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아볼루온

고난과 맞서 싸우는 순례자의 결의

by 박시룡

아볼루온은 왜 오는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그 시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앙 때문에 더 날카로운 고난이 찾아올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복을 깨뜨리시고,

더 깊은 사랑으로 이끄시기 위해 아볼루온조차 허락하신다.

“황새와 함께 걷는 이 순례의 여정에서도,
아볼루온의 칼날은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무저갱의 사자

아름다운 집을 떠난 크리스천은 평안의 시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무시무시한 존재와 맞닥뜨렸다.

그의 이름은 아볼루온.
성경은 그를 “무저갱의 사자”(계 9:11)라 부른다.

8-1 Avoluon  (2022).jpg 그림 8-1: 아볼루온과 맞서 싸우는 크리스천

크리스천은 잠시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믿음의 전신갑주를 입은 자만이
이 싸움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너는 왜 멸망의 도시를 떠났느냐?”
“너는 내 신하였거늘 어찌 나를 배신하였느냐?”

아볼루온의 외침 앞에서 크리스천은 단호히 말했다.

“나는 죄의 삯이 사망임을 깨달았고,
네 나라에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떠났다.
하나님의 자비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싸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거래와 협박

아볼루온은 유혹했다.
“돌아오라. 그러면 세상의 부귀와 성공을 주겠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거절했다.
“네가 줄 수 있는 건 오직 죽음뿐이다.”

아볼루온은 조롱했다.
“너는 이미 반역자다.
믿음도 흔들렸고, 넘어졌던 자가 아니냐?”

크리스천은 고백했다.
“맞다. 나는 넘어졌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그분은 나를 용서하신다.”


싸움은 반드시 온다

이제 대화는 끝이었다.
아볼루온은 포효하며 덮쳐왔다.
크리스천은 쓰러졌고, 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마지막 힘을 다해 검을 다시 움켜쥐며 외쳤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다.” (미가 7:8)

그 한마디는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신앙의 선언이었다.


오늘의 아볼루온

아볼루온은 단지 신화적 존재가 아니다.
그는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고난의 이름으로,
실패의 그림자로,
우울의 어둠으로,
관계의 상처와 질병, 그리고 외로움으로.

그는 속삭인다.
“너는 실패자야. 하나님이 너를 정말 용서하셨을까?”

그러나 순례자는 대답해야 한다.
“나는 약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 묵상

· 내 삶의 아볼루온은 어떤 모습인가?

· 나는 도망치고 있는가, 맞서 싸우고 있는가?

· 떨어뜨린 검, 즉 말씀을 다시 붙잡고 있는가?


권사님 딸의 죽음과 욥기의 위로

신실한 권사님의 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믿음의 여인이었으나, 그 죽음은 공동체를 흔들었고
권사님은 절망 끝에 교회를 떠났다.

이것이 바로 현실의 신앙이다.
믿음이 있어도 고통은 찾아온다.

욥도 그랬다.
그는 의인이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재앙 앞에 무너졌다.
그의 질문은 곧 우리의 질문이다.

“왜?”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 어디 있었느냐?” (욥 38:4)

우리는 모든 답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의 자리에 계신다.

8-2 Job (2022).jpg 그림 8-2: 재앙 앞에서 여호와께 항의 하는 욥

천국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야말로 너희가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마 5:4, 메시지)

아마도 그 권사님은 지금쯤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겨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스승이 아니라,
하늘의 질서를 가르치신 분이다.
그분의 복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잃음 속의 복, 낮아짐 속의 복이다.

8-3 The Early Church Listening to the Sermon on the Mount (2023).jpg 그림 8-3: 산상수훈을 듣는 초대 교인들

그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죄책에 눌려 살지 말라.
강자의 말에 휘둘리지 말라.
이기심으로 움켜쥐며 살지 말라.
냉소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말라.”

천국의 윤리는 공평하지 않지만, 더 아름답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 -끝에서 시작되는 은혜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마 20:1–16)는
천국의 질서가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 보여준다.

일찍 온 자도, 늦게 온 자도 똑같은 품삯을 받는다.
세상의 정의로 보면 불공평이지만,
하나님의 정의는 은혜요 자비다.


감옥에서 부활한 사람

한 노신자는 말했다.
“저는 45년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

네 살 때 버려진 고아,
평생 도둑질로 살아온 남자.
그는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지금은 알콜과 마약 중독자들을 돕는 봉사자가 되었다.

나는 그를 보며 깨달았다.
천국은 깨끗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곳이 아니다.
은혜를 깨달은 자에게 주어지는 곳이다.

“천국은 하루 종일 일한 이에게도,
저녁 무렵 도착한 이에게도 똑같은 품삯을 주신다.”


황새 복귀식

황새 복원 사업이 성공하여 백 마리의 개체군이 생겼을 때,
나는 꿈꾸었다.
“우리 대통령이 황새 복귀식에 함께하길.”

그러나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그날 나는 깊은 상실감 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12:7)

나는 그제야 알았다.
사명조차도 내 것이 아니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을.

8-4 The President and the Stork (2023).jpg 그림 8-4: 황새와 여왕

이 시대의 아볼루온 ― 권력의 탐욕

이 시대의 정치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 아래

깊은 골을 파고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분열의 이면에서

더 깊은 어둠이 움직인다.

오늘의 아볼루온은

신화 속 심연의 괴물이 아니라
탐욕과 오만, 불의와 거짓,
그리고 권력을 신처럼 숭배하는 마음의 형상으로
우리 곁에 서 있다.

성경 민수기 16장을 읽으면

고라와 그의 무리가 모세를 거스르던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모두가 거룩하다”고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탐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었다.

그때 모세는 변론하지 않았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권력에 맞서는 가장 낮은 자리이며
하나님의 공의 앞에 자신을 세우는 자리다.

오늘의 아볼루온이

이 순례자 한 사람에게도 도전해 올 때,
나 역시 변명이나 분노가 아니라
무릎으로 응답하기를 배운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그들이 선 땅이 갈라지고 땅이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를 따르던 모든 사람과 그들의 소유를 삼켰다.”

심판은 인간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속해 있음을
성경은 증언한다.

8-5.jpg

그림 8-5 고라의 무리 앞에서 무릎 꿇는 모세 (민수기 16장)


기도의 자리

나는 다시 길 위에서 무릎을 꿇는다.

“주여,

이 백성을 기억하소서. 어둠의 권세를 꺾으시고
공의와 긍휼, 생명과 진리가 다시 흐르게 하소서.”

기도는 작다.

그러나 하늘에 닿는 작은 불씨다.

아볼루온은 요란하고 거대하게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한순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기도하는 사람 하나가 서 있는 곳,

그곳이 이미 무너지지 않는 성읍이 된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가? 권력의 길인가,

아니면 무릎의 길인가.

순례자의 길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길임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다. 무릎을 꿇은 자만이

바른 방향으로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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