나 노동력의 대상 너머 그 어디엔가 ‘사람 냄새나는 경제’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물적 기반으로서 동네책방을 만들었고, 소유 형태(다소 비정상적이지만)는 협동조합으로 구성해서 8개월째 운영하고 있다.
5년 동안 사람 중심의 경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늘 가졌던 의문이 사람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한가, 사람 중심의 경제를 위한 운영원리는 무엇인가, 소위 ‘사회적경제 원론’은 존재하는가 등 사람 중심 경제의 실체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았기에 직접 한번 해보자는 어느 정도의 젊은 치기에다 20여 년 자본주의 기업에서 느꼈던 사람의 대상화, 자원화에 대한 대안을 직접 찾아보자는 도전의식이 더해져 사람 중심의 경제활동에 일보를 내디뎠지만, 처음 그 의문들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우선은 사람 중심 경제를 이끌어 나갈 체계가 허약하다. 협동의 원칙, 사회적경제의 주요 이론 등은 많지만 현실사회에서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현실 매뉴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는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사회적)협동조합이지만 들여다보면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돈 중심의, 수익성 위주의 경제논리만 무성하다.
무엇보다 문제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람 중심 경제의 가치와 지향점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 나가려는 사람(활동가)도 없을뿐더러, 사회적경제 영역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사람 중심 경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 구호만 드날릴 뿐 실천은 미약하다.
사회적경제는 자본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기업 운영원칙을 다시 정립하고 그런 운영과정에서 참여자들의 민주적 의식 성장과 공동체 및 지역사회의 발전을 담보해 나가기 위한 새로운 경제활동의 방식인데, 그 안에 사람 중심의 운영방식이 없으면 고갱이가 빠진 껍데기만 남을 뿐이다. 도처에 껍데기는 지천으로 쌓여가고 있다.
사람 중심 경제는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에게 연결되는 경제로 나름 이해하고 있다. 그 대상은 지금까지 소외받아 왔던 장애인, 노령층, 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함께 경제활동을 하고, 출자금(자본) 중심의 의사결정구조를 출자금에 상관없이 1인 1표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며 숙성해 나가야 한다. 이익금 중 일부를 지역사회를 위해 환원하게끔 하는 구조를 앞으로 시민사회 중심의 마을공동체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라는 생각들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 중심 경제는 이런 가치를 이해하고 공유하고 널리 퍼뜨려서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사람으로 연결되고 그 연결을 튼실하게 만들어 나가는 사회활동이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치를 가진 사람 옆으로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서 있고 더 튼튼하게 연결되고 함께 공유할수록 사람이 사람에게 진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으로부터 착화된 작은 불이 사람을 매개로 번져나가 결국 한 덩어리 들불로 타오를 때의 그 힘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앎이 행동으로 나타나기에는 사람 중심 경제의 기반은 너무나 허약하다.
그 허약함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Parker J. Palmer)에 따르면, ‘마음은 감정을 넘어선 자아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아직 우리의 마음은 감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거 같다. 마음이 바뀌어야 태도가 바뀌고, 태도가 바뀌어야 행동이 일어나게 될 텐데, 우리는 감정에 휘둘려 마음을 제대로 쓰지를 못한다. 감정적으로 상하면 마음을 거두고 웬만해서는 열지 않는 감정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변화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삶과 사회로, 더 큰 지평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마음의 습관을 길러야 한다. 마음의 습관이란 인간의 다양한 관념과 의견, 생각의 습관을 형성하는 지적이고 도덕적인 것의 전체라고 말한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Tocqueville)의 견해를 빌리지 않더라도 마음의 민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을 더 키워야 할 것 같다. 마음의 민주적 습관화를 통해 독립적인 개인주의와 상호의존적인 공동체주의 사이의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해 나가는 일이 어쩌면 ‘사람 중심의 경제’를 위해 더 시급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다.
300여 년 동안 인간의 절대 욕망과 개인주의에 기대어 폭주해 온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비해 그 발전의 그늘에서 숨죽이며 낮은 사람들의 경제활동으로 근근이 연명하다 근 20년래 주목받고 있는 사람 중심의 사회적경제를 비교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자본 중심의 경제체제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경제의 흐름을 일반화해 나가기 위한 그 길에서 조금 경험해 본 바로는 여전히 사람이 문제였다. 사람 중심의 경제활동에서 사람이 문제라는 이 역설은 앞으로 또 인류에게 어떤 체계를 생산해 줄 것인지 궁금하다. <동백꽃 필 무렵>의 그 마지막 대사는 우리의 현실 경제에 대해 묻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