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황새 마을 사람들
1#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나를 황새박사라고 부른다.
내가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로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황새를 러시아에서 처음 가지고 들고 와서 인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이 황새를 열심히 실험실에서 인공번식도 시켰다.
인공번식을 시키다 보니 문제도 생겼다.
대부분의 새들은 태어나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알고 따르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황새들이 날 어미로 알고 따르면 안 되잖아?
만일 내가 방사한 황새들이 날 제 어미로 따른다면 곤란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두건을 쓰고 손에는 목각으로 만든 황새 머리 인형을 보여주면서 새로 태어난 새끼들에게 제 어미를 따르도록 훈련을 시켰다.
사실 이건 조류학 용어로 각인이라고 부른다.
거위 새끼가 알에서 깨어난 12시간~17시간 사이에 본 물체를 어미로 알고 따르는 것은 이미 과학자들이 연구해서 알아냈다.
그럼 황새 새끼들도 그럴까? 그렇지 않다.
거위나 오리 새끼같이 알에서 금방 깨어나 걸어 다니는 새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각인이 되지만, 황새는 알에서 깨어나 금방 걸을 수 없으니 이러한 각인이 뒤늦게 생긴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황새들의 각인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2015년 9월 3일은 황새가 야생에서 사라진 지 반세기 만에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 마을에서 황새 10마리 야생 복귀식이 있던 날이다.
물론 이 마을에는 황새들의 서식지가 되는 약 10만 m2 황새공원도 만들었다.
그날은 마을 주민뿐만 아니고, 환경부 장관, 문화재청장도 황새 야생 복귀식에 참석해 축하를 해줬다.
야생으로 날아가 10 마리 황새들은 각자 모두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등에는 위치추적 전파발신기도 채워져 있었다. 이름은 ‘대 한 민 국 만 세 예 산 천 연 ’-10자의 뒤에 ‘황’ 자를 붙여 지어졌다. ‘대황’이가 가장 어른, 그다음 ‘한황’이.... 이런 식으로 7번째 수컷이 ‘산황’이었다.
산황이는 1년생 수컷으로 자연에서 오래 살아갈 수 있게 젊은 개체로 특별히 선별했다.
산황이는 야생방사 석 달이 지난 시점. 11월 24일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까지 내려갔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산황이는 그날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가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2#
하늘은 구름이 넓게 드리운 오후 2시였을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중국 남쪽 양쯔강 하구, 중국에서 가장 큰 철새도래지로 가려고 했던 게 틀림없었다.
등에 채워진 전파발신기는 그 위치를 내게 알려왔다.
목표지점 200 km를 앞두고 갑자기 검은 비구름이 산황이의 눈앞을 가렸다.
이내 앞은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아무것도 보지지 않았다.
도저히 전진 비행이 불가능했다. 상황이는 부랴부랴 기수를 오른쪽 방향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파도는 거셌지만 산황이의 시야는 한결 나아졌다.
기온도 다시 따뜻해졌다.
벌써 신안 앞바다를 떠난 지 10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산황이에겐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하는 고된 비행이었다.
아직도 중간 기착지가 보이지 않았다.
산황이의 시야에는 망망대해만 들어왔다.
다시 상황이는 바다 위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바다의 파도 위로 만들어진 상승기류를 이용해 활공을 하며 전진 비행만 계속됐다.
상승기류 덕분에 에너지를 조금 아낄 수 있어 몸은 덜 피곤했다.
벌써 전라남도 땅을 떠나온 지 하루 반나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땅이라도 보이면 목이라도 추겨야지!”
그러나 출렁이는 파도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황이는 바다 위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다간 죽는 것이 아닐까? 이대로 죽기에는 난 너무 젊은데~”
한 줄기 희망의 끈을 버리지 못하고 죽을힘을 다해 다시 날개를 펄럭였다.
'참, 산황이가 대견하지 않아?'
'한 번도 경험이 없는 바다를 건너다니, 그것도 1,000km나! 아직 어린 날개로 비바람을 뚫고 비행을 하다니...'
그러나 이 시간 산황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물과 식량이었다.
#3
험난한 비행을 시작한 지 34시간이 지났을까.
“아, 육지가 보인다!”
처음으로 착륙할 땅을 발견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산황이가 처음 발견한 땅은 일본 남단 오키노에라부섬이었다.
그 섬은 일본에서도 황새가 사는 곳은 아니다. 일본 열도에서도 아주 남쪽에 위치한 곳이라
원래 이곳은 논습지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황새들이 습지에서 먹이 사냥할 곳이 없는 땅이었다.
그렇지만 상황이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풀밭 위를 헤집고 다녔다.
풀벌레를 잡기 위해서였다.
산황이는 벌레를 잡기 위해 오키노에라부 공항 풀밭까지 다가갔다.
오키노에라부는 가고시마 현에 속해 있는 일본에서도 최남단.
이 공항은 하루 2편의 일본 국내선 비행기가 운행하는 곳이다.
그날은 기운이 너무 없었다. 주식인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가 ‘탕 탕 탕’ 총성이 들렸다.
놀라 급히 날아보려 했지만 기운이 쇠잖아 훨훨 날아오를 수 없었던 것이었다.
큰 날개를 뻗어 날기를 시도해봤지만 그때는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다.
순간 총알이 산황이의 몸통을 관통하고 말았다.
#4
나는 산황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거의 한 달만이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산황이가 비행기와 충돌해 사망.
공항 직원이 사체를 발견하고 곧바로 소각시켰다’ 보도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일본 사람들도 황새를 특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면서 사체를 불태워 죽일 수 있을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오키노에라부 공항에 산황이의 사고 경위를 알려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곧바로 이메일의 답변이 도착했다.
이상한 것은 사고 경위에 기체와 충돌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5kg의 몸무게인 황새에 기체가 충돌했다면 어딘가 긁힌 자국이라도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황새의 머리에 피가 흘렀다고 적어 놓고서~~~!”
나는 사고 경위를 받아 들고 불법 소각한 공항직원을 가고시마 검찰청에 고발할 수밖에 없었다.
고발과 함께 나는 주한 일본대사관에도 항의 편지도 보냈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신이었다.
불법소각은 엄연히 일본 문화재법(천연기념물 보호법)에도 위법 행위에 해당된다.
천연기념물 생물체의 현상 변경 시(소각 행위) 사전 허가가 있어야 되는 점을 명문 하고 있다.
일본 공항직원은 황새의 불법 소각은 물론 등에 달린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부착한 전파발신기까지 불태웠다.
이것도 대물 손괴죄로 형사처벌 해줄것을 요구했다.
거의 1년이 지난 뒤였을까?
가고시마 검찰청은 공항직원을 수사도 하지 않고 불기소 처분했다는 통지서만 보내왔다.
#5
나는 일본의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일본과의 법적 다툼은 내 가족마저 날 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한 개인이 일본이라는 나라와 법적 투쟁을 벌이는 나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주한 일본대사관에 항의 편지.
심지어 우리나라 문화재청에도 일본 정부에 항의를 요구하는 서한도 보냈지만 답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연 내 나라가 주권국가가 맞나?
일본은 자국의 황새 보호에만 열광하는 나라다.
황새를 특별 천연기념물이라고 지정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보다 10년 앞서 황새 야생복귀를 성공시킨 일본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 자국의 황새들을 열렬히 홍보를 하고 있었다. 자국의 인공위성 이름에다 고노도리호(コウノトリ:황새호 일본명)라는 명칭을 붙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산황이를 생각하면 나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국제적으로는 힘이 많이 부족한 나라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우리나라 황새들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지 훗날을 기약해 보는 수 밖에 없어서 일까!
참 많이 울었다.
억울해서 울었고 또 산황이가 너무 불쌍에서 울었다.
국적이 다르다 해서 황새마저 이런 대접을 받아선 안 되겠지!
산황아 ~ 넌 참 멋진녀석이었어.
우리 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