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자란 마음

봄산은 삶의 방편이었다

by 홍시궁

토요일 아침마다 글동무와 불암산을 오른다. 어제 비가 내린 뒤여서 산에는 좋은 냄새로 가득하다. 진한 솔 냄새, 풋풋한 흙냄새, 산을 울리는 산새들의 울음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봄이 오는 냄새에 아찔했다. 산을 톺아 오르는 길을 따라 걸으며 생각은 멀리 고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어릴 적, 이맘때가 되면 우리 동네 꼬맹이들은 산으로 올랐다. 정월대보름이 지나면서 바람내가 한결 고소해지고 햇살에 따순 숨이 배어서 바깥 나들이하기애 썩 좋았다. 얼었던 땅도 풀리면서 조금 보슬보슬해지고 땅 밑에 얼었던 서리도 다 녹아내려서 산길을 걷기에도 맞춤했다.


동네 꼬맹이들은 저마다 곡괭이나 삽을 어깨에 걸머지고 손에는 밴또 하나 들고 대여섯 명이 무리를 이루었다. 산허리를 따라 난 길을 오르다 보면 온갖 산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소나무가 몸을 여는 냄새, 계곡에 물이 풀리는 소리, 땅속 새싹들이 몸을 틔우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 봄냄새에 취하면 취할수록 동네 꼬맹이들도 헛바람이 들어서 "오늘은 내가 젤 큰 거 캘 끼대이" 하는 큰소리가 봄이 오는 하늘에 울렸다.

한 시간 반을 올라 햇살 잘 드는 뒷산 중턱쯤에 자리를 잡고 칡넝쿨을 찾는다. 해동 무렵에 캐는 칡이 제일 맛있고 약에 좋다고 어른들이 일렀다. 줄기가 최대한 큰 놈을 골라잡고 주변 잡풀을 제거한 다음 땅속으로 곡괭이질을 해나간다. 칡은 어느 정도 땅속으로 자맥질하다 옆으로 뻗는 성질이 있어서 삽질과 곡괭이질이 두어 시간 계속된다. 이윽고 칡이 진갈색 몸통을 드러내면 곁가지를 잘라내 암칡인지 수칡인지 먼저 살핀다. 수칡은 나무결 같아서 술이나 약으로만 쓰이는 반면, 암칡은 하야노름한 갈분과 수분이 많아 씹어먹기 좋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 캐고 나면 옹기종기 모여서 각자 싸온 밴또를 깠다. 볶은 김치, 멸치무침, 검은콩자반 등 반찬이야 매일반이었지만, 봄이 오는 산에서 산자락에 내려 쌓이는 햇살을 받으며, 살큼한 산 냄새를 맡으며 먹는 밴또는 그야말로 별미였다. 오후까지 작업하고 나면 묵지근할 정도로 칡을 지게에 싣고 산을 내려오곤 했다.

그러다,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열리고 개나리가 노랗게 점을 찍으면 앞산, 뒤산에도 진달래꽃이 망울망울 오르기 시작했다. 어릴 때 고향에서는 진달래꽃을 '창꽃'이라 불렀는데, 온산을 돌아다니며 창꽃을 따먹느라 하루해가 짧았다. 분홍빛 선연한 창꽃을 볼이 미어터져라 씹고 나면 꼬맹이들 혓바닥에도 분홍 물이 들곤 했었다. 서로 쳐다보며 짓궂게 웃던 그 어린 미소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루는 18살 큰누나가 꽂지짐을 해주겠다길래 마대자루에 한 가득 창꽃을 따다 날랐었다. 마당에 솥뚜껑 걸치고 들기름을 둘러가며 온 가족이 앉아 부쳐먹던 그 맛있는 화전(花煎)의 기억은 내 삶의 단백질 중 하나다.

봄산 언저리에서도 온통 전쟁이 벌어졌다. 봄햇살이 밟고 지나간 자리마다 쑥이며 냉이며 달래가 겨우내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여린 새싹들로 아우성이었다. 그 자리에는 동네 여자애들이 대바구니를 대놓고 쑥, 달래, 냉이를 담았다. 겨우내 땅속에서 키워올린 그 쌉사름한 냄새는 아직도 코끝에 맴돈다.

봄산은 삶의 방편이었다. 지금에야 한때의 따뜻한 추억으로 배어나지만, 어릴 적 나에게는 살이를 위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아픈 생활의 현장이었다. 갓 물이 오른 솔잎도 베어물고 산에 지천으로 흐드런진 잔디도 캐어 먹으며 주린 배를 달래었다. 자연이 내어준 그 선물 같은 풀잎들로 내 비타민은 채워졌고, 그렇게 몸을 키울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봄날 산에 들면 어릴 적 기억들이 군데군데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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