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다시 찾은 번식 쌍

2부 불러도 대답 없는 황새

by 박시룡

#1

금년은 황새 야생 복귀가 시작된 지 7년째 되는 해다.

드디어 그렇게 고대했던 황새 옛 번식지(예산군 대술면 궐곡리)에 황새 한 쌍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황새 부부는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아 열심히 돌보고 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황새가 번식했던 곳이다. 당시 조선 총독부는 '天然記念物 第 九十九號 禮山 鸛繁殖地'라고 비석에 세웠다.

이젠 우리가 이곳을 '황새 자연 유산 보전 지구'로 지정해 보호해 주어야 할 때다.


충남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황새 고향 마을"을 아시나요?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지금 어린 황새 두 마리는 14미터 높이의 둥지에서 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조만간 어미 황새와 함께 우리 땅 창공을 향해 벅찬 비행이 시작될 것이다.


이 황새들은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먼 여행을 떠난다. 어쩌면 수개월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미는 내년 2월에 다시 이 마을을 찾아올 것을 기약해 본다.

이 마을을 지켜주면 황새들이 꼭 다시 찾아올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러기 위해 이 마을에 [황새 재단] 건립을 기원한다.

이것이 내가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이다.



아기황새.jpg "황새가 자연에서 알을 낳았어요!" 축하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걸 축하해줄 다음 세대라도 오길 기다려본다.


#2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마을이다(우측 사진).

두 마리 새끼들이 어미만큼 훌쩍 자랐다. "누가 어미고 새끼인지 구분이 안되죠"

곧 새끼와 어미는 둥지를 떠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예산군 광시면 '예산 황새공원' 마을로부터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뿌리지 않던 농약을 다시 뿌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에 황새공원을 만들어 놓은 박시룡 교수는 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냐?'라고.

나는 이 말을 듣고 밤새 잠 못 이루었다.


"마을 주민들이 행복하지 못하면 황새가 번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황새복원을 시작하면서 황새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해지길 소망했다. 농약을 뿌리지 않고 농사지어도 제값을 받을 수 없고, 힘만 든다고 한다.

그리고 소출도 줄었으니 주민들이 날 원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 예산군에 새 군수가 들어서면 '예산 황새 공원' 원장직에 황새복원 전문가가 맡아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그동안, 2015년 예산 황새공원의 문을 열면서, 이 땅의 황새복원 사업을 진두지휘할 전문가는 없어졌다.

'예산군 공무원들은 정년퇴직한 나를 퇴물처럼 취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반도 황새복원 사업이 잘 못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늦긴 했지만 기회가 오면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부인의 아기황새 돌보기.jpg

사람들의 주변에 멸종위기 종 황새가 찾아와 인간과 자연의 공존하는 모습은 참 아름다움일 것이다.


*3

사람이 태어나 부모로부터 떠나듯이 이 황새들의 새끼들도 곧 남쪽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 어미들은 다시 돌아오길 기약해 본다.


그러나 이 황새들은 행복할 수 없다. 농약으로 찌든 땅에서 먹이사냥을 해야 하고, 감전이 노출된 전신주를 횃대 삼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온다면 이 황새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은 주민들 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 주민들이 황새를 위해 농사짓고 사는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황새는 한 쌍이 2.6킬로미터 반경에서 살아가는 새다. 대략 여의도 면적 정도가 된다.

그리고 그 땅은 모두 개인 소유의 농경지다.


내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국가가 황새 둥지 2.6킬로미터 반경의 주민들에게 한 가구당 연 200만 원 상당의 '서식지 관리비'를 지불하는 것이다. 나는 이 돈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환경 농사를 지었을 때 소출 감소를 보상해 주어야 하는 최소한의 액수라 생각한다.


내가 만일 다시 황새복원 연구 사업 일에 나설 수 있다면 이 제도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보려 한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기에 쉽지 만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 황새가 예산군 땅에서 오랫동안 번식하고 살아가려면 한반도 황새복원의 첫 숙제를 풀어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한다.


도심의 밤.jpg 도심의 밤거리, 왜 사람들은 농촌에 농약이 마구 뿌려지는 것을 모를까? 농촌에 먹이가 없어 황새는 도심의 한 식당의 문을 두들이는데도...


#4

내가 교원대에서 증식을 시킨 황새들을 예산군으로 이전시킬 때 문서(교원대 황새 임치 규정)로 연구 사업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내 연구실 한켠에서 태어난 황새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우리의 자연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 준다고 약속했는데!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매일매일 힘들어하며 후회한다.

나는 동물행동학의 아버지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콘라드 로렌츠를 존경하며 살아왔다.

내가 콘라드 로렌츠 박사처럼 인류에게 영감을 주는 논문으로 노벨상을 받았다면 황새 복원이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우리는 평생 실패를 반복하는 시간을 살고 있다.

멸종 위기 종이자 천연기념물인 황새에게는 더 그렇다.


한반도에서 마지막 황새가 충북 음성에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우리나라 조류학계의 대부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원병오 교수가 계셨다. 그 당시 논문을 한편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신문과 방송에서 그 사건을 떠들썩하게 다루었을 뿐이다.


아마 한 종의 새를 갖고 그렇게 많이 언론에 주목을 받은 일은 건국 이래 전무후무한 일이었으니까!

지금도 그것이 반복되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

연구는 없어지고 신문과 방송에서는 황새가 번식했다는 소식만 전한다.


황새복원 사업은 분명 연구 사업이다. 우리나라 황새복원 사업이 지자체 단체장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내 손에서 자란 황새들은 언젠가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오늘 고개를 떨군다.


지금이라도 지자체 단체장은 우리나라 황새복원 사업이 지역의 신문이나 방송에 떠들썩하게 요란만 피우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 주면 좋겠다.


부러진 부리.jpg 황새 복원 연구자가 되어 황새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때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5

2005년 일본이 황새 야생 복귀를 실시했을 때였다.

토요오카시 <효고 황새 고향 공원> 원장이자 일본 조류학계 원로이신 야마기시(S.Yamagishi) 교수가 한 말이다.


야마기시 교수는 황새가 사육 상태에서 수십 년을 살아서 야생 복귀를 통해 처음 자연으로 돌아갔을 때, 과연 스스로 적응하며 살아갈까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었다.

이것은 일본이 얼마나 황새의 눈높이에 맞춰 복원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예산군 땅에 처음 황새 야생 복귀를 결정했을 때, 그 당시 군수는 공무원들에게 황새의 눈높이 맞춰 이 사업을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 후 2년이 지났을까! 군수가 바뀌자 그 말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한술 더 떠 군수는 기회만 되면 황새들을 강제 퇴원시키는 일만 자행해 오고 있다.


현대 과학은 동물을 연구할 때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왜 그럴까? 황새는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통찰력이 있는 연구자를 통해 황새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새 군수는 최소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황새의 눈높이에 맞춰 줄 것을 당부하는 군수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한반도 황새복원의 전당으로 만들어준 국민들을 생각해 ' 예산 황새공원'을 황새 전문가에 맡겨 주길 당부한다.

한민족의 새, 황새의 눈높이에 맞춰 민족의 천년대계 사업으로 발전시켜가길 염원해 본다.



창문 아래 놓인 화병.jpg 황새와의 공존. 인간과 건축물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로움을 그렸다.

#6

2011년 이스라엘 한 방송사는 일본 토요오카시(豊岡市)를 'Stork madness'라고 표현했다.

이 방송이 나가고 토요오카시는 세계적인 마을이 되었다.

미국 스미소니안 박물관에서는 지구상에서 주민이 살고 있는 곳에 종을 복원시킨 첫 사례로 꼽을 정도로 지금도 세계인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토요오카시가 이렇게 유명하게 된 건 두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한 분은 토요오카시 공무원이었던 사타케(S.Satake) 씨다. 사타케 씨는 내가 황새복원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토요오카시 '황새 공생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토요오카시 주민들을 황새에 미치게 만든 최초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한 사람은 요미우리 신문사 주재 기자인 마츠다(S. Matsuda) 씨다.

그는 지금도 황새가 있는 곳이라면 세계를 누비며 발로 취재를 한다. 우리나라도 여러 번 다녀갔다. 그는 우리처럼 보도자료를 보고 취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그런 사람이 없어서 일까요! 망가트리고 망가트려도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조차 없다.

일본은 토요오카시 시민들뿐만 아니라 日 인공위성에 고노도리(황새호)라고 이름을 붙여 일본 열도가 황새에 미쳐 있는데, 우리는 너무 초라하다.

아니 초라하기를 넘어 비참하다고 하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지난 16일 예산 군수는 황새들이 서식처이자 안식처로 사용할 황새공원에 아이들 물놀이 분수대를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기가 차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자연 둥지.jpg 망가져가고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가슴을 쳐본다.

#7

우리 인생도 태어나고 죽듯 동물들도 태어나고 죽는다.

인간들의 바람은 수명을 다하고 죽는다면 가장 행복이겠지.


내가 사는 동안 내 눈으로 목격했던 황새의 탄생은 글자 그대로 고귀한 탄생이었다.

황새는 한반도 땅에서 수천만 년 동안 살아왔지만 인간 누구한테도 그 탄생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내 실험실에서 내 눈으로 본 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 탄생을 기념하여 내가 재직하고 있었던 교원대 캠퍼스 한켠에 고귀한 탄생이라는 비명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고귀한 탄생


황새(천연기념물 199호)는 1900년 초까지 우리나라에 흔한 새였으나 마지막 남은 한 쌍 중, 수컷이 1971년 밀렵꾼에 사살, 암컷 혼자 무정란을 낳고 살다가 1994년 이 황새마저 죽고 텃새 황새는 완전히 사라졌다.

1996년 7월 황새복원 프로젝트 시작

2002년 4월 황새 2마리 인공번식 성공

2003년 6월 황새 1마리 자연번식 성공

2004년 5월 3마리 자연번식 성공

2004년 6월 3일


이 비석이 세워지고 10년이 지난 2015년 9월 3일 황새 10 개체(자연방사 8, 단계적 방사 2)가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 "예산 황새공원"에서 야생 복귀식이 거행되었다.


올해 7주기를 맞는 해다. 그런데 이 황새들이 아직도 우리 자연에 살아있을까?

이미 8마리가 사망하고 실종됐다.


황새들의 수명(25~30년)을 감안한다면 모두 살아 있어야 정상적인 일.

그러나 현실은 너무 참담하기만 하다.

고귀한 탄생이 이 땅에서 물거품으로 끝나버리는 게 아닌가!


내가 실험실에서 번식시켰던 황새들이 제 수명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어가는 현실에 망연자실할 때가 너무 많아졌다. 박쥐 연구를 시작으로 내 학문의 꿈은 이제 노년을 마주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에 마음이 자꾸 무거워져 간다.


위대한 탄생.jpg 박쥐 연구의 시작으로 이제 노년을 맞는다. 아직 내 뇌리에는 황새의 고귀한 탄생에 대한 기억은 또렷했다.


#8

황새는 날개 편 길이가 무려 2미터에 달한다.

두루미도 이렇게 큰 날개를 지녔지만 나무와 같은 횃대에 올라가는 법이 없다.

그러나 황새는 무려 15미터 높이에 달하는 나무에서 횃대 삼아 자주 휴식을 취하며 살아간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황새들이 쉴만한 나무들은 거의 찾을 수 없다.

하는 수없이 황새들은 전신주나 송전탑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생겼다.방사된 황새들의 많은 숫자가 이 전신주 감전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이미 나는 2015년 방사한 10마리 가운데 2마리가 그 이듬해 전신주 감전사로 죽은 것을 목격했다. 날개가 시꺼멓게 타버린 채 땅바닥에서 발견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까?


우리나라 전신주 선로의 두선의 간격이 불과 40cm 정도밖에 안된다. 2미터 길이의 큰 날개를 지닌 황새들에게는 너무 치명적이다

원래 전신주의 선로에 한 선만 닿으면 감전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전신주의 전깃줄에 올라가 있는 참새나 제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렇게 큰 새을 위해 안전 설로 설비를 해왔다.

두선의 간격을 넓히거나 전선을 고정시키는 애자(사기로 된 절연체)를 하단으로 설치한다.

일본 토요오카시의 황새마을은 2005년 황새 야생 복귀 시작 이전부터 전신주 지중화 사업을 해오고 있다.


황새가 감전사로 죽은 뒤 나는 한전에도 알아봤다.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장래에 그런 설비로 대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전신주 지중화는 꿈도 꿀 수 없다.


지금도 자연으로 돌아간 황새들이 제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감전사로 죽어가고 있다.

긴 날개를 가진 황새는 결국 비운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새가 되고 말았다.


복주머니.jpg 꿈에 검정 복주머니가 보였다. 검은색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검은색의 상징은 우리 땅이 황새들의 무덤은 아닌지!


꿈에서 검정 복주머니와 그 주머니에 매달린 하얀 태그가 보였다.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검정 복주머니는 우리 땅 황새들의 무덤(?).

하얀 태그는 아직 모르겠다.


난 대한민국의 땅의 상징인 남산 아래를 칠흑과 같이 어둡게 칠했다.

황새를 자연에 내보내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할 바에야 우리 다음 세대는 애완동물처럼 우리에 갇혀 지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황새가 우리 땅에 복을 주러 왔지만 이미 무덤으로 변한 현실,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반도에 다시 황새 야생 복귀(?), 어쩌면 몇 세대가 지난 뒤의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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