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by 박시룡

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은 세상의 광야를 헤매다가 동굴이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짐을 풀었습니다. 그러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지저분한 옷을 입은 남자가 자기 집을 외면한 채 서 있었습니다.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습니다. 그 남자는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눈물을 쏟으며 몸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듯 큰소리쳤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20230713_071241 (3).jpg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2023)

크리스천이 펼친 책은 성경이었습니다. 그 성경 속 무엇이 그들 덜덜 떨게 했나요? 베드로후서 3장 10절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계속 성경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등에 짊어진 무거운 짐이 생각났습니다. 그 짐은 그가 지은 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시작했습니다. 그 짐 속에는 그동안 했던 거짓말들, 남을 속였던 것들, 저주의 말을 했던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어떤 길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나 자신은 물론 우리 가족 전체가 모두 죽게 될 거야." 이 말을 듣고 그의 가족은 무척 놀랐습니다. 그가 한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가 광증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크리스천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가족의 설득에 한계를 느낀 크리스천은 혼자 순례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황했던 시절

내게도 이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고교시절 무척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 나라는 존재가 이 땅에 태어났는지? 그리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크리스천처럼 내가 죄라는 짐을 짊어졌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내 위로 누나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살던 곳은 비탈진 골목길이라 부서진 시멘트 계단이 있었고 집들이 계단 양옆을 두고 빽빽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언제가 한 번은 누나가 엄마가 아껴둔 옷을 꺼내 입고 윗집 오빠를 만나는 현장을 내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일러바쳤고, 그때만 해도 집은 가난했지만 내 부모님은 딸에 대해 매우 엄격했습니다. 아마 그때는 딸을 가진 부모라면 모두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 후로 누나는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고, 나는 누나를 감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런 누나가 갑자기 눈이 보이지않는 병을 앓고, 시신경 뇌후엽 종양 제거 수술 중 깨어나지 못하고 저세상을 갔을 때, 삶이 무엇인지 느꼈을 때가 있었습니다.


동네 오빠.jpg 동네 오빠(2011)

이런 일을 겪고 난 뒤 친구의 소개로 고등학교 옆에 있는 미국인 선교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성서침례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그때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고, 침례도 받았습니다.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는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생각보다, 예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어떻게 아빠인 요셉과 잠을 자지 않고 예수의 모친 마리아 혼자서 예수를 낳았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과학자로 동물 중에도 수컷과 교미하지 않고 암컷 혼자 미수정난에서 수컷이 태어나는 현상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일이라 생각하고, 지금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지만, 그때는 신앙이라기보다 성경이 모두 의문투성이로 내게 비추어졌습니다.

아기 탄생.jpg 아기 예수, 요섭 그리고 마리아(2022)

한창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그때 나는 의대를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서울대 가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으나 서울대 갈 성적이 나오지 않아 늘 불안해하며 살았습니다. 내 실력으론 거의 불가능했기에,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 성경엔 믿고 구하면 모두 주신다 했는데, 예수님은 나에게 응답을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왜 날 서울대에 들어갈 실력으로 태어나지 못하게 했는가?',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지금 태어나셨다면 서울대에 들어가셨을까?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상상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의 성장과정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습니다. 한 가지 나와 있는데, 소년 예수가 성전에서 랍비들과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 당시 랍비라면 모든 학문에 박식한 선생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아마 두세 개 박사학위는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런 랍비들이 소년 예수가 쏟아낸 영적 깊이와 학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소년 예수는 그때부터 하나님 아들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예수께서 서울대 갈 수 있었나 괜한 말을 했나 봅니다. "비교할 수 있는 걸 비교해야지!"

소년 예수 (2).jpg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을 하는 소년 예수(2021)


나에게도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계십니다. 어머니는 날 잘 먹이고 학교 보내기 위해 일을 하셨습니다. 대전에 있는 목척교 옆 은행이 하나 있었는데, 은행 옆 한 모퉁이에 작은 점포 하나를 차렸습니다. 점포라기보다 가건물이었습니다. 요즘 길거리에 있는 신문 판매 매점 정도로 생각됩니다. 은행 옆에 위치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은행에 오는 사람들이 자가용을 타고 오지만, 그때는 모두 자전거를 타고 은행에 왔습니다. 점포의 주목적은 자전거 도난으로부터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은행이 손님의 자전거를 지켜주는 조건으로 가게운영을 허가한 것입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자전거를 거치대에 주차를 하면 일일이 나가서 번호표 하나를 자전거 손잡이에 걸고, 다른 하나는 손님이 소지하고 은행 볼일을 본거지요. 눈을 부릅뜨고 지켜도 가끔씩 자전거 도난사고가 생겨 자전거 값을 몽땅 물어내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그 가게에서 아버지는 자전거를 지키는 역할을 하셨고, 어머니는 재봉틀 하나를 마련하시고 창호지를 풀로 붙인 천에 학생들과 군인들의 명찰을 새겨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신학기가 되면 명찰 새기는 단체 주문도 많았습니다. 납품 기일에 맞추느라 밤잠을 주무시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잠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재봉틀 소리가 나지 않고 어디서 신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깨어보니 어머니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계셨고, 머큐로크롬이라는 빨간 약만 마르시며 고통을 참고 계셨던 것입니다. 일반 재봉틀은 노루발을 장착하고 미싱바늘이 움직이는데, 명찰을 새길 때는 노루발을 장착할 수가 없습니다. 양 검지손가락 끝이 노루발 역할을 하고 재봉틀 바늘이 모터의 힘으로 상하로 움직여 명찰이 새겨집니다. 그날은 어머니가 며칠밤을 주무시지 못하고 명찰을 새기고 계셨습니다. 깜박 조는 순간에 미싱 바늘이 어머니의 손가락을 꿰매고 만 것입니다.


내 아버지도 자식들과 아내 사랑은 남 못지않으셨습니다. 명찰가게를 차린 것도 아버지셨습니다. 은행 옆이 목이 좋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은행에 오는 손님들의 자전거를 봐준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은행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입은 명찰가게가 전부였습니다. 명찰가게가 제법 잘 되자, 군인들의 명찰과 계급장 같은 장신구를 납품하는 일도 하셨습니다. 지금은 군인들과 공무원들도 꽤 청렴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납품일에 의례 상납과 뇌물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일에는 아버지께서 납품 검수관들을 상대로 술대접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술대접이 잦아지자 아버지는 어느 날 알코올 중독자로 변하셨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들어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날은 한번 술에 취하면 어느 순간 미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일단 과음이 시작되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 날이면 식구들을 깨우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광인으로 변한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20230716_080427.jpg 공포에 떠는 가족(2005)

나는 성경을 읽고 아버지가 술 귀신에 붙들려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쓰여 있습니다. 내가 교회가 다니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에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 마 8:28에는 거라사 광인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명령하여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러자 귀신들은 돼지 떼에 들어가 모두 물속에 빠져 죽었습니다. 사무엘상 18장에는 술에 지배를 받고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사울 임금은 평소에는 '다윗을 자기 가까이 오라 하지만, 더러운 귀신의 지배를 받고 그 딸 메랍과 미갈을 과부로 만들어서라도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술에 취하지 말라 합니다. 악한 귀신의 지배를 허락해선 안된다는 뜻입니다. 내 아버지가 예수를 믿고 술을 끊었을 때는 이미 뇌졸중으로 병석에 오래 누워있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 술 귀신은 동생의 몸속에 들어간 건 아닐까요? 그도 과음할 때면 제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결국 동생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내 가족을 보고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동안 해온 우리 가족의 가업도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난은 버틸 수 있었지만, 내 영혼만큼은 이대로 마귀에 다 내주고 굴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누나와 동생들에게 하나님께 우리 가족의 삶을 맡겨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진 삶

내가 크리스천으로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긴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어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한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의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니다?"(요한복음 4:7-11)

사마리아 여자.jpg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예수(2022)


사마리아 여자의 질문에 예수님이 동문서답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이 될 것이다." 성경의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은 어떤 질문에도 직접적인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엉뚱한 염려에서 나온 질문으로 보시고 살짝 비켜가십니다.


사람들의 질문이 모두 세상의 가치로 질문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답은 항상 모호하게 들립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예수님! 왜 제게 서울대에 들어 갈 실력을 주시지 않습니까?" "주님! 내 아버지가 술에 취해 너무 괴롭습니다. 제발 술을 못먹게 할 방법은 없나요?" 하는 질문입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도 세상이 제기하는 두려운 질문들에 유혹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해를 입으면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천신마고 끝에 내 힘으로 일궈 온 안전된 삶을 아무한테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두려움 속으로 다시 돌아와 있습니다. 설사 크리스천들이 믿음을 갖고 살고 싶은 막연한 열망을 계속 느낀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헨리 나우웬 Henri Nauwen은 그의 책 '예수, 우리의 복음 Jesus, A Gospel'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화되지 않는 자신 때문에 절망하지 말라.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라. 그분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라. 우리 힘으로는 달라질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 새로운 심령, 새로운 몸을 주러 오셨다. 예수님께 사랑으로 당신을 변화시킬 기회를 드려라. 그분의 도움을 받아 당신의 전 존재로 그 사랑을 받아들여라.’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이 주시는 마르지 않는 샘물을 깨닫는 순간, 오늘 내게도 그의 성령의 은혜가 고스란히 내게 임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가족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긴 것처럼 나는 세상의 염려와 헛된 욕심으로 갈증을 더 이상 느끼며 살지 않기 위해 이 순례길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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