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by 박시룡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 의심, 공포를 느끼며 삽니다. 나의 순례길이 바른 길인가?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성적인 유혹에 빠질 때가 있었고, 평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감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길은 나만의 길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나는 저 시온성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나가려 합니다.


크리스천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섰을 때, 장님들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쪽이야~ 이쪽으로 와 ~ 나는 네가 어디 가는지 알고 있어 이쪽~"

"으악~"

음침한 골짜기 안에서도 귀신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넌 도대체 어딜 간다고 생각하는 거니?"

"넌 지금 네가 뭐하는지 알아?"

"하나님은 널 알지도 못하는데?"

"하나님은 네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도 몰라!"

"여기로 계속 가면 죽어!"

"넌 거기서 떨어질 거야!"

"너 돌아가고 싶지 않니? 도망가고 싶지?"

"넌 죽게 될 거야!"

크리스천은 속으로 되새겼습니다.

"아니야, 이것은 나의 마음의 소리가 아니야"

"하나님! 저와 함께 해주세요! 힘을 주세요!"

앞서간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이 소리를 듣고 마침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공포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지나가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걸음을 빨리해 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 사람은 크리스천과 같은 동네에서 온 신실이었습니다.


"존경하는 형제 신실 씨, 제가 당신을 따라잡아 만나게 된 것이 몹시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녹여 주시어 이렇게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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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음침한 골짜기(2022)


신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했습니다. "경애하는 친구여, 사실 우리가 살던 도시를 떠나올 때부터 당신과 함께 가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그만 먼저 떠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저도 이렇게 먼 길을 혼자 떠나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는 도중에 낙심의 늪에 빠져 무척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나는 거기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좁은 문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단지 도중에 음탕이라는 못된 여자를 만나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녀는 날 자기 방으로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쾌락과 향락을 주겠다고 날 끈질기게 유혹했습니다.

"설마 당신이 그 여자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진 않았을 텐데요?"

"물론 몸을 더럽히지는 않았지요. 마침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더군요. <그녀의 발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잠 5:5). 그래서 그녀의 현란한 외모에 유혹되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온갖 욕을 퍼부으며 물러갔고 저는 제 갈 길을 계속 갔습니다.


젊은 시절의 음탕녀

신실만의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태어나 성욕에 이끌려 행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 학창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평생 살아오면서 성욕이 매우 왕성했을 때였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소위 공창(?)이라 불리는 엘로우 하우스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남자들이 원하는 여자를 선택하여 침실로 안내받아 그 여성과 잠을 자는 곳이었습니다. 나는 음탕녀를 옆에 두고 밤새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처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녀의 방에서 빠져나왔던 성경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창 39:9-12). 통금시간 해제 새벽 4시가 되어 혼자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크리스천으로 성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은 십계명 일곱 번째 '간음하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거라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 간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후 나는 공창에 이끌려 간 것, 그리고 음욕을 품었던 것을 하나님께 깊이 회개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정욕에 이끌려 살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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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녀(2014)


황새와 걷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내가 원치도 않았고 또 내 순례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날 기다리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정년을 막 끝내고였습니다. 예산군 읍내에 방을 하나 잡았습니다. 퇴직금을 헐어 방세를 냈습니다. 집은 서울에 있었기에 주말에만 서울에 갔다가 월요에 다시 신길역에서 천안행 전철을 타고 통근을 했습니다. 물론 천안에서 예산까지는 기차로 다녔습니다. 신길역에서 천안까지는 공짜 전철이라 다닐만했지만, 천안과 예산은 교통비가 따로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2년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빠지지 않고 서울과 예산으로 오가는 길은 반복됐습니다. 얻어 놓은 방에서 특별히 할 일이라고는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한지 위에 수채화 그림을 그리는것 뿐이었습니다. 외출이라고 한다면 내가 꼭 황새를 복원시키고 싶었던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황새지킴이로 있는 김중철 동네 어르신을 가끔씩 만나러 가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연구원장은 충남 예산황새공원의 황새 복원연구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교원대 퇴임 직전 황새생태연구원 특별 연구원 직을 총장에게 요청 공문으로 올려놓고, 수당이 나오면 월세를 낼 요량으로 방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총장은 후임 연구원장의 말만 듣고 내 특별 연구원 직을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내가 증식시켜 왔던 황새들과도 모든 인연을 끊어야 했습니다. 황새 복원은 내가 퇴직 이후 할 일이 더 많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하는 것 외에는 황새들과 황새가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기도로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를 통과하길 바라면서 나의 순례길은 이대로 멈춰 선 안된다 생각하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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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2018)


수다쟁이의 만남

이때 길 옆으로 수다쟁이가 걷고 있었습니다. 신실이 먼저 수다쟁이에게 말을 건냅습니다. "친구여, 어디로 가십니까? 혹시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까?"

"예, 그리로 가는 길입니다. 당신들이 원하시면 기꺼이 동행해 주겠습니다."

"그렇다면 함께 걸어가면서 유익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냅시다."

"나는 좋고 올바른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종교나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참 좋아하죠. "

"이런 것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입니다. "

"내가 한 말이 바로 그겁니다. "

이때 크리스천이 신실에게 귀속말로 무언가 얘기했습니다. 크리스천을 대신하여 신실은 다시 수다쟁이한테 물었습니다.

"수다쟁이 씨! 혹시 하나님의 은혜가 수다쟁이 씨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게 되었는지요?"

"첫째 그것은 나로 하여금, 죄에 대해서 나쁘다고 말하게 해 주었습니다".

"은혜는 죄를 경멸하고 싫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한 말이 바로 그겁니다. 나는 죄가 나쁘다고 항상 울부짖습니다. 흠, 아무나 강대상에서 죄가 나쁘다고 소리칠 수 있지요. 그리고 기쁘게 그 죄를 집에 가지고 가서 살 수도 있고,,,. 나는 또한, 종교와 성경에 대한 막대한 지식도 있습니다."

신실은 가식적 종교관을 갖고 있는 수다쟁이에게 따끔한 충고를 했습니다.

"사람은 성경에 모든 것을 다 알고도 믿지 않을 수 있지요. 하인이 주인의 뜻을 알고 있어도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지혜는 없을 수 있습니다.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니까요."

"흥, 이 양반들이, 꼬투리를 잡으려고 아주 작정하셨군... 당신들과 나는 생각이 다르니, 그냥 내 갈길로 가리다."

수다쟁이는 말문이 막혔는지 화를 버럭내고 사라졌습니다. 크리스천과 신실은 수다쟁이가 죄를 소리 높여 비난하면서도 내심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음에서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면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는데, 수다쟁이는 매끄럽게 이야기할 줄은 알았지만 심령에 역사하시는 구원의 은혜를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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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 크리스천 그리고 수다쟁이(2022)


이 순례길에서 사람을 잘 만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겨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신실을 만난 것은 축복이었지만, 수다쟁이를 만난 것은 내겐 크나큰 화였으니까요.


황새를 팔아넘긴 수다쟁이

황새 복원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정년을 맞았습니다. 후임자를 길러내려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후임자로 양성한 사람을 대학은 선택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후임자라고 믿고 맡겼던 사람은 환경 전공과 관련한 어느 여교수였습니다. 그녀는 내가 20년 동안 일구워 놓은 사업을 하루아침에 모두 자신의 사업으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도 크리스천으로 알고 있었는데 황새 복원 일에는 철저히 수다쟁이가 돼버렸습니다.


내가 교원대에 재직 중일 때 만든 "황새임치규정"이 있었습니다. 이 규정은 내가 증식시킨 황새들의 소유권을 학교 총장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황새생태연구원 후임의 임무를 맡은 수다쟁이는 그 소유권을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을 담당하는 문화재청에 팔아 교원대에 '황새생태연구원'건물을 세웠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돈을 받고 판 것은 아니지만, 교원대 총장이 황새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밀실행정이 이루어졌던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황새 복원은 더 이상 자연과학자의 연구 사업이 아닌 행정가와 명예욕에 사로잡힌 수다쟁이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수다쟁이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우리나라 황새복원을 성공시켰다는 공로로 대통령상과 환경부로부터 환경대상도 받아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수다쟁이는 밖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였지만, 내실은 없고 황새를 이용한 자신의 명예욕만 과시하고 다닌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조류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 한국 황새 복원의 성공은 신이 허락해야 한다'라고, 그분의 말이 맞다면 황새복원은 창조세계의 주권자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사업입니다. 굳이 황새 복원이 성공을 해, 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오롯이 주민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왜 주민들의 몫일까요? 황새들은 주민들이 사는 곳에서 살아가는 새입니다. 주민들이 이 황새들을 위해 농약을 뿌리지 않고 논에 생물들이 풍부한 환경으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황새 복원의 성공은 가까운 시일 내로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아마 50년, 100년이 지나면 모를까! 그러니 수다쟁이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황새복원의 성공(?), 자신이 한 것처럼 포장해 건물도 짓고 상까지 받아낸 셈이지요.


자연과학자로 하루아침에 멘붕상태가 찾아왔습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니,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관원들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은화 30냥을 받고 팔았습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도 이미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입맞춤이 있은 직후 모두 무저항으로 바뀌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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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 유다의 입맞춤(2021)


수년간 가르치고 전하고 병고치시며 어디든 원하시던 대로 행하셨던 그분은 이제는 원수의 손에 완전히 몸을 맡기셨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였을 뿐, 오늘 그 유다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내게 더 중요합니다.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내 삶도 대부분 외부에서 내게 가해지는 일, 내가 어쩔 수 없는 수동에 의해 결정됩니다. 내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은 내 삶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나는 모든 것을 내가 시작하는 행동이기를 바라는 성향을 갖고 살았습니다. 남이 나를 배신했을 때 미워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마져도 내려 놓기를 원하십니다. 내 삶의 훨씬 많은 부분이 능동이 아니라 수동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주님께만 집중하는 삶, 그런 삶으로 이끌리는 순례길이 나에게 더 필요한 순간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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