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곤고의 언덕에서

곤고한 계절

by 박시룡

삶에는 밝은 계절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반드시 곤고한 계절이 다가온다.

그때는 ‘믿음’이라는 단어조차, 성경의 한 글자조차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도는 메아리 없이 흩어지고, 하나님은 멀리만 느껴진다.

나 또한 그러한 시간 속에 있었다. 그때 나는 한 마리 황새의 죽음 앞에 서 있었다.


황새의 죽음과 나의 곤고함

내 곁에 있던 한 마리 황새, ‘산황이’는 먼 이국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기록이 아니라, 생명과의 교감이 끊어진 허탈감이었다.

나는 그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 새의 죽음을 아파할 이는 거의 없었다.
그 사실은 나를 깊은 외로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단순한 동물학자의 감정 과잉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자로서,

창조의 질서 속에서 사라지는 생명 앞에 서게 될 때 오는 무거운 침묵이었다.


6-1 Timorous and Mistrust (2022).jpg

겁쟁이와 불신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은 ‘허례’와 ‘위선’을 떠나 ‘곤고의 언덕’으로 향한다.
그곳은 영적 침체의 상징이며, 믿음의 길 위에 반드시 지나야 할 고갯마루다.

언덕 중턱에서 크리스천은 두 순례자를 만났다.
그들의 이름은 겁쟁이와 불신이었다.

'겁쟁이'는 말했다.
“앞으로 더 위험한 일들이 기다리는데,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겠는가? 차라리 돌아가겠다.”

'불신'은 말했다.
“저 앞에 사자가 있다. 계속 가면 사자의 밥이 될 뿐이다!”

그들은 아직 오지도 않은 고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믿음의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갔다.
그 길은 곧 멸망의 도시로 향하는 길이었다.

미래의 불안을 핑계로 믿음을 포기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두려움은 결코 안전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멸망으로 이끈다.


되돌아갈 수 없는 이유

크리스천은 알았다.

그들이 되돌아가는 길은 불과 유황으로 타오르는 멸망의 도시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더디더라도, 위험하더라도 앞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손과 무릎으로 기어 오르던 그는 기진맥진한 끝에,

언덕 중턱의 큰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러나 깊은 잠에 빠진 사이,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두루마리는 십자가 앞에서 받은 구원의 증표,

천성에 들어갈 수 있는 표였다.
그것을 잃은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것이었다.


곤고한 순간의 교훈

이 장면은 우리의 현실과 같다.
곤고한 때에 우리는 가장 기본을 놓치기 쉽다.

성경을 덮고, 기도를 멈추고, 예배를 잊는다.
마치 두루마리를 떨어뜨린 크리스천처럼,

우리도 구원의 감격과 확신을 잃어버린다.


✍ 묵상 질문

· 나는 지금 겁쟁이처럼 도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 나는 불신처럼, 오지도 않은 문제를 미리 걱정하며 물러서고 있지 않은가?

· 나는 두루마리, 곧 복음의 기쁨을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두루마리를 손에 쥐다

6-2 The Pilgrim Who Fell asleep Under a Tree (2022).jpg 그림 6-2: 곤고의 언덕의 나무 아래에서 잠든 크리스천

황새 한 마리의 죽음이 내 마음을 멈춰 세웠던 날,

나는 깨달았다.
나도 곤고의 언덕을 기어오르는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그날 나는 다시 두루마리를 손에 쥐었다.
십자가 앞에서 받은 은혜,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다시 일어설 힘을 붙잡았다.

게으름과 영적 졸음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는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일어나 두루마리를 붙들라 하신다.


6-3 The Stork That Woke Me Up (2017).jpg 그림 6-3: 순례자의 잠을 깨운 황새

산황이의 죽음과 깨어나는 신앙

그의 영적 잠을 깨운 건, 단지 성경 말씀만이 아니었다.

한 마리 황새, 바로산황이'였다.

산황이는 단순한 철새가 아니라,
자연과학자가 생명의 신비를 연구하며 꿈을 담았던 존재였다.
2015년 자연 복귀되어 첫 비행을 시작한 산황이는
1,000km가 넘는 바다를 단독 비행하며
전례 없는 이주 경로를 보여줬다.

6-4 Storks flying over high waves in the Great Sea (2015).jpg 그림 6-4: 망망대해를 쉼 없이 날았던 산황이

그러나 산황이의 발신음은 일본 오키노에라부 섬 근처에서 끊겼다.

며칠 뒤, 일본 언론을 통해 산황이가 소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황망한 마음에 공항 측에 항의를 하고, 일본 검찰청에 고발까지 했지만,
돌아온 것은 ‘불기소 처분 통지서’ 한 장뿐이었다.

과학자로서의 꿈, 민족 주권에 대한 자존심,
그리고 무엇보다 산황이에게 아무 일도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과연 내 나라는 주권국이 맞는가?”
“나는 과학자로서 이 생명을 끝까지 지켜냈는가?”
“산황이는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가?”

크리스천이 잠든 사이 두루마리를 잃었듯,

나 역시 산황이의 죽음 앞에서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 사건은 내게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그것은 곧 영적 각성이었다.

6-5 Clouds, Storks, and Airliners (2016).jpg 그림 6-5: 일본 오키노에라부 공항에서 산황이의 마지막 모습

고난의 의미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행 14:22)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신다.” (롬 8:26)

산황이의 죽음은 나를 무너뜨린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다시 말씀을 붙잡게 한 계기였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깨어남의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

나는 종종 질문한다.
“나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는가?”
“황새 복원은 내 열정일 뿐인가, 하나님의 사명인가?”

히브리서 저자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힘으로 자신을 완전한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가 스스로 훌륭해지려는 헛된 수고에서 자유케 되었다(히 9:15)”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그동안 황새를 되살리려는 작업은 내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그것은 하나님이 만든 생명을 새롭게 하는 믿음의 여정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순례자로 다시 서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조상들을 말한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위대하게 만들려 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드셨다..

나도 이제 그러고 싶다.
내 논문, 내 상, 내 업적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고 싶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살고 싶다.


마무리 고백과 기도

“지금 내 삶은 나의 삶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날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갈 2:20)

이제 나는 내 의지가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순례자의 길을 걸을려 한다.
황새처럼 연약할지라도 믿음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겠다.


✍ 순례자의 기도
“하나님,

제가 잠들어 있던 시간에 두루마리를 떨어뜨린 채 사명을 놓쳤음을 고백합니다.

산황이의 죽음을 통해 다시 깨어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끝까지 걸어가게 하소서.

겁쟁이도 불신도 되지 않게 하시고, 진리의 길에서 잠들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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