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단순 나태 거만

by 박시룡

게으른 사람을 보면 우리는 개미의 부지런함을 본받으라 합니다. 정말 개미가 부지런할까요? 개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들은 그리 부지런한 편은 못됩니다. 생물학 분야의 최신 화두가 되는 학문이 사회생물학입니다. 개미는 사회생물학 연구의 기초를 제공한 동물입니다. 사회생물학 이론과 개미를 바탕으로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심에 대해 천로역정의 인물들- 단순, 나태, 거만, 허례, 위선-과 함께 하려 합니다.



짐을 벗은 크리스천은 언덕 아래에서 세 사람이 서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 손목에는 쇠고랑이 채워져 있었고 그들 각자의 이름은 단순, 나태 그리고 거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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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우) 나태(중앙) 거만(좌) (2022)


"여보세요! 만일 원하신다면 제가 당신들의 쇠고랑을 풀어보겠습니다." 크리스천은 세 순례자를 보고 답답한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도우려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런 위험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냥 이대로가 얼마나 살기 좋은데요(단순)." "전 여기서 조금 쉬면서 수다나 떨어야겠습니다(나태)." "사람들은 모두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공연히 남의 일에 참견 마시고 댁의 일이나 잘 알아서 하시지요(거만)." 크리스천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스러운 상황에 처한 세 순례자를 도우려 했지만, 그 반응은 오히려 냉담, 게으름, 과민한 반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하는 수 없이 크리스천은 이 사람들과 작별을 하려 할 때, 좁은 길 저 쪽에서 왼편의 담을 뛰어넘어오는 두 사람을 목격했습니다. 한 사람은 허례이고 다른 한 사람은 위선이었습니다. "두 분은 어디서 오는 길이며 또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크리스천은 대화를 나누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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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와 위선(2022)


"우리는 헛된 영광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인데 영예를 찾으려고 시온 산으로 가는 길입니다"(허례) "이 길 어귀에 문이 하나 서 있는데 왜 그리로 들어오지 않고 담을 넘어오는 겁니까?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라고 성경에 쓰여있는 것을 모르십니까?"(크리스천)."우리뿐 만 아니라 우리 고장 사람들은 입구에 있는 문을 통해서 시온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 힘들다고 모두 지름길을 택해 우리처럼 담을 넘어오는 것이 예사지요"(위선)."그처럼 불법으로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하늘나라의 주님의 뜻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한 죄가 아닐까요?"(크리스천).


"그런 일에 대해 당신이 이러쿵저러쿵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고장 사람들이 천 년이상 계속되어 온 관습입니다"(허례). "저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행하고 있지만 당신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길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담을 넘어오는 자는 모두 도둑으로 규정짓고 있습니다"(크리스천). "율법이나 규례에 대에서는 우리도 당신 못지않게 양심적으로 잘 따르고 있으니 그 점에 대해 당신이나 우리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위선).


대화를 하면서 걷던 허례, 위선 그리고 크리스천은 곤고재 산자락에 이르렀습니다. 허례와 위선은 산을 왼편으로 감싸고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은 위험이라는 길이었습니다. 이름이 가리키듯, 곧바로 외길이 아니라 다양한 신앙이념에 따라 갈가리 찢어지는 복잡한 길이었습니다. 비탈을 오르자면, 생각했던 것보다 품이 훨씬 많이 들겠다 판단한 위선은 오른 편으로 난 멸망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역시 똑바른 대로가 아니라 다른 신앙과 사회적 철학을 쫓아 천갈래 만갈래로 나뉘는 샛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지구의 우주선에서 받은 두루마리를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지고 전도자가 가르쳐준 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개미로부터 얻은 영성

존 번연이 단순 나태 거만이라는 사람들을 크리스천의 순례길에 등장시킨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영적인 게으름을 지적하고 싶은 그의 독창적 이야기 방식입니다. 원문에 보면 그때그때마다 성경 주석을 달아 놓은 것에서 그의 생각이 읽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언 6:6-8) 하고 개미를 보고 교훈을 삼으라고 합니다.


지금처럼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하기 전에는 개미와 같이 동물을 보고 지혜를 배울 것을 권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도 동물행동학을 연구하기 전에는 '나무늘보' 같이 이름에서 금방 알 수 있는 동물들을 제외하면 모두 부지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동물을 관찰해 보면, 사냥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동물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들은 한 장면을 찍기 위해 하루종일, 심지어는 며칠밤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나도 갈매기 어미와 새끼 간의 의사소통 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 방송국 다큐촬영팀을 대동하고 경상남도 홍도라는 무인도 번식지를 찾았을 때, 연구자로서 지루함을 느꼈을 때가 많았습니다.


개미의 연구로 사회생물학(Sociobioloy)분야를 처음 개척한 에드워드 윌슨(E.O.Wilson) 교수는 미국 하바드대에서 개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다가 만 92세로 2021년 12월에 고인이 되셨습니다. 그의 방대한 분량의 저서 '사회생물학 (Sociobioloy, the new synthesis)' 한글판 번역에 내가 직접 참여하면서 '하등 생물에서 고등 사회성 생물, 그리고 인간 집단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통일된 그의 생물학적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사회생물학은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학, 문화인류학, 윤리학 그리고 도덕철학까지 영향을 미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내 동업자가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같은 동업자로 그가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개미사회에서 인간사회와 같이 별의별 직업군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무엇보다 개미들은 주로 냄새라는 신호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개미들의 사회에는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 개미가 있습니다. 이들은 평생 허드레한 일을 도맡아 합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개미에게는 쓰레기 냄새가 납니다. 다른 개미들은 그 냄새를 맡으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쓰레기 처리 개미가 몰래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쓰레기 냄새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다른 개미가 쓰레기 냄새를 맡자마자 쓰레기 더미 쪽으로 떠밀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개미사회에는 장의사 개미가 있는데, 죽은 시체에서 나오는 올레산 냄새에 특별히 민감합니다. 사람처럼 숨 소리나 심장 박동을 확인하고 생사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순전히 냄새를 맡아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과학자들은 조금 짓궃을지 몰라도, 살아있는 개미의 몸에 올레산을 묻혀 실험을 합니다. 살아 움직이는 그 개미에게 올레산 냄새가 나면 다른 개미에 의해 곧바로 공동묘지로 끌려갑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산 것이 불과 300만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미는 1억 4천만 년이 넘습니다. 개미는 그냥 허투루 나이만 먹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보다 1억 년 이상을 살아왔기에 명실상부한 하나의 문명, 즉 경험을 축적하여 개미들만의 문명을 건설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서 개미의 종을 1만 4천 종을 찾아냈습니다. 현대 과학자들은 아마 이것보다 몇 배 더 있을 거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남극과 북극을 제외한 지구를 점령해 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보다 훨씬 일찍, 각 군체들은 지구의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면서 문명생활을 해왔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애벌레를 사용하여 얇은 천을 만들 줄 알았고, 일개미들을 활용해서 먹이를 공급할 줄 알며, 일개미들을 살아있는 냉장고로 변형시킬 줄 알았습니다. 또 진딧물을 사육하여 분비물을 짜낼 줄 알고, 술과 곡물 가루와 버섯을 재배할 줄도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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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2019)



산에 오르면 하늘과 땅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좁쌀크기도 안 되는 작은 뇌를 가진 이 생명체 안에도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땅은 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과학자들의 탐구를 통해 이 작은 생명체의 신비가 계속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한때 자연과학자로 살았던 내가 오늘 조금 더 힘을 내 보려 합니다. 이 생명들이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살기 훨씬 전부터 다함 없는 세상을 만드신 분임을 소리 높여 외쳐봅니다.



개미사회의 인간

윌슨 교수의 개미 저서를 읽고 영향을 받았을 까요?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드 베르베르의 '개미'에서 인간을 신으로 믿는 개미 사회의 한 단면을 허례와 위선과 같이 반기독교적 독자들에게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를 소설의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103호를 인간들에 대한 원정대가 조직되었을 때 원정대에 참가한다. 그 뒤 인간의 무의식적인 공격에 의해서 원정대가 전멸하고 혼자서 벨로캉으로 돌아간다. 이 원정대의 생존자는 103호, 9호, 23호 세 마리 개미뿐이다. 그 뒤 인간들을 신으로 받드는 광적인 종교 집단의 교주이자 예언자로 행세한다. 복음이라는 것으로 개미 사회에 전파하여, 그들의 종교의 상징인 ‘손가락’을 의미하는 동그라미 표시를 널리 퍼트리며 개미 사회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새 벨로캉의 여왕이 된 103호 역시 종교를 마뜩잖아하여, 신을 믿는 개미들을 학살한다. 최후: 개미의 역사상 어떤 여왕개미보다도 숭배받는 존재로서, 예언자 개미 23호를 탈출시키기 위해 수많은 ‘손가락들을 신으로 섬기는 개미’들이 기꺼이 희생한다. 탈출하던 23호의 앞길을 거대한 덩치의 지렁이가 가로막자, 지렁이의 옆구리에 작은 구멍을 파고 자신의 신도들과 그 안에 들어간다. 통증의 감각이 거의 없는 지렁이는 그 상태로 지표면으로 나오는데, 이때 거대한 박새가 지렁이를 먹고, 하늘로 올라간다. 결국 23호와 그의 신도들은 죽으면서 신들의 나라로 올라간다'라는 '개미'소설가의 상상력, 자연과학자인 내가 봐도 참 많이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개미 사회를 등장시켜 인간의 신앙을 비하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실제 개미를 관찰하고 있으면 이내 그런 상상은 얼마든지 가능하게 합니다. 나는 인왕산에 올라 여의도의 높게 솟은 고층건물, 남산 타워를 넓은 창공을 통해 바라보고 있지만, 내 발밑의 개미들은 그걸 볼 수 없습니다. 아니 눈이 멀어볼 수 없는 것이 아니고, 개미들의 눈은 가까운 거리의 물체는 명암이나 실루엣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내 발밑에서 나를 향한 탐색길에 나선 개미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허리를 굽혀 내 손톱으로 바위 바닥을 스치자 그 개미는 뒤로 돌아 줄행랑을 치고 말았습니다. 개미는 다리에 나 있는 진동을 감지하는 털로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둥과 번개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개미들의 감각 세계로는 인간을 신으로 여긴다는 소설가의 상상력이 우리 사회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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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인간(2021)


동업자인 윌슨 교수는 무종교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왜 윌슨 교수와 내가 이렇게 다를까? ‘예수를 믿으면 행복해질까’ 책을 쓴 이철환 작가는 그의 책’에서 아름다운 꽃을 보고 그의 이름을 알고 싶어 계속 부르면 답해준다고 딸아이에게 설명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꽃 이름을 알고 싶으면 그 꽃에게 ‘네 이름이 뭐니?’하고 물어봐. 그러면 언젠가는 꽃이 자기 이름을 말해 줄 거야”. 딸아이는 아빠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길을 걷다가 그 꽃 앞에서 아이와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옆을 지나다가 그 꽃을 바라보며 “은방울꽃 참 예쁘다”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때서야 작가는 그 꽃의 이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윌슨은 평생 그 꽃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 나는 평생을 그 꽃의 이름을 알고 싶어 그 꽃 앞에서 쪼그려 앉아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꽃 앞에 앉아 있을 때 내 옆을 지나가면서 그 꽃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에게 이렇게 그 생명의 꽃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나는고백합니다. 지금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를 사랑하시고 날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나는 이 삶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노벨상을 받아 세상의 존경과 칭송을 받고 사는 어떤 과학자의 삶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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