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은 전도자의 가르침을 따라 마침내 좁은 문 앞에 이르렀다.
높은 담벼락과 그 사이에 난 좁은 문은 한눈에 보아도 결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문은 닫히지 않았다. 언제든지 오는 자는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문 앞에 서서 잠시 주저했다.
등에 진 무거운 짐이 여전히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
크리스천은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선의'라는 이가 나와 그를 맞아 주었다.
좁은 문은 항상 열려 있지만, 억지로 들어갈 수는 없다.
믿음의 두드림이 있을 때, 은혜의 손길이 그 문을 열어준다.
선의의 권면
선의는 크리스천을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당신은 옳은 길을 찾아왔습니다. 이제 시온성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십시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끝에는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크리스천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 주었다.
“이 길은 좁고 험합니다. 때때로 조롱과 핍박을 받을 것이며, 유혹의 손길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치 말고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 주실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다시 허리띠를 동여매고 좁고 곧은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신앙의 길은 결코 넓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좁고 곧은길을 걷는 이에게 하나님은 항상 동행하시며,
성도들을 격려하는 선의와 같은 이들을 세워 주신다.
좁은 길의 의미
좁은 문, 좁은 길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 7:13-14)
신앙은 군중을 따라가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과 다른 방향으로 걷는 외롭고 협착한 길이다.
그러나 바로 그 길 끝에서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려 있다.
세상은 넓은 길을 권하지만, 좁은 길은 오직 믿음으로만 걸을 수 있다.
그것은 외로운 길이지만 동시에 가장 복된 길이다.
황새와 동행하는 좁은 길
나는 좁은 길을 묵상하며 황새를 떠올렸다.
황새는 언제나 드넓은 하늘을 날지만,
동시에 아주 좁은 습지와 논둑을 따라 먹이사냥을 한다.
그 길은 결코 넓지 않지만, 생명을 품는 자리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황새(멸종위기 1급, 국제적 보호종)를 복원하려 했던 자연과학자다.
인생의 순례길에서,
아직 자연에 현존하는 황새(Oriental Stork)의 종조(種鳥)를 얻기 위해
러시아 아무르 강가 대평원의 습지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내가 교수로 재직하던 대학 연구실에서 15년의 노력 끝에 인공 번식을 성공시켰다.
2015년에는 일본(2005년)에 이어 한국에서도 10마리의 황새를 자연에 첫 복귀시켰다.
그 후 나는 그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했고,
이 나라의 황새 복원 사업은 한 지자체 단체장의 책임 아래 편입되었는데,
해마다 무분별하게 자연에 방사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황새를 자연에 풀어놓으면 복원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황새가 그들의 생각대로 자연에 방사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외쳐보았지만, 모두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항상 다수의 선택이 옳은 길은 아니다.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회복 없이는 황새들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결국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황새가 우리나라에 많이 번식하며 살았던 시절은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때 황새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번식하며 살았는지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또 번식이 끝난 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자연과학자로서
과거 우리나라 황새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해 뜨는 동방의 나라’에서 어떻게 텃새로 살아왔는지 밝히고자 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한반도에 한민족이 살기 이전,
황새들은 러시아 아무르 강가 습지에서 살았다.
그들은 동방의 나라, 아름다운 습지를 발견하고, 한두 마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황새들은 사람 사는 마을까지 날아와 민가 주변 나무 위에 둥지를 틀었다.
이 황새들은 다 자란 새끼들과 함께 남쪽으로 날아갔는데,
아마 중국 양쯔강이 겨울 서식지였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한반도로 돌아와 번식을 하며 수천 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농산물 생산을 늘리려 농지개간과 농약 사용을 시작했고,
육식 위주 식단으로 농경지를 축산 폐수로 오염시켰다.
이렇게 수천 년을 살아온 황새가 불과 1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모두 사라졌다.’
하나님은 태초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 땅을 창조하셨다.
그분은 황새와 같은 생물들을 숫자로 부르시지만,
사람은 이름으로 부르며 다르게 대하셨다.
내가 황새 복원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여기에 닿아 있다.
황새가 살아가는 곳의 사람들, 즉 농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새를 증식시키고 보니,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내게 있어 ‘좁은 문’은 이 나라에서 황새복원이란 문이었다.
나의 순례길도 그러했다.
좁고 불편해 보이지만, 그 길은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밝히는 통로가 된다.
황새를 복원하는 일은 마치 좁은 문을 지켜내는 일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왜 그토록 힘든 일을 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우회로가 없었다.
반드시 좁고 험한 길을 통과해야만 했다.
과학자의 눈, 신앙인의 눈
나는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좁은 길을 묵상할 때마다 깨닫는다.
과학의 길은 수많은 가설과 실패로 가득하다.
그러나 실패와 방황 속에서 진리에 가까워지듯,
신앙의 길도 고난과 인내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예수께서 좁은 문으로 우리를 초대하신 것은, 우리 삶을 힘들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생명에 이르고, 멸망을 피하도록 인도하시기 위함이다.
다시 순례길에서 짐을 벗다
크리스천은 등에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구원’이라는 담을 지나 십자가 언덕에 이른다.
그곳에서 그는 무거운 짐을 벗고, 나, 순례자는 십자가 우주선을 타고 무거운 짐을 벗는다.
하나님은 태초에 지구라는 우주선을 만드셨다.
그 안에 가장 먼저 동식물을 실으셨고,
마침내 첫 번째 승객인 아담을 태우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 우주선에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타게 되었고,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조종사, 하나님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만든 우상들을 신이라 부르며, 조종실을 향한 시선을 거둬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류는 죄라는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 사망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진흙탕 속을 헤매는 허무한 존재,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계획하고 계셨다.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의 삶을 회복시키고,
그 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는 위대한 설계도를 만드셨다.”
(로마서 8:28-29)
지금 이 순간, ‘나’라는 크리스천은 좁은 문을 통과해 드디어 이 우주선에 올라탔다.
한 승무원이 다가와 십자가 표시가 있는 좌석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내가 등에 메고 있던 무거운 죄의 짐을 받아 주었다.
나는 짓눌리던 그 무게에서 해방되어 기쁨에 겨워 외쳤다.
“주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셔서 고통을 당하셨기에
내가 이제 쉼을 누리며,
그분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셨기에
내가 생명을 얻었구나!”
곧이어 두 번째 승무원이 다가와 나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혀 주었다.
그 순간, 한 말씀이 떠올랐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였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스가랴 3:4)
사도 바울도 말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
곧이어 세 번째 승무원이 다가왔다.
그는 나의 이마에 인을 치고,
단단히 봉인된 두루마리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이 순례길인 우주여행 동안 이 말씀을 자주 펼쳐보십시오.”
그 순간, 또 하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13)
나는 결심한다.
이 우주선이 항해하는 동안
이 두루마리, 성경 말씀을 자주 펼쳐보고, 그 말씀을 삶의 나침반 삼기로.
이 지구는 단순한 행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종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는 하늘을 향한 여정의 우주선이다.
그리고 나는,
그 탑승권을 은혜로 받은
한 명의 순례자 승객이다.
순례자의 결단
크리스천은 좁은 문을 지나 좁고 곧은길로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고, 등에 진 짐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마음에는 새로운 소망이 자리 잡았다.
그는 결심했다.
“나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길을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
좁은 길은 하루의 선택이 아니라 평생의 결단이다.
매일같이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에서만 무거운 짐을 벗고 참된 자유와 소망이 주어진다.
마무리 묵상
좁은 문은 우리 앞에 열려 있다.
그러나 억지로 들어가는 이는 없다.
오직 믿음으로 두드리고, 겸손으로 고개를 숙인 자만이 그 길을 걸어간다.
나 역시 좁은 문 앞에 선 순례자다.
황새가 좁은 둑길을 따라 생명을 품듯,
나의 발걸음도 좁은 길 위에서 생명을 품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