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불러도 대답 없는 황새
#1
대한민국 황새복원의 메카인 예산 황새공원은 2015년에 세워졌다.
예산군 광시면 대리 약 10만 km2대지 위에 인공습지와 사육시설, 그리고 황새 문화관을 지었다.
여기에 투자한 돈이 190억 원의 국고와 지방비가 들어갔다.
사실 이곳에는 복원 연구의 핵심 시설인 지붕이 없고 펜스만 있는 황새 오픈 장이 마련되어 있다.
지붕이 없기 때문에 황새의 한쪽 날개깃 가장자리를 잘라, 황새가 펜스 밖으로 날아갈 수 없도록 조치한 시설이다. 이 시설을 만들기까지 나는 이미 교원대에서 지붕이 없는 사육 시설을 운영하면서 검증도 끝냈다.
그런데 난데없이 예산군에서는 날개깃을 자르면 황새가 불구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그런 민원이 들어와서 일까! 결국 지난번 군수는 나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오픈 장 지붕을 그물로 뚜껑을 씌우고 말았다.
이곳에서 황새들은 짝이 지워지면 언제든지 다시 날개가 자라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연구목적의 배려 공간이기도 하다.
날개깃 가장자리 제거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과 같다.
계속 자라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씩 잘라줘야 한다.
또 이 시설이 중요한 이유는 야생 방사한 황새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이 시설로 다시 찾아와 사육사가 공급해 준 먹이도 먹을 수 있다. 공원 주변의 농경지 생태계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쌀 생산만을 위해 농사를 지어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논 생태계가 회복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예산 황새공원이 야생 방사한 황새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야박하기만 하다.
과연 예산 황새공원이 우리나라 황새복원의 메카의 구실을 할까? 지금 나는 그런 의문이 든다.
설립 7년이 지난 시점, 어느 시골 동네에 미니 동물원으로 변질되어버린 예산 황새공원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2
서식지·번식지 복원한다고 외치면서 복원은 온데간데없고 황새들만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쩌면 건축물 공사할 때 벽면에 타일을 붙이는 공정에서 타일이 자꾸만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황새복원은 당초 부실공사가 아니었는지 되짚어본다.
서식지·번식지 재도입(Reintroduction)은 적극적 재도입과 포괄적 재도입 (소극적 재도입)으로 나뉜다.
적극적 재도입은 황새를 재도입(방사) 하기 전 서식지를 복원시키는 방법이라면 포괄적 재도입은 종 재도입 후 서식지를 복원시키는 방법이다.
물론 두 방법은 장단점이 있다. 전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은 있지만 종 복원 성공 확률은 높다. 그러나 후자는 그와 정반대다.
우리나라는 포괄적 재도입을 채택하여 방사를 했다.
이웃 일본처럼 적극적 재도입을 채택했다면 아마 지금보다 30년 뒤에나 자연 방사를 했어야 된다.
나의 황새 인공 증식 성공이 일본보다 10년 정도 늦어, 일본의 자연복귀 시점인 2005년, 우리는 2015년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 것이 모두 나의 오판이었다.
서식지 복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지금 황새들만 우왕좌왕하고 있다.
서식지 복원의 주체는 황새가 번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농촌 지역의 주민들이다.
그 지역주민들은 지금도 황새를 살리는 일은 자신들의 몫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여전히 황새 번식 농촌 마을에 농약이 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으로 빈약해진 우리 농촌에서 방사된 황새들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에 억장이 무너질 것만 같은 자괴감을 느낀다.
#3
지금처럼 우리나라 논에 제초제를 뿌려선 안된다.
제초제는 황새가 먹고사는 생물들마저도 절멸시킬 뿐만 아니라 벼에 오염 자국을 남겨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
국회에 '농경지 생태 관리 기본법 제정' 청원을 올렸다.
실제로 이 제도가 입법 발의로 이어질 때까지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당장 30일 내로 5만 명이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5만 명은 나에게 너무 큰 산이다.
나는 지금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인 시위를 지켜본 사람들은 날 환경운동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환경론자가 아니다.
멸종 위기 종, 황새를 살리고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실익에 초점을 맞춰 종 복원 사업을 진행시켜 온 학자일 뿐이다.
나는 황새 번식지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땅에 산업폐기물 매립지가 들어선다 해서 청와대 앞에서도 1인 시위를 했다. 그 침출물이 황새 번식지에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축 분뇨가 번식지를 오염시키는 것도 참을 수 없다.
골프장의 농약 사용도 황새의 서식지를 오염시키는 행위다.
사람들의 경제적 이득으로 황새의 서식지 밖에서 일어나는 행위는 난 반대하지 않는 사람이다.
새들은 예로부터 주거지인 고목(高木) 위에서 번식하며 살았기에, 항상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이 황새들이 주민들의 땅에서 살고 싶은 데, 주민들은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어찌해야 하는지' 하소연한다.
그래서 나는 농민들이 무농약으로 농사지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황새를 살리면 우리 삶의 질이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논 90% 이상에서 제초제가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가? 그게 모두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우리 아이들과 청년들의 아토피 발생과 불임률을 날로 증가시키고 있는데...
#4
국회에 '농경지 생태 관리 기본법' 입법 청원을 올리던 날,
5만 명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큰 산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황새라는 국가 공공재가 주민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농경지에 복원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농경지 생태관리 기본법은 일종의 황새 법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23조 1항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3항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정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황새 법은 황새만을 위한 법은 아니다.
현재 우리 국민의 90%가 농약에 오염된 농산물을 매일 먹고 있다(현재 우리나라 총 논 면적 가운데 무농약 농사를 짓는 곳은 10% 미만).
이는 우리나라도 유럽 선진국처럼 농경지 생태 관리 기본법 마련이 절실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5
자연재해가 참 무섭다.
폭설로 황새 사육장 지붕 그물이 폭삭 무너질까 봐 밤새워 내 연구원들과 눈과 사투를 벌인 일이 기억된다.
그다음 날 전국의 농촌 비닐하우스, 골프 연습장의 철재 기둥 그리고 동물원의 대형 조류 사육장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여기저기서 대형 산불이 일어나고,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했다.
유럽은 가뭄으로 강바닥이 드러나고 물류를 실어 나르는 선박 운항이 멈췄다.
지구의 생물 종이 더 빠른 속도로 멸종위기로 가고 있음을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나섰다.
지구의 재앙으로 이어지는 금세기 이런 지독한 기후변화는 지구의 탄생 이후 처음 겪는 일(?).
인간들의 탐욕은 끝이 없다.
우리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이 기후변화가 너무 무섭다.
#6
누군가의 손바닥에 王 자 글씨가 쓰인 것을 본 적이 있다.
혹시나 해 대통령실에 편지를 썼다.
내 생애에 황새복원이 마지막이라 생각해 지푸라기라도 잡아 볼 심정이었다.
농경지 생태 관리 기본법(일명 황새법) 제정에 주민들의 손에만 맡겨선 안된다는 생각 해서다.
"국가는 천연기념물이자 국제적 멸종위기 1급 보호조 황새를 보호할 의지가 있는가?"
공공재인 황새가 개인의 재산권을 더 이상 침해해선 안된다는 주민들의 목소리였다.
무지일까.
아니면 그 王은 백성에 대해 오만일까.
부질없는 일이었기에 마음을 다시 잡아본다.
우리보다 선진국들은 멸종 위기 종과 그 종이 사는 땅을 복원시키기 위해 국가의 지도자가 앞장서고 있다.그것은 한나라의 생태계 복원 선언이기도 하다.
미국의 클린튼 대통령과 일본의 국왕이 좋은 사례다.
황새 서식지 복원을 위한 "농경지 생태관리 기본법" 제정 청원은 5만 명의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데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허공에 대고 외쳤던 그 순간들.....
언젠가 하늘로부터 반향의 소리로 한반도 땅을 딛고 사는 백성들의 귀로 되돌아오길 바랄뿐이다.
#7
근대 정치사에서 박정희 대통령 하면 새마을 운동이 떠오른다.
국가 재건 최고 의회 의장 시절 그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를 방문한다.
가나안 농군학교는 그 당시 새마을운동 정신 교육의 원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당시 교장인 김용기 장로는 그를 앞에 두고 1시간가량을 식사 기도를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기독교 정신을 강조하고 "치약 하나도 아껴 쓰자" 등 물자절약을 역설한 기도였다. 기독교 신자도 아닌 박정희 의장은 밥상을 앞에 두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그 후 정부 주도의 새마을운동 붐이 일어났다.
새마을운동 덕에 우리나라는 농촌 근대화와 고도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그 시절 서양은 농약으로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고 있음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1962년에 출간된 '침묵의 봄'저자 레이첼 카슨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살충제나 제초제로 유독 물질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당시를 경고했다.
이는 미국에서 환경 생태운동이 확산의 계기가 되었다.
영국에선 "농경지 생태관리 기본법"입법 발의로 이어졌다.
농민을 농산물 생산자가 아닌 생태 관리자로 승격시키는 획기적인 법이었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와 함께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경제 성장의 그늘에 환경파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자각하고 멸종된 종(황새) 복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농약 없이 농사짓는 것이 국가 과제였다.
일본은 우리보다 70% 농약을 줄여오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80%, 캐나다는 우리보다 95% 이상, 거의 농약을 뿌리지 않는 국가다.
귀농한 교장 선생님이 나에게 해준 말이 기억된다.
"박사님, 고추는 농약을 뿌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물입니다.
내가 먹으려고 농약을 뿌리지 않으니 절반의 수확도 안됩니다.
수확한 것도 모양이 너무 형편없어요."
인삼밭을 재배하는 한 농부 환경 운동가는 "교수님! 나는 절대 인삼을 먹지 않습니다.
무려 60회나 되는 농약을 사용하는 곳이 우리나라 인삼 밭입니다."
나는 한식의 세계화가 참 걱정이 된다.
맛과 모양에서 세계적 일진 몰라도 서양의 까다로운 식품의 농약 잔류량 검사에 통과할지!
" 더 늦기 전 우리도 국가 지도자의 생태 복원 선언을 듣고 싶다."
황새는 말한다; "과연 너희들이 선진국 맞느냐? 이런 생태계로 어째 선진국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