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허영의 시장

진리를 팔지 않는 사람들

by 박시룡

허영의 시장, 반드시 지나야 할 길

우리는 지금 물질 만능과 과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무엇을 입는지, 어디서 사는지, 얼마나 벌고 얼마나 소비하는지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산다는 건,
마치 『천로역정』 속 허영의 시장(Vanity Fair) 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광야를 지나온 크리스천과 신실은 마침내 그 시장에 도착했다.
천성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할 길이었다.
다른 길은 없었다. 오직 이 시장을 통과해야만 했다.

10-1 Market Traders and Faithful (2022).jpg 그림 10-1: 시장의 상인과 논쟁를 벌리는 크리스천과 신실

세속의 거래가 열리는 곳

허영의 시장은 세상의 모든 욕망이 거래되는 장소였다.
집, 땅, 명예, 직위, 사람, 육체, 영혼…
심지어 ‘인기’, ‘팔로워 수’, ‘영향력’까지도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도 이 시장을 지나셨다.
바알세불이 그분을 유혹했다.
“만일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영광을 네게 주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 섬기라.”

그분은 시장의 주인이 되지 않으셨다.
대신, 진리의 길을 걸으셨다.


우리는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크리스천과 신실이 시장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유혹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물건을 사면 당신이 더 빛날 거예요!”
“세상이 당신을 부러워할 겁니다!”
“성공하세요! 유명해지세요! 아름다워지세요!”

그러나 두 사람은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는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그 말은 칼날보다 날카로웠다.
상인들은 분노했고, 곧 시장 주인에게 이들을 고발했다.


허영의 법정

10-2 Court of Vanity (2015).jpg 그림 10-2: 허영의 법정에서 신실과 크리스천이 재판을 받다.

재판장은 스스로를 “선을 미워하는 자”라 소개했다.
그는 외쳤다.

“너희의 진리는 위험하다.
너희의 존재가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지하 감옥에 가두어라! 매질하라!”

군중 속에서는 속삭임이 퍼졌다.

“저 사람들, 아무것도 안 샀대…”
“명예도, 보석도, 왕관도 다 거절했다네…”
“그들이 시장을 그냥 지나간 것만으로도 세상이 흔들릴 수 있대…”


신실의 순교

신실은 결국 재판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는 차가운 비탈길에서 나무에 매달려 순교했다.
눈보라 속에서도 그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랬다.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고, 오직 진리를 얻었노라.”

그 피가 땅에 스며들자,
수많은 순례자들의 마음속에 진리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본 크리스천과 소망도 예외가 아니었다.

10-3 Martyred Faithful and Pilgrims (2019).jpg 그림 10-3: 눈 덮인 언덕에서 순교한 신실, 이를 지키는 크리스천과 소망

허영의 시장에서 내 누님을 생각하다

나는 신실을 떠올리며, 내 누님을 생각했다.
그녀는 한때 세상의 시장 한가운데 살았지만,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 진리의 생명수를 얻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허영의 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에는 오직 한마디가 남았다.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그 고백은 나의 신앙을 다시 일으켜 세운 울림이었다.

10-5 The Samaritan Woman (2022).jpg 그림 10-4: 예수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 내 누님도 한때 주변 남자들을 사귀며 놀았다. 끝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만난 것 처럼, 인격적 만남을 체험하며 살았다.

법정에 선 황새

그러던 어느 날,
나 또한 허영의 법정에 서게 되었다.

죄목은 “국유지 무단 사용.”
황새를 기르던 작은 사육장이 죄가 되었다.
변상금 1억 원.
그것이 이 나라의 판결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재판은 황새 때문이 아니라,
진리의 일을 멈추게 하려는 또 다른 아볼루온의 공격임을.


생명이 자라자, 탐욕도 자랐다

한때 아무도 관심 없던 황새 복원.
생명이 자라자, 탐욕이 고개를 들었다.
명예, 권력, 이권이 뒤섞여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거래’로 변했다.

나는 마음 깊이 깨달았다.

“하나님의 일은 자랑의 도구가 아니라,
눈물로 섬기는 사명의 자리다.”

그래서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기도했다.

“주님, 진리를 사되, 값을 치르더라도 팔지 않게 하소서.”


기도의 길

누나는 어머니를 평생 돌보며,
아픔 속에서도 감사로 살아갔다.
그녀의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 순간,

나는 사도행전 속 스데반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행 7:59)



오늘의 ‘신실’을 만나다


10-5 Elder.jpg 그림 10-5: 허영의 시장에서 복음을 외치는 노장로

나는 순례길에서 한 장로님을 만났다.

그는 구순(九旬)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허영의 시장’에 나타난

신실처럼 진리를 외쳤다.

“곧 세상의 종말이 오니, 예수를 믿으시오!”

그의 외침은 도시의 소음 속에서 이질적이었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그는 청년 시절 성경을 읽고 깊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천로역정』의 신실처럼 허영 거리로 나섰다.

교회 안에서는 그를 미친 사람이라 불렀다.
목사조차 염려하며 말했다.

“성도님, 이제는 정신과에 가보시지요.”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세상의 허영보다
하나님의 심판이 더 실제였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요청받았다.
단상에 오른 그는 첫마디부터 불을 던졌다.

“여러분! 내가 보기엔, 목사님을 포함해
이 자리에 천국 갈 사람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예배당은 순식간에 술렁였다.
그러나 그 말은 허영의 시장을 뒤흔들던 신실의 외침처럼,
가식의 신앙을 깨뜨리는 하늘의 경종이었다.

그는 교회의 돈과 명예, 권력, 타락을 숨기지 않았다.
가시 같은 말이었지만, 그 가시는 사랑이었다.

그는 과거의 사업가였으나,
자신의 재산 전부를 ‘십자가 선교회’라는 공동체에 헌납했다.
그곳에는 술과 마약 중독자, 전과자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은 땅을 일구고, 찬송을 부르며, 진리 안에서 회복되어 갔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진리를 팔지 않았소.”
그의 눈빛은 순결했고, 그 삶은 신실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그 장로님은 이 시대의 신실이었다.
진리는 숨겨질 수는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의 불빛이 모두 꺼진 뒤에도 남는 하나님의 빛이다.


나는 이제 허영의 시장을 떠난다

나는 더 이상 세상 앞에서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황새 복원 교수라는 이름도, 명예도 내려놓았다.

이제는 다만 주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9–10)

나는 그 말씀을 품고,
허영의 시장을 조용히 떠난다.
그리고 저 끝에서
생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다.


순례자의 기도

“주님, 허영의 시장 한복판에서도
진리를 팔지 않는 믿음을 주옵소서.
세상의 명예보다 주님의 이름을 택하게 하시고,
억울함 속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진리를 사되 팔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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