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자란 마음

1980년, 그 겨울의 X-마스

by 홍시궁

어릴 적,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게 국민학교 4학년 때, 그러니까 1980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10여 리(4km)쯤 되는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에 오갈 때 재미있는 풍경이 있었다. 아침에는 그 마을 학생들이 모두 마을 초입에 모여 '동네 반장'의 인솔 하에 '거문마을'이라 쓰인 깃발을 들고 학교로 갔다. 오후에 학교가 끝나면 상급반, 하급반으로 나뉘어 또 마을 깃발을 들고 다 같이 모여서 집으로 갔다. 학교 가기가 콜레라 주사만큼 싫었던 그때 다 같이 모여서 학교 가는 길은 무척 즐거웠다. 또래 친구들과 갖은 장난을 다 치며 학교로 오가는 그 시간만큼은 우리들의 세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설핏 웃음이 물리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의 유쾌한 추억의 한 자락이다.

12월 20일로 기억하는데, 초겨울 바람이 맵짠 몹시 추운 날이었다. 시원찮은 외투에 언 손을 겨드랑이 사이에서 녹이며 동네 아이들과 또르르 마을 초입에 들어섰는데, 스무 살은 넘어 보이는 어떤 누나가 추위에 떨며 거기에 서 있었다. 나와 또래 친구 몇몇은 좀 있다 산으로 토끼몰이를 갈 생각에 마냥 들떠서 신나게 떠들며 못 본 척 지나쳤다.

그런데, 그 누나가 우리를 보더니 예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얘들아, 학교 갔다 오는 거니?"

순간, 머릿속으로 띵 하고 파문이 일었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말씨였다. 마치 이른 봄에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소리처럼 맑은 소리였다. 우리의 잽싼 걸음을 일시에 멈춰 세웠다. 동네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갈색 목도리를 두르고 빨간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 입음새 하며 미소 띤 얼굴이 참 예뻤다.

"예. 와예?"

내가 뚱하게 대답했다. 누나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자꾸만 실실 웃었다.

"내일모레가 성탄절이잖아. 그래서 너희들한테 선물도 주고 재미있는 놀이도 같이 하면 어떨까 해서."

"성탄절이 먼데예?"

"아, 성탄절을 잘 모르는구나. 그럼 잠시 나하고 같이 가서 얘기 좀 듣고 갈래. 초코파이 줄게."

초코파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또래 몇몇은 누구랄 것도 없이 벌써 그 누나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누나는 아래뜸 어떤 집의 문간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6평 남짓한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좋은 냄새가 났다. 벽에는 책에서 보았던 십자가가 걸려 있었고 방 한 켠에 놓인 책상 위에는 어떤 사람이 못에 박힌 채 고통스러워하는 조그만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그날 우리는 성탄절이 어떻게 유래했는지, 책상 위에 놓인 사람이 예수이며 예수가 누구인 지 그리고 성탄절을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라고 부른다는 등의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그리고, 누나가 크리스마스 카드도 직접 만들어 주었다. 난생처음 보는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겉면에는 'Merry X-mas'라는 글씨와 함께 뿔 달린 사슴이 숲 속으로 썰매를 끌고 있었고, 속지에는 누나의 예쁜 글씨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지금 기억하기에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더욱 행복하기를 바래' 정도의 내용이었다. 그 카드는 아마 고향집 다락방 어딘가에서 40여 년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것 같다.

며칠 후,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밤사이에 내린 사락눈을 밟으며 누나한테로 갔다. 동네 아이들 10여 명이 벌써 와 있었고, 누나는 "메리 화이트크리스마스!" 하며 반겼다. 성탄을 축하하는 공연을 보여준다고 했다. 누나와 처음 보는 어른 몇 분이 빨간색 고깔모자와 외투를 입고 예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징글벨 징글벨...'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거였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가락이 입에 착착 감기는 게 부르기도 듣기도 좋아 보였다.

잠시 쉬는 시간에 나도 고깔모자와 외투를 입어 보았다. 누나가 '꼬마 산타 같다며' 좋아해 줬다. 간식으로 초코파이와 처음 먹어보는 귤이 나왔는데, 다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어찌나 빨리 먹던 지 삽시간에 없어졌다. 연극에서는 예수님이 태어나는 장면, 자라면서 고난을 겪는 모습 등이 이어졌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대목에서는 여자아이 몇몇이 홀짝거리기도 했다.

그 연극을 끝으로 초코파이로 인해 시작된 내 처음이자 마지막 크리스마스 예배가 끝났다. 그리고, 누나는 다음 해 봄 무렵 마을을 조용히 떠났다, 아쉽게도. 누나는 당시 교회가 없던 시골을 돌며 선교 활동을 하던 '서울 전도사님'이라는 말을 몇 달 후에 들었다.

그 멋진 경험 탓이었을 게다. 그다음 해부터는 12월 20일쯤이 되면 'X-마스 카드'를 만드느라 난리를 쳤다. 마음에 드는 글과 그림이 안 나오면 몇 번이라도 박박 써가면서 손 크리스마스 카드를 20장 정도씩 만들곤 했다. 선생님한테 주기도 하고 마음에 두었던 여자아이 책상 서랍에 아침 일찍 몰래 넣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에는 여자 이아들과 모여 놀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아직 시골이어서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분위기가 강했던 지라 평소에는 같이 놀기가 어려웠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어른들이 왠지 방을 허락해 주곤 하셨다. 그 날을 또 얼마나 기다렸던지. 어른들 몰래 샴페인도 사고 산에서 나무를 캐다가 조그만 트리도 만들고 과일이며 과자들을 잔뜩 사서는 날이 새도록 놀기도 했었다. 그렇게 'X-마스'는 우리에게 큰 명절의 하나로 자랐다. 지금이야 매년 치르는 시시한 이벤트의 하나일 뿐이지만.

겨울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1980년, 그 겨울의 그 'X-마스'는 순수했던 11살의 동심에 살풋한 흠모와 애달픈 기다림의 초조함을 경험해 주었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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