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 시작된 믿음, 그리고 광야의 부르심
처음 예수를 만나다
내가 예수를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
그분은 단지 세상의 진리를 가르치는 위대한 스승쯤으로 여겨졌다.
진리에 목마르던 젊은 날,
나는 성경을 펼쳐 어린 시절의 예수를 더듬듯 찾아 읽었다.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던 열두 살 예수의 모습은
내게 놀라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주었다.
“역시 위대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다르구나.”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믿음이 깊어질수록
그 생각은 산산이 무너졌다.
예수는 천재도, 성인도, 단순한 영적 교사도 아니었다.
그는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 자신,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었다.
그분은 일시적인 ‘위대한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하나님을 인간의 틀 속에 가두어 이해하려 했다.
그 오해가 깨어진 순간,
믿음은 머리의 영역을 떠나 영혼의 깊은 자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번연의 나그네, 그리고 나
존 번연도 그랬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떨던 한 나그네의 환상을 통해
『천로역정』의 첫 장을 써 내려갔다.
그 장면 속 한 남자가 있었다.
낡은 옷차림, 등에 무거운 짐을 진 채 손에는 책 한 권.
그가 그 책을 읽을수록 얼굴이 일그러지고,
마침내 그는 울부짖었다.
“도대체… 내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 절규는 인간의 양심이 깨어나는 순간의 외침이었다.
인생의 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질 때,
비로소 믿음은 시작된다.
그가 손에 든 책은 성경이었다.
말씀은 그를 향해 번개처럼 내리 꽂혔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라.” (벧후 3:10)
그 말씀은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는 더 이상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죄, 거짓, 위선, 정죄의 말들—
그 모든 것이 짐이 되어 등에 얹혀 있었다.
가족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 요즘 왜 이러는 거예요?”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에게조차 미친 사람으로 보였다.
결국 그는 홀로 길을 나섰다.
짐은 여전히 무거웠으나,
그 짐이 그를 떠밀어 순례길로 이끌었다.
나의 방황, 나의 골목
나 또한 방황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절망과 공허 속에서
“나는 왜 태어났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를 묻곤 했다.
가난한 집, 일곱 남매, 좁은 방, 비탈진 골목.
그 골목의 기억은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어느 날, 누나가 몰래 남자를 만나러 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일을 어머니께 일러바쳤다.
그리고 누나는 외출금지를 당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는 시신경 종양 수술 중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을 실감했다.
그의 관 옆에 서서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과 공포로
몸이 떨려왔다.
그때부터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 질문이 내 영혼 깊이 새겨졌다.
믿음의 시작
누나의 죽음 이후, 나는 친구의 소개로
작은 성서침례교회를 찾아갔다.
미국인 선교사가 목회하던 그곳은
허름했지만 진실한 사랑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너는 죄인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침례를 받았다.
물 위로 올라올 때,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내 안의 눈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믿음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신앙은 여전히 질문과 의심 속에서 자라났다.
“정말 마리아가 남자를 알지 않고 아들을 낳을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내가 과학도로서 싸워야 할 신앙의 시험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의문은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로 변했다.
믿음은 이성의 끝에서 피어나는 것이었다.
광야에서의 시험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로 나아가셨다.
그곳에서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이 돌들로 빵을 만들어 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내게 경배하면 세상 모든 영광을 주겠다.”
세 번의 시험,
세 번의 말씀이 응답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분만 섬기라.”
그분의 승리는 말씀 위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그 장면을 수없이 떠올린다.
광야는 그분의 것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청소년 시절, 광야의 한복판에서
내 청소년기는 하나의 광야였다.
꿈은 컸으나 현실은 좁았다.
서울의 명문대를 향해 달렸지만,
결과는 좌절이었다.
“믿으면 주신다”는 말씀을 붙들었지만,
응답은 오지 않았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는 하나님께 서운했다.
아버지는 은행 옆의 작은 가게에서
자전거를 지켜주며 생계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재봉틀 앞에서 밤을 새우며 명찰을 새기셨다.
어느 밤, 미싱 바늘이 어머니의 손가락을 꿰뚫었다.
그 붉은 머큐로크롬 자국이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아버지는 점점 술에 의지했고,
가난한 현실과 사회적 모멸감 속에서
술은 그분의 피난처이자 독이 되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한밤중에 집안을 뒤흔들었고,
나는 공포 속에서 신을 불렀다.
절망의 그림자 아래에서
성경은 말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8)
이 말씀은 단지 도덕의 명령이 아니다.
영적 경고이다.
우리의 정신을 마귀에게 내어주지 말라는 하나님의 외침이었다.
아버지가 예수를 믿고 술을 끊은 것은
이미 뇌졸중이 찾아온 뒤였다.
그분은 병상에서 하나님을 찾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나 그 술의 영은 끝나지 않았다.
동생에게, 또 다른 가족에게 옮겨갔다.
결국 동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날, 나는 절망의 감옥에 갇혔다.
무너진 가족, 사라진 사랑,
남은 자의 슬픔 속에서 나는 다시 외쳤다.
“도대체… 내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순례의 시작
그 외침은 나를 다시 주님께로 돌려세웠다.
나는 알게 되었다.
광야는 버림받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리라는 것을.
그때부터 나의 천로역정이 시작되었다.
죄의 짐을 벗기 위한 여정,
하나님을 향한 길,
그리고 진리를 그리려는 여정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롬 12:2)
그 말씀은 지금도 나의 첫 장면 위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