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누구나 멘토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하늘나라를 열망하고 사는 신앙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생각합니다. 크리스천은 해석자가 그의 멘토였습니다. 해석자는 크리스천에게 시온성을 향한 순례길에서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 할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매일 같이 내 속에 주님의 임재를 열망하고 사는 내게도 사도 바울이란 영적인 멘토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크리스천의 몸은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두루마리가 쥐어진 채 선의의 안내를 받고 해석자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전 멸망의 도시에서 온 나그네인데 이 댁의 주인과 잘 아시는 분이 저에게 이리로 와서 이 댁의 주인을 뵈면 그분이 유익한 것을 보여 주실 거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 댁의 주인이 안에 계신가요?" 문지기가 주인을 부르러 간지 얼마가 지나자 해석자라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멸망의 도시를 떠나 시온산을 향해 가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순례길에 도움이 될 만한 유익한 것들을 보여주실 거라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크리스천은 정중히 인사를 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보여 드리지요". 해석자의 친절에 크리스천은 매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해석자는 하인에게 촛불을 켜라고 명령하면서 크리스천더러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해석자와 크리스천(2022)
물 뿌리는 자와 빗자루로 쓰는 자
해석자는 크리스천을 어떤 매우 넓은 객실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여태껏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아서 온통 먼지 투성이었습니다. 해석자는 잠시 동안 그곳을 둘러보더니 하인을 불러 청소를 시켰습니다. 하인이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을 때 어찌나 먼지가 많이 일어나는지 크리스천은 거의 질식할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해석자는 옆에 서 있던 한 여인에게 "물을 이리로 가져다가 뿌려 보아라"하고 일렀습니다. 그녀가 물을 뿌리자 먼지가 가라앉아 방은 말끔해졌습니다. "이 객실은 복음의 달콤한 은혜로 성화된 일이 한 번도 없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먼지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하여 또 모든 인간을 이렇게 만드는 부패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방을 쓸기 시작한 사람은 율법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물을 뿌려 준 여자는 복음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죄를 발견하고 금지시키기는 하지만 아예 죄를 뿌리 뽑지는 못합니다. 여자가 마루물을 뿌려 모든 먼지를 가라앉힌 것처럼, 죄는 사라지고 근절되었습니다. 우리 영혼도 믿음으로 정결케 될 때 영광의 왕이 기거하시기에 합당한 장소로 변화됩니다."
물 뿌리는 자와 빗자루로 쓰는 자(2022)
해석자가 크리스천의 손을 잡고 다른 작은 방으로 인도했습니다. 그곳에는 욕망과 인내라는 두 소년이 있었습니다. "욕망이 불만을 품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크리스천이 묻자 해석자는 "그 소년들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들을 그들에게 갖다 줄 테니 내년 초까지만 기다리라고 했지요. 그런데 욕망은 지금 당장 달라고 하고 인내는 기꺼이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그러나 어떤 사람이 보물 한 자루를 짊어지고 욕망에게로 다가와서 그의 발아래 쏟아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욕망은 그것을 집어 들어 제멋대로 낭비하고 즐기면서 인내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욕망은 모든 것을 낭비해 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 조각뿐이었습니다."
욕망과 인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크리스천이 물었습니다. "이 두 소년은 상징적인 인물들입니다. 욕망은 현세의 인간들을 상징하고 인내는 내세의 인간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방금 본 것처럼 욕망은 지금 당장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갖고자 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사람들도 지금 당장 그들이 차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고자 하며, 미래의 세상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손에 잡은 한 마리의 새가 숲에 있는 두 마리의 새보다 낫다>는 속담이 장차 다가올 세상의 복락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보다 그들에게는 더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보다시피 모든 것을 순식간에 낭비해 버리고 겨우 누더기 조각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던 욕망처럼 이 세상의 물질에만 눈이 어두운 모든 사람들도 현세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결국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욕망과 인내(2022)
기름 부음과 물 뿌림
해석자는 다시 크리스천의 손을 잡고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한쪽 벽난로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벽난로 옆에 서서 그 불길을 끄기 위해 많은 물을 끼얹고 있었으나 불은 꺼지기는커녕 점점 더 높이 그리고 더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크리스천이 물었습니다. "이 불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불에 물을 끼얹어 꺼버리려고 노력하는 자는 마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은 점점 더 세차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해석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크리스천을 데리고 벽의 뒤 쪽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손에 기름병을 들고 몰래 그러나 끊임없이 불 위에 기름을 끼얹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이미 넣어 준 은혜를 보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은혜의 기름을 부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은혜를 없애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뛰어도 인간의 영혼은 이분으로 인해 이분의 자비로우신 은총을 변함없이 누리게 됩니다. 또한 당신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분이 불을 보전하기 위하여 남몰래 벽 뒤에 서서 끊임없이 기름을 부어 주고 계신 것은 한 번 악마의 속임수에 빠진 영혼에게 그 은혜를 유지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그동안 많은 유익한 것들을 제게 가르쳐주셔서... 자,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름 부움과 물뿌림(2022)
내가 만난 해석자
크리스천은 해석자를 만나 그의 신앙심을 더욱 고취시켰지만, 나의 순례길의 해석자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원래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고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날도 그가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가던 중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눈이 멀게 되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의 여러 회당에 가져갈 체포영장을 받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다마스쿠스 외각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눈부시게 환한 빛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닥에 쓰러졌는데,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다마스쿠스의 바울(2022)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해치려고 하느냐?"
주님,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사행 9:1-5)
바울이 회심을 하고 순교하기 까지 하나님께 순종한 삶을 살았습니다.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원래 우리는 죄 없이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에 의해 죄가 들어와 하나님과의 분리를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를 이런 지경에 빠뜨린 아담은, 또한 우리를 거기서 구원해 주실 분을 앞서 가리키는 존재이기도 합니다(롬 5: 12-14). 그러나 우리를 구출하는 이 선물은, 죽음을 초래하는 그 죄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의 죄가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분리라는 그 죽음의 심연에 밀어 넣었다고 할 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쏟아부어지는 이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가져다줄까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 사람이 잘못을 범해 우리 모두가 죄의 죽음이라는 곤경에 처하게 된 것처럼, 또 다른 한 사람이 올바른 일을 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거기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롬 5:18-19). 죄는 우리가 은혜라고 부르는 그 전투적 용서에는 도저히 맞수가 되지 못합니다. 죄와 은혜가 맞설 때, 이기는 쪽은 언제나 은혜입니다. 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죽음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전부인데, 이제 그 일도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모든 것을 바로 세우고 계시기에, 은혜는 우리를 생명의 삶 속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끝없는 삶, 다함없는 세상 속으로 말입니다(롬 5:20-21)."
나는 웬만한 목사님들의 설교에는 별로 감동받지 않습니다. 너무 습관적으로 예수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쓴 13편의 서신을 읽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자꾸 읽고 또 읽어도 새롭습니다. 13편의 서신 중 로마서는 날 영적인 삶으로 인도하고도 남을만한 글들로 꽉 차있습니다. 메시지 저자 존 피더슨 목사는 로마서 서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기 약 30여 년 전, 역사를 “그전”과 “그후”로 나눠지게 하고 세상을 바꿔 놓은 한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광대한 로마 제국의 한 외딴 귀퉁이, 팔레스타인의 유다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사람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일, 부산하게 돌아가던 권력의 도시 로마에서는 분명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그런 사건이었다. 이 편지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읽었을 뿐, 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읽지 않았다. 로마에는 읽을거리가 많았다. 황제의 칙령, 세련된 시, 정교한 도덕철학 등이 넘쳐났고, 게다가 그 대부분이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글들은 결국 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편지는 그렇지 않았다.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는 그 로마 작가들이 쓴 책들 전부를 다 합쳐 놓은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정말 내게 바울이 없었더라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를 모르고 살뻔했습니다. 잠에 깨어 일어나, 다시 나는 성경을 꺼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오늘 내게 말합니다(벧후 1:11).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고 선택하신 것이 옳았음을 입증해 보이라!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향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다시 베드로는 베드로후서(1:15)에서 이렇게 부탁하고 있다. ‘나는 조만간 내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내가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이 모든 것을 문서화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러분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게 말입니다.’
나는 성경의 저자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시몬 베드로라고 감히 말합니다. 그는 오늘날처럼 출중한 스펙을 소유한 인물도 아니고, 그는 지식인도 아닌 어부 출신입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당대 최고의 지성과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베드로 전후서 두 편밖에 쓰지 못했지만 학식을 갖춘 학자도 아닌 어부 출신의 신분에서 하나님이 그를 불러주지 않았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바울처럼 지성과 학식을 갖춘 훌륭한 가문의 DNA를 가진 사람도 택하시지만, 베드로처럼 보잘것없는 DNA도 선택하여 예수님의 수제자로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의 이런 기록들도 믿음의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주안에서 선을 이루는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