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고함이 있다면 영적인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머문 곳은 영적인 아름다운 집입니다. 그는 그동안의 순례길에서 만날 수 없었던 분별, 경건, 자애를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쉼을 얻기도 하지만 다시 영적인 무장을 합니다. 나는 아름다운 집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귀중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식사때마다 주님의 생명을 직접 받아 먹었습니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대한 감사를 뛰어넘는,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의 영원한 생명이 내속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었습니다.
하룻밤을 묵기 위해 크리스천은 아름다운 집을 향해 여정을 서둘렀습니다. 아름다운 집에 도착한 크리스천은 문을 두드렸습니다. "계신가요?" 문지기가 나와 크리스천을 맞이했습니다.
"어떤 일로 오셨는지요?"
"네, 여기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나요?"
"이곳 사람들은 당신을 지원하고 힘을 주기 위해 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오다가 두루마리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찾아가지고 오려다 보니 이렇게 늦은 밤에 도착했습니다."
"그럼 이 댁의 아가씨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분별 경건 자애라는 세 처녀가 크리스천을 마주해 주었습니다.
자애와 크리스천(2020)
"어떻게 집을 떠나 이 길을 오시게 됐나요?"
"제 주위 모든 것이 멸망할 거라는 엄청난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전도자가 좁은 문에 대해 얘기해 줘서 제가 이 길을 오게 됐다는 게 그저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 길을 찾지 못했을 겁니다."
" 멸망의 도시가 생각나지는 않나요"
" 종종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세상의 생각들로부터 영영 자유로워지지 못하면 어쩌냐... 두려울 뿐입니다. 저는 그저, 그런 세상 생각들이 저에게 수치심이고,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즐거움은 이제 저에게 약속된 왕국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부인은 없었나요? 왜 같이 오지 않았죠?"
"아내가 있었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아내는 세상의 것들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아내를 데려오려고 최선의 노력을 했나요? 혹시, 당신의 동기를 오해하게 행동한 것은 아닌가요?"
"아니에요. 저는 제 모든 말을 사랑으로 하도록 매우 조심했어요. 아내가 오히려 불만스러워한 것은 제가 죄를 짓지 않으려 얼마나 조심하는지였어요. 그리고 우리가 원수까지도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요. 제 아내는 이런 것을 바보스러워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싫어서 아내가 돌아섰다면 어쩔 수 없군요."
크리스천은 이야기를 마치고 맛있는 저녁까지 대접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루 밤을 평안히 쉴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모두가 일어났습니다. 함께 모여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눈 뒤, 그들은 크리스천이 이 집에 보존되어 있는 여러 가지 진기한 물건들을 구경한 뒤에 길을 떠나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맨 먼저 그들은 크리스천을 서재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아주 오랜 옛날의 일들을 기록해 놓은 책들을 크리스천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기록들 가운데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예언자들.... 믿음의 행위로 그들은 나라를 무너뜨리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자와 불과 칼의 공격을 막아냈고,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었으며, 전쟁에서 이겨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여자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랑하는 이들을 맞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나은 부활을 사모한 나머지, 굴복하고 풀려 나가는 것을 거부한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학대와 채찍질을 기꺼이 받았고, 쇠사슬에 묶여 지하굴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돌에 맞고, 톱으로 켜서 두 동강이 나고, 살해되어 싸늘한 시체가 된 이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짐승 가죽을 두르고 집도 친구도 권력도 없이 세상을 떠돈 이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 혹독한 세상의 가장자리로 다니면서도, 최선을 다해 자기 길을 갔습니다(히 11:32-38).
화형에 순교한 초대교회의 기독교인들(2022)
그들은 크리스천을 병기창고로 데리고 가서 순례자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집주인께서 마련해 놓은 여러 가지 무기들(칼, 방패, 투구, 갑옷, 신)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또 주님의 일꾼들이 놀라운 일들을 행하는 데 사용한 몇 가지 도구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의 지팡이(출 17:9), 야엘이 시스라를 죽일 때 사용했던 말뚝과 방망이(삿 4:21), 디드온이 미디안 군대와 싸워 그들을 물리칠 때 사용했던 빈 항아리와 나팔과 횃불(삿 7:16-23), 또 주님께서 장차 심판하실 날에 죄인들을 멸하실 칼(렘 21:9; 살후 2:3-4)도 보여 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세 처녀의 안내를 받아 지붕 꼭대기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크리스천이 남쪽을 바라보았을 때, 저 멀리 한참 떨어진 곳에 매우 아름답고 보기 좋은 기쁨의 산들이 눈앞에 전개되었습니다.
기쁨의 산 (2020)
울창한 산림, 포도밭, 모든 종류의 유실 수가 있는 과수원들, 온갖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분수들... 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답고 멋진 절경이었습니다. 그 땅의 이름은 임마누엘의 땅, 바로 크리스천의 다음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옙 6:11) 순례길을 나섰습니다. 크리스천의 몸에는 이미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을 차고 기쁨의 산을 향했습니다.
유학시절의 아름다운 집
나에게 한평생 아름다운 집이 있었다면 유학 시절 독일이라는 집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은 그 아름다운 집에서 3일을 유했지만, 나는 자그마치 6년이란 세월을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크리스천이 분별, 경건 그리고 자애를 만났다면, 나는 베렌트 부인(C. Behrendt), 친구 하이너( Heiner Doersam), 슈미트 (U.Schmidt) 교수를 만났습니다.
베랜트 부인, 친구 하이너, 슈미트 교수 (2021)
베렌트 부인은 독일 교회에서 날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부모와 같이 돌봐준 자애로운 분이었습니다. 친구 하이너는 우연히 독일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하이너는 내 독일어 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날 데리고 여러 대학의 교수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독일어 소통이 부족해 날 대신해 교수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약학대학원 졸업을 앞둔 학생이었습니다. 슈미트 교수는 나의 지도교수였습니다. 그는 날 독일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편안히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준 분별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이 순례길을 걷거나, 자연 과학자로 연구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나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안에서 모두 헌신적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독일의 아름다운 집, 황새 마을에서 쉼을 얻었습니다. 유럽에는 독일외에도 황새 마을이 꽤 많습니다. 내가 주로 간 마을은 독일과 프랑스의 황새 마을입니다. 특히 프랑스 알자츠 리보빌레 황새 마을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황새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아름다움입니다. 날개 길이가 무려 2미터나 되는 황새가 어떻게 사람과 어울려 살까요? 유럽의 황새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지어 놓은 건축물 지붕 위에서 둥지를 틀고 살아갑니다. 방문객들은 지붕 위에서 번식하고 있는 황새를 올려다볼 수 있어, 황새들은 방문객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집의 창안에는 갓난아이를 엄마가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은 서양 속담에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준다'는 속담과 매우 잘 어울림니다.
프랑스 알자츠 리보빌레 황새마을 (2010)
내가 주로 머문 곳은 독일 개신교(Evangerische Kirche)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였습니다. 그 기숙사는 따로 지은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평생 살았던 집을 개신교회에 기증한 것입니다. 나같이 돈이 없는 유학생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기숙사 사감인 목사님의 인도하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내가 한국의 교회와 참 많이 다르다고 느낀 것은 독일 개신교에서는 예배 때마다 성찬식이 빠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응하다 보니, 그 성찬식은 나에게 영적 무장을 하게 한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
사도 바울은 '크리스천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식탁에 초대받은 손님(롬14:4)이라 말합니다. 또 '식사자리에 앉을 때는 뱃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을 나누는 것'(롬14:21)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살이다' 이어 잔을 건네면서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하시면서 식사를 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저녁 식사(2022)
성경에 나오는 성찬의 이야기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신"(빌 2:6-8) 예수님의 사연입니다.
빵은 단지 우리의 음식이 되려는 그분의 열망의 징표만이 아닙니다. 잔은 단지 우리의 음료가 되려는 그분의 원함의 징표만이 아닙니다. 빵과 포도주는 내어줌을 통해 그분의 몸과 피가 됩니다. 사실 빵은 우리를 위해 주신 그분의 몸이요 포도주는 우리를 위해 부으신 그분의 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수 안에 온전히 임재하시듯 예수님은 성찬의 빵과 포도주 안에서 우리에게 온전히 임재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내 집에 오셔 말씀하십니다. '네 식탁이 내 제자들과 함께한 그 옛날 먼 나라의 마지막 식사가 아니라'고요. 나는 식사 때마다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찬을 떠올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빵과 잔을 마실때마다, 크리스천은 말과 행위로 주님의 죽으심을 재현하는 것이라'(고전 11:26)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식사를 마치시고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 가시면서 죄로 태어난 이 육신에 새 생명을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죽음이라는 죄의 몸을 끝없고 다함없는 생명의 삶 속으로 이끄시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쏟아부어지는 이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가져다 준 걸까요? '죽음을 초래하는 그 죄와 넘치는 생명을 가져오는 이 선물은 서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죄에 대한 평결로는 죽음의 선고가 내려졌지만, 뒤따른 다른 많은 죄들에 대한 평결로는 경이로운 새 생명으로 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입니다'(메시지 성경, 롬 5:17). 성경은 '내속에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평생 죄를 위해 애쓰고 있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받게 될 연금은 죽음이 전부인데, 하나님의 선물은 주 예수께서 전해 주시는 참된 삶, 영원한 삶이다(메시지 성경, 롬 6:23).' 지금 내 육신의 몸은 온데간데 없고 내 속에 주님의 값진 살과 피로 인한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고백과 함께 다음 순례의 여정을 나서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