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불러도 대답 없는 황새
# 1
내가 한국교원대학교에 재직 중에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죽기 전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든다.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그 꿈을 버릴 수 없다.
예산과 경기도 파주에 [황새 연구재단] 설립이다.
원래는 황새가 옛날 번식했던 황해남도 배천군에 황새 연구재단을 짓고 싶지만
아직 그곳에 들어갈 수 없어 경기도 파주시 문정읍 마정리에 우선 터를 잡아보려 한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 재단 설립 비용이 112억 정도 추산된다.
그 비용을 만들어 보려고 매일 한지에 수채화 그림을 그려보고 있다.
#2
나에게 황새는 가족과 같다.
그 가족이 집을 나가 행방을 모르다면 슬프고 괴로운 일이다.
황새 한 쌍이 새끼를 낳고 살아가려면 최소 여의도 면적이 필요하다.
그 땅의 생물권 보존 연구가 내가 황새 재단을 설립하고 싶은 이유다.
황새는 논습지, 농경지, 하천, 그리고 임산의 생물권이 잘 보존될 때 지속 가능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 어쩌면 그게 우리네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다음 세대들은 그런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3
미하엘 오토(M.Otto)는 독일 황새 재단 설립자다.
그는 나와 같은 과학자는 아니지만 황새가 사는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과학자인 나보다 더 한 사람이다.
그는 부친 때부터 독일에서 우편 주문 상거래 사업을 했다.
지금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살면서 글로벌 전자상거래 회사 Otto GmbH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일찍기 환경운동가로 그의 회사는 안전한 친환경 제품을 홍보하고 있었다.
독일 북부 베르겐 후센(Bergenhusen)이라는 황새 마을에 가면 그의 이름을 딴 독일의 황새 연구 재단( Michael Otto Institut)이 있다.
독일 황새 재단은 그가 평생 모은 재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4
우리는 다리 밑에서 아이를 주워온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황새가 아이들 물어다 준다는 속담이 있다.
사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황새가 번식하고 사는 마을과 그렇지 않은 마을을 비교해 보니,
아이들의 수가 황새가 사는 마을에 더 많다고 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다.
황새가 살려면 땅에 생물자원이 풍부해 그 땅은 비옥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사람들도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우리나라도 그런 자연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그런 희망을 가져보려고 한다.
#5
2005년 중국 베이징에서 회의가 열렸다.
미국 위스콘신에 본부를 둔 두루미 재단에서 주최한 회의였다.
두루미재단은 CNN 설립자인 테드 터너(Ted Turner)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북한 강원도 안변군 일대 두루미 서식지 보호를 위한 친환경 농업 지원 프로젝트를 실시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에 남한의 학자가 참여할 수가 없었던 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언젠가 미국의 두루미 재단처럼 한국에서도 [황새 재단]을 설립해 북한 황새들의 옛 번식지를 복원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아직 그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6
내가 한반도 황새 복원 선의 닻을 처음 올린 곳은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한국교원대다.
벌써 2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분명 목표가 있었다.
사단법인 한국황새 연구센터로 출발을 했다.
그러나 그 복원 선의 항해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단법인은 해산이 되고 교원대 황새 생태 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항해를 이어갔지만
바뀐 선장은 배를 결국 목표를 향해 몰고 가지 못했다.
이제와 항해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금 더 힘을 내 보려 한다.
20년 동안 우리나라 자연에 복귀시킬 황새의 개체군을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 만은 아니었다.
그냥 숫자만 늘려서는 안 된다는 게 한반도 황새 복원 연구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자연 적응을 위해 무엇보다 근친인 개체들을 배제하기 위한 연구가 야생 방사를 하기까지 거의 2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나와 제자들이 수고를 많이 했다.
유전자가 다른 황새들을 들려와 유전자 다양성 개체군을 만드는 것,
외모만 보면 다 같은 황새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생태 연구 학자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 50년 동안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갈 개체들을 만들고, 충남 예산에 황새 공원을 만들었지만
내가 꿈꿔왔던 한반도 황새복원 연구는 그것이 전부였다.
황새 복원 핵심 축인 황새 연구시설이 예산 부족 이유로 미루어졌다.
결국 '예산 황새공원'내 연구동 건립은 백지화가 돼 너무 아쉽다.
#7
나는 황새들의 유전자 다양성을 꾀하기 위해 1996년부터 5차례에 걸쳐 황새를 러시아로부터 도입했다.
킨간스키 자연보호구 황새 둥지를 찾아, 각 둥지마다 한 해에 2~4마리를 선별했다.
주로 새끼 때, 이소 직전의 몸 상태로 한국으로 이송했다.
황새들의 이송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의 사연이 늘 따랐다.
제자인 정석환 박사를 러시아에 보냈다.
정박사는 3일 동안 킨간스키 자연보호구에서 체류하면서 4 개체 황새 유조를 한국 이송을 준비했다.
이송의 첫 관문인 황새복원 연구사업의 파트너인 러시아 안드로노프 박사 일행의 배웅을 받아 하바롭스크 공항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갑자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안드로노프 박사 일행이 정 박사의 탑승을 확인하고 공항을 떠난 후였다.
승무원이 기내의 좌석에 앉아 있던 정 박사를 찾아왔다.
"당신이 싣으려는 상자가 우리 항공기 짐칸의 높이에 맞지 않아 실을 수 없으니 내려주셔야겠습니다"
너무 황당했다. 그날 투입된 항공기의 기종으로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정 박사를 더욱 당혹게 만든 것은 공항에서 러시아어만 쓰는 공항직원들과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안드로노프 박사 일행은 공항을 떠났고...
정 박사는 공항에서 황새 옆을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연락을 취할 곳이 없어 막막해졌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새끼들은 무려 12시간(킨간스키-하바롭스크 공항까지 이동시간)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탈진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비행기 이륙 후 1시간이 지났을 무렵, 항공기는 기체 결함으로 회항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3시간이나 지연되면서 다른 항공기로 교체가 되었고, 항공사 직원들은 황새 상자를 짐칸이 아닌 기내에 실을 수밖에 없는 촌극이 벌어졌다.
영문도 모른 채 러시아어를 못하는 정 박사는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 박사는 이런 일이 모두 항공사 자체 결정이었기에 어안이 더 벙벙해졌다.
늦게서야 안 사실이었다.
항공사는 기체 결함이 황새를 실어주지 않아서 벌어진 징크스로 여겨 특별 배려했던 것이다.
기내에서 승객들의 양해를 구하는 기장의 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 이 기내에는 한국으로 이송 중인 국제적 멸종위기 종인 황새가 타고 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다소 승객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하바롭스크에서 김포공항까지 불과 2시간의 비행이었지만, 기내는 온통 황새의 배설물 냄새로 진동시키고 말았다. 탑승객들은 모두 코를 막고 2시간을 버텨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결국 이 일은 한국 황새 복원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8
내가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채화의 대가인 독일 화가 에밀 놀데다.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는 내가 태어나서 네 살이 되었을 때 이미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이다.
독일 유학시절에 한 서점에서 그의 작품집으로 만난 게 처음이었다.
한지( 놀데가 화가로 활동할 당시 독일에는 일본 한지'Japanese Paper'만 판매?)에 그린 환상적 채색의 수채화는 나의 눈길을 사로잡고 말았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왜 놀데는 일본 한지에 그림을 그렸을까!
꼭 우리나라 한지 위에 그려 놀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뒤늦게 그의 묘지 앞에 섰다.
독일 북부 덴마크와 국경을 마주한 세뷸(Seebuell)의 [놀데 재단] 뜰에 그의 무덤이 있다.
그토록 닮고 싶었던 사람이었기에 내가 죽으면 그의 곁에서 어깨너머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고백을 했다.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에 가면 "황새가 있는 풍경을 꿈꾸다"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이 타임캡슐은 2017년 1월 18일 정년을 앞두고 일제 강점기 황새 한 쌍이 번식했던 곳에 묻었다.
이 캡슐의 개봉일은 2096년 7월 17일이다.
한반도에서 황새 복원 시작일로 만 100년이 되는 해이다.
내가 죽고 난 후 그리고 한참 후에야 이 타임캡슐을 열어볼 수 있다.
캡슐 안에는 독일 유학시절부터 정년 퇴임하기 전까지 그린 그림 100점이 묻혀 있다.
나는 내 제자들과 가족에게 내가 죽으면 뼛가루를 이 타임캡슐 한켠에 묻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그 자리에 황새연구재단이 들어설 수 있을까!
놀데는 자손이 없다. 그의 무덤에는 아내의 묘도 있었다.
독일 북부 세뷸, 놀데의 생가에는 놀데의 그림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놀데 재단을 설립, 놀데 미술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