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것이 선 듯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마 세상의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미련이 남아서 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온성을 향하는 길이라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길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황새들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크리스천이 좁은 문을 지나 십자가 언덕에 섰던 것처럼, 나는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만드셨던 지구라는 이 우주선에 올라 영적인 여행을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크리스천은 도덕마을이 세속적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전도자의 안내를 받아 좁은 문으로 향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마침내 크리스천은 좁은 문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크리스천이 주저 없이 좁은 문을 두드리는 순간 '선의'가 문을 열어 물었습니다. "누구를 찾아오셨나요?" "예, 저는 멸망의 도시를 떠나 시온 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저 같은 죄인을 받아 주시는 가요?"라고 크리스천이 말하자 선의가 온 마음을 다해 성경말씀(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을 들려주었습니다.
좁은 문(2022)
선의는 다시 그를 문 안으로 잡아당기며 말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이 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바알세불의 성채가 있는데, 거기서는 이 문을 지나는 순례자들을 막아 보려고 화살을 쏘아댄답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제 저 앞에 보이는 좁지만 곧은길로 가시면 됩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닦아 놓은 길이지요.
저 앞을 보십시오. 저쪽으로 뻗어 있는 좁은 길이 보입니까? 그 길이 이제부터 당신이 가야 할 길입니다. 당신의 조상들과 많은 예언자들, 그리스도와 또 제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인데, 마치 자로 그어 놓은 것처럼 똑바로 닦여진 길이며 당신이 이제부터 가야 할 길입니다." "제가 짊어지고 있는 이 짐이 너무 무거운데, 혹시 이 짐을 벗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비록 당신의 짐이 무거울지라도 구원의 장소에 이를 때까지는 참고 그대로 지고 가십시오. 거기에 이르면 당신의 짐은 저절로 당신의 등에서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크리스천은 허리띠를 동여매고 선의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선의와 크리스천(2022)
좁은 문에 들어선 황새
내 인생의 순례길에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황새를 복원하려 했던 자연과학자입니다. 아직 자연에 현존하는 그 황새(Oriental Stork)의 종조(種鳥)를 가지러 러시아 아무르 강까지 날아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한 대학의 연구실에서 15년 동안의 노력 끝에 번식을 성공시켰습니다. 2015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10마리의 황새들을 자연에 복귀시켰습니다. 그 후 나는 그 대학에서 정년 퇴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황새들이 한 지자체 단체장의 손에 들어가더니 해마다 무분별하게 방사되고 있습니다.
일반 다수의 생각은 황새를 자연에 풀어놓으면 복원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황새가 그 사람들의 생각대로 자연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외쳐보지만, 전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항상 다수의 선택이 옳은 길은 아닙니다. 생물 다양성 회복 없인 황새만 날린다면 우리 땅이 회복되기 전에 이 황새들은 자신들의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됩니다.
근대 인류가 발견한 최선의 정치 체제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민주주의일 것입니다. 근대 이후를 살아온 우리는 민주주의 원리를 따라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정의'라는 견해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수의 생각이 모든 분야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둥글며,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그의 이론을 발표했을 때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대다수의 생각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 황새복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새복원은 연구 사업인데,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참 많이 어렵습니다. 황새들의 희생이 불가피할 것 같아 늘 마음이 조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황새가 내 나라에 많이 번식하고 살았을 때는 내가 이 땅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황새들이 어떻게 이 나라 땅에서 번식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조차도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황새들이 자연에서 번식이 끝나면 어디로 가는지 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자연과학자로 과거 우리나라 황새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그들이 해 뜨는 동방의 나라에 살다가 어디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는지를 밝혀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학자로서 그 가설 하나를 설정했습니다.
‘한반도 땅에 한민족이 살기 훨씬 이전, 그들은 러시아 아무르 강가 습지에서 번식을 했다. 동방의 나라에서 아름다운 습지를 발견하고 한 두 마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민족이 논을 경작하면서 논습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황새들은 사람들이 경작하는 마을까지 날아와 민가가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가 둥지를 짓고 번식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황새들은 다 자란 새끼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날아갔다. 아마 중국의 양츠강이 그들의 겨울 서식지였을 것이다. 물론 겨울이 지나면 다시 한반도로 날아와 번식을 하며 살았다. 수천 년을 이렇게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사람들은 농산물 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지개간과 농약을 뿌리기 시작했고, 게다가 한국 전쟁으로 폭격의 화염 속에 황새의 둥지마저 초토화가 되었다. 수천 년을 살아왔던 이 땅에서 불과 1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황새들은 모두 이렇게 사라졌다.'
한국황새 등지 (2019)
황새를 위한 황새 복원, 즉 황새를 그냥 자연에 방사하는 행위는 진정한 황새 복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 관심을 갖고 이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황새와 같은 생물체들은 숫자로는 부르시지만 사람들은 우리의 이름으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황새가 살아가는 곳의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맞추어졌지, 황새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황새를 증식시켜 놓고 보니, 내 뜻에 동의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이 나라에선 황새 복원은 내겐 너무 좁은 문이었습니다.
탈출한 황새
2014년 봄이었습니다. 내가 관리하고 있던 황새 사육장(충북 청원군)에서 2년생 암컷 황새가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황새를 그곳 강이름을 따서 미호라고 불렀습니다. 미호는 탈출이라기보다는 사육사가 먹이를 공급하던 중 문이 조금 열렸나 봅니다. 잠깐 사이에 미호는 열린 문틈사이로 빠져나오자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7개월 후 어느 겨울, 경남 하동에서 발견되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제보자는 다리에 붙어있는 가락지를 보고 내게 알려왔습니다. 그 이듬해 초봄, 사육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충북 진전의 백곡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충북 진천은 우리나라 과거 황새의 번식지 중 한 곳이었습니다. 내가 세운 가설이 맞다면 그곳에서 번식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5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미호는 그곳에서 3개월도 채 버티지 못하고 농약 중독으로 사라진 뒤 미호의 행방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농약 중독 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농사철이라 근처에서 동네 주민이 풀약이라고 하면서 제초제를 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미호가 날았던 장소에서는 이미 풀들이 노랗게 변해있었고, 그 옆에는 빈 농약병들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내게는 이 일이 노아의 방주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물로 심판을 내리자 노아는 물이 줄어들었는지 보려고 맨 먼저 까마귀 한 마리를 바깥으로 내보냈습니다. 노아의 이런 시도는 비둘기로 이어졌습니다.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오는 것을 보고 노아는 땅 위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내 황새들을 바깥으로 내 보낼 시간이 아님을 탈출한 미호가 알려 준 셈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이 이 땅에 물로 심판한 사건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땅에 농약과 제초제를 뿌려 황새마저 발붙일 곳이 없는 오염된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침묵의 소리
내가 자연과학자로 가장 처음 만나 동물은 박쥐입니다. 내가 박쥐 탐지기에 도움을 받아 박쥐의 초음파를 처음 들었을 때, 나의 연구에 대해 기쁨과 희열을 만끽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평생 살아오면서 내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박쥐들은 초음파로 먹이를 찾고, 장애물을 분간합니다. 내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던 흡혈박쥐도 초음파를 주고받으며 서로 대화를 합니다. 그 초음파를 초음파 탐지기로 처음 들었을 때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은 소리로 내게 들렸습니다.
멀리서 나방이 날개를 펄럭거리며 다가 오자 반향음은 높낮이를 재빨리 바꾸었습니다. 거의 한 옥타브를 차이를 두고 피치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습니다. 박쥐는 소리로 한밤중에 스트로브(섬광 등)를 켜고 춤추는 사람들이 깜빡거리는 빛에 따라 순간 정지된 듯해 마치 구분 동작의 연속처럼 보이는 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 하나님은 태초에 이 소리도 만드셨구나!” 사람들이 이 땅에 살기도 훨씬 전부터 말이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우리가 사는 이 지구도 태양을 중심으로 1초에 무려 30km 가까운 속도로 돌고 있습니다. 시속으로 계산하면 무려 10만 km가 훨씬 넘는 속도입니다. 이때 발생하는 소리도 박쥐의 초음파보다 수십 만배 고음의 초음파 괴음을 냅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리를 듣는다면 이 지구에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의 귀속 달팽이관 안에는 주파수에 따라 진동하는 아주 얇은 기저막이 있습니다. 기저막을 길게 펼치면 3cm 정도도 안됩니다. 달팽이관 입구는 저주파를 감지하고 달팽이관 끝은 고작 20,000hz 고주파(2만 헤르츠 이상의 음을 초음파라고 함)를 감지할 뿐입니다. 박쥐의 초음파나 지구가 공전하면서 내는 이 소리는 분명히 이 우주에는 존재하지만 기저막 진동 한계치를 벋어 난 이 소리들은 들을 수 없게 그분이 처음부터 설계하여 만드셨습니다.
지구 우주선
하나님은 태초에 우주 만물을 만드셨고, 지구라는 우주선 안에는 동식물부터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승객인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그 후 우주선에는 많은 승객들이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 그 우상을 자신들의 신으로 모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죄라는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인류는 진창 속에서 씨름하며 사는 허무한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분 아들의 삶을 본떠 빚으시려고 결정해 두셨습니다. 그분의 아들은 그분께서 회복시키신 이 승객들의 맨 앞줄 조종칸에 자리 잡고 계십니다(롬 8:28-29). 이 우주의 조종사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오른쪽 조종간을 잡고 계신 분이 바로 독생자 예수님이십니다.
방금 좁은 문을 통과한 크리스천은 지구라는 우주선에 올라탔습니다. 한 승무원이 십자가 표시가 있는 좌석에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이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받아 주었습니다. 크리스천은 그동안 짓누르고 있던 죄라는 짐을 벗고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하며 행복에 겨워 소리쳤습니다." 주님이 우리같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 고통을 당하신 덕에 내가 쉼을 누리고 그분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신 까닭에 내가 생명을 얻었구나" 두 번째 승무원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친절하게도 크리스천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성경(슥 3: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해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말씀을 생각해 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4:22-24)에서 ‘이것은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라 말합니다.
세 번째 승무원은 크리스천에게 다가와 이마에 인을 쳤습니다. 그리고서 그에게 단단히 봉인된 두루마리 하나를 건넸습니다. 크리스천에게 이 우주의 순례길에서 이 두루마리를 자주 펼쳐 보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은 (엡 1:13) ‘그 안에서 너희로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으니’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는 이 지구의 우주선을 타고 가면서 두루마리 성경 말씀도 수시로 꺼내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 이 우주선 안에는 크리스천만이 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80억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함께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지구 우주선(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