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황새에 대한 회상

2부 불러도 대답 없는 황새

by 박시룡

# 1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충북 음성에서 황새 한 쌍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소식은 동아일보(1971년 4월 1일 자) 1면 특종기사로 보도됐다.

그때 대학 은사인 故 원병오 교수가 그 기사 보도에 중심에 계셨다.


황새는 1800년 말까지 인천, 경기도, 황해도(북한), 충청도 지역에 걸쳐 마을마다 한 쌍씩 번식하고 있었다. 그 많던 황새가 한국전쟁이 지나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971년 동아일보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조류 특집기사를 연재하고 있었다.


당시 음성 황새가 살던 마을의 친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서울의 한 거주자가

"아니 이 새는 내가 최근에 다녀온 마을에 살고 있는데!"

이분은 급히 동아일보에 제보를 했다.

그리고 동아일보 기자는 원병오 교수에게 이 새가 우리나라에서 멸종되고 없는 황새인지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동아일보 측에서 보면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그날이 3월 31일이었다. 원 교수는 이 사실을 중앙일보에도 정보를 슬쩍 흘렸다.

당시 중앙일보는 석간신문이었기 때문에 동아일보보다 하루 먼저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니까 동아일보는 특종기사를 타 신문사에 뺏기고 만 것이다.

아무튼 동아일보는 예정대로 4월 1일 1면 톱기사로 내보냈다.


동아일보에서 1면 톱기사로 보도된 3일 만에 비극은 시작됐다. 한 밀렵꾼의 총에 수컷이 사망했다.

1971년 동아일보 1면 톱기사, 충북 음성 멸종위기 황새 쌍 발견

홀로 남은 황새는 이 마을에서 과부 황새로 불리다가 13년을 더 살다 농약 중독으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이어 이 과부 황새도 수명을 다해 1994년에 죽고 말았다.


대한민국에서 마지막 살았던 비운의 황새 이야기는 외신에 의해서도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사건이었다.


산아래 황새둥지.jpg

과부 황새의 자식사랑; 황새 한 쌍은 오랫동안 충북 음성군에서 번식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황새는 너무 늦게 발견돼 우리의 보호를 받기도 전에 수컷이 밀렵꾼의 총에 맞고 쓰러졌다.


#2


사람도 죽으면 시신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처럼, 요즘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마을 주민들의 심정일 거다. 총 맞아 죽은 숫 황새는 현재 경희대학교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로 전시되고 있고, 암컷(과부 황새)은 인천의 국립 생물 자원관에서 따로 전시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황새복원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두 황새 박제를 충북 음성군으로 되돌려 줄 수 없을까 고민해왔다. 이 박제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 멈춘 황새 복원 연구도 다시 시작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최근 음성군에 제안 하나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그 마을에 황새 박물관 건립이다.


정년을 하면서 멈춰버린 황새 복원 연구!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서 그 싹이 다시 꽃 피울 수 있을지 궁금하다.


노랑꽃과 두여자.jpg 충북 음성군 우리나라 마지막 황새 서식지, 충북 음성에서 황새 박물관을 짓는 날 나는 이 그림들을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3

내가 정년 한지도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우리나라 황새 복원 연구는 내가 교원대를 떠나면서 끝나고 말았다.

모두 내 불찰이자 능력의 부족일 텐데, 이제 와 후회한들 어찌할 방법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러시아 킹칸스키로부터 황새를 가지고 김포공항에 들어온 날, 비운의 마지막 음성 황새를 떠올리며 공항은 온통 취재진으로 들썩였다. 저녁 TV 뉴스 헤드라인으로 크게 보도됐던 날이었다.

한반도 황새 멸종 이후 1996년 7월 18일 러시아로부터 황새 유조 2마리가 김포공항에 도착. 황새 운반 상자에 담긴 기내 사진(右) 故 김수일 교수.

그 후 20년이라는 세월을 황새의 증식에만 몰두했었다.

야생 복귀를 앞두고 '교원대 황새 임치 규정'이 제정되었다.

이는 증식시킨 황새들의 소유권이 한국교원대에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황새를 교원대에서 이동과 야생 방사할 때는 반드시 황새 복원 연구 전문가의 참여 속에 심의 회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4년 이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60마리 황새를 예산군으로 이동시켰던 날, 문화재청과 예산군의 반발도 없지 않았다. 내가 교원대를 떠나도 이 황새 복원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규정은

꼭 존속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떠나자 이 규정도 한순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황새는 한 연구자의 손에서 지자체 단체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손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낀 황새.jpg 정년을 하자 황새를 이용해 욕심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4

2016년 예산 군수는 충청남도 체육대회 행사에 예산 공설운동장에서 황새를 방사하고자 하니

황새 방사를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교원대 황새 임치 규정'에 부합하지 않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교원대를 떠난 후 예산 군수는 황새 축제라는 이름을 빌려 행사 때마다 황새를 날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2017년 4월 정년 퇴임 직후 당시 한국교원대 총장은 문화재청을 방문해 청장을 만난다는 소식을 내 연구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때 나는 ' 왜 뜬금없이 교원대 총장이 문화재청을 방문할까? 언제부터 교원대 총장이 황새에 관심을 가졌다고!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너무 의아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 벌어졌다.

그해 교원대는 문화재청으로부터 35억 원의 예산 지원 약속받았다.

그리고 현재 교원대 캠퍼스 학군단장 관사 부지에 '황새생태연구원'건물을 지었다.


나는 나중에서야 인지했다. 황새를 갖고 밀실행정이 있었다는 것을....

문화재청은 증식시킨 황새들의 소유권을 교원대가 주장하지 않는 대가로 국고를 교원대에 지원해 준 것이다. 결국 '한국교원대 황새 임치 규정'은 돈 앞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채 20년간 진행시켜왔던 황새 복원 연구는 내가 정년 퇴임하면서 막을 내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20220913_084936.jpg 사람들은 황새들에게 너무 무심하다. 정년을 하고 동해 바다를 다시 찾았다. 울릉도는 인생의 파고를 만났을 때마다 찾는 곳이다.


#5

사람들은 모두 우리 땅에서 멸종됐으니 방사만 하면 된다고 여긴다.

황새를 연구하는 나에게는 너무 참담한 생각이다.


원래 '한국교원대 황새 임치 규정'은 국제 자연 연맹 (IUCN) 이 정한 멸종 위기종 복원 지침서에 근거해 마련됐다. 내가 20년간 황새를 연구하면서 이 지침서에 따라 예산군의 황새공원(예산황새공원)도 만들었다.


'황새 임치 규정'은 황새의 야생 복귀를 과거 황새가 번식했던 곳에 번식 쌍을 재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면 교원대는 황새 연구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충북 음성군에 마지막 황새 쌍이 모습을 드러냈던 일,

그리고 10여 년을 음성 과부 황새는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지금은 우리 기억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 과부 황새를 국제결혼이라도 시키자는 한 교수의 제안은 있었지만 그것도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 과거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교원대가 '한국교원대 황새 임치 규정'만은 반드시 지켜 문화재청과 지자체가 주도하는 무분별한 황새 방사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도하는 사람.jpg 황새 야생복귀의 간절함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6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대통령님! 황새 복원하는 땅에 산업폐기물 쓰레기장이 짓는 나라가 나라입니까? 북한 공산당도~"


필자의 청와대 앞 1인 시위

주민들도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옛 황새 번식지에 산업 폐기물 매립에 반대 투쟁에 동참했다.

정말 산업 폐기물 매립업자와 지루한 법적 싸움이었다.


결국 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거의 10년 동안 찬성 주민(매립예정지의 땅을 판 주민)과 반대 주민 간의 갈등의 골만 깊게 패고 말았다.


나는 우리나라에 황새복원 계획을 세울 때, 이 마을 만은 지속 가능한 황새 번식지로 만들려 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옛 황새의 번식지를 지켜내려 했다.


언제가 기회가 오면 이 마을에 꼭 [황새 연구 재단]을 만들고 싶었다.


황새가 이 마을에서 천년 동안 번식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2,000여 점의 그림을 그리고 또 죽기 전까지 그림을 더 그려나가려 한다.

천 년 동안 이 그림들을 팔아 이 마을의 주민들과 연구원들이 황새를 살리는 연구에 쓰였으면 좋겠다.

도랑.jpg 꼭 지키고 싶은 황새고향마을, 언젠가 이곳에 [황새 연구 재단]이 들어서면 좋겠다.


"동물들은 사람과 대화할 수 없다. 단지 과학자들이 행동을 연구하여 그들의 생각을 전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황새들의 측면에서 황새들의 생각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황새 연구 재단]은 황새들의 생각을 연구하여 더 이상 멸종의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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