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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림 Jun 30. 2016

나에게 건선이 생기다

必有曲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자취를 시작하고 만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샤워 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달걀 크기 정도의 검붉은 타원형이 하나, 그리고 그 바로 옆에 또 비슷한 것이 조금 더 연하게.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몸을 돌려서 다른 각도에서 봐도 분명히 그것들은 존재했습니다. 가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내가 수년간 주로 치료해왔던 '건선'이 제 몸에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건선?


  '건선이 뭐야?'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그까짓 건선이 뭐라고?'라고 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겁니다. 건선을 앓았던 혹은 앓고 계신 분이라면 '어머나 세상에'라고 하실 수도 있죠. 간략하게 설명을 먼저 드리자면,  건선은 은백색의 비늘(각질)로 덮여 있는 붉은색의 구진(볼록한 반점)이나 붉은색의 판과 같은 발진이 전신의 피부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만성 피부 질환입니다. 아토피나 두드러기 같은 타 피부질환과는 다르게 가려움이나 따가움 등의 자각증상이 없거나 심하지 않아서 저처럼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직 정확하게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몸의 면역학적 이상때문에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건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신 분들도 많을 텐데 그도 그럴 것이, 발병률이 3% 정도로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것이 나에게 닥칠 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죠. 



건선사진입니다.  출처 www.amc.seoul.kr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 싶다가도, 곧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특히 질병은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물론 감염성 질환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그 말은 곧, 매일매일 환자분들께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저렇게 하시는 게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라고 알려드리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제가 제 몸 하나 돌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죠. 물론 의사도 사람인데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의사의 병은 알리기 거시기한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든 한동안 스스로의 건강에 소홀했던 것은 그 가슴 위에 난 발진이 증명해주듯이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것이 생겼나?


  그 지우고 싶은 아이들을 발견하고 나서야 생각해봅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내가 뭘 놓치고 살았나. 한의학에서 평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하는 요소들로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飮食:음식, 起居:기거, 七情:칠정입니다. '飮食:음식'은 마시고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자제하고, 과식하거나 과음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죠.  '起居:기거'는 자고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우선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가져야 하고, 마땅히 자야 할 때 자고,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자야 할 때와 일어나야 할 때는 낮과 밤의 길이로 결정됩니다. 즉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활동을 하고, 해가 지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우리 몸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생체리듬이 시신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七情:칠정'은 감정을 의미하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결국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고, 스트레스가 얼마나 잘 조절되느냐 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어찌 보면 정말 기본적인 것이어서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너무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일 수록 놓치고 생활하기 쉽지만, 그래서 더욱 챙겨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주인장 보시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자취를 하면서 그리고 일하는 시간이 바뀌면서 식습관이 모두 무너져서 하루에 두 끼만 먹거나 제대로 먹는 것은 한 끼밖에 되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영양가 있는 음식들보다는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의 비중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도 해야겠고, 운동도 해야겠고, 다른 취미생활도 해야 하므로 새벽 2-3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나의 몸이 매일매일 하는 것,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인 먹고 자는 것이 이 정도였으니 제 몸의 면역체계를 스스로 흔들어놓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스트레스가 아마도 도화선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BANG!"하고는 어느 날 동그랗게 발진이 생겼었겠죠. 보란 듯이. 


  그 날로 바로 인스턴트 음식은 전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전날까지 아무렇지 않게 먹어놓고서는, 내 몸에 이런 것을 만들었을 음식이라고 생각이 드니 보기도 싫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장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인스턴트 밥을 먹어서 밥솥은 사놓지도 않았었는데, 바로 밥솥도 구매하고요.  밤늦게까지 혹은 해가 뜰 때까지 놀던 습관은 버리고 11시쯤이면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딱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죠. 이미 '질병'의 단계로 넘어간 몸이, 그것도 고치기 어렵기로 유명한 '건선'이 이제 와서 잘 먹고 잘 잔다고 해서 뿅 하고 사라질 일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한의사라는 것. 그때부터 꼬박꼬박 스스로 지은 한약을 복용하면서 매일 밤 부지런히 침 치료를 한 결과, 현재 그 보기 싫던 발진은 모두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건선은 워낙 만성적인 질환인 데다가 한 번 생겼다는 것은 다른 곳에라도 또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재발하지 않도록 계속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건선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악화되는 경향이 있고, 물리적인 자극을 받으면 그 부위에 건선이 생기는 퀘브너 현상(Koebner's phenomenon)이라는 것이 있어서, 또 생길까 하는 불안함에 자꾸 제 몸을 살펴보는 습관도 덤으로 얻었죠. 


이후로 항상 건강식으로 챙겨먹으려 노력합니다


음식(飮食) 기거(起居) 칠정(七情)


  어쨌든 이렇게 증상이 좋아진 것은 다행이지만, 애초부터 생기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죠. 조금 더 내 몸에, 그리고 음식(飮食), 기거(起居), 칠정(七情)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말입니다. 저에게 건선이 생겼던 것처럼, TV 속의 건강 프로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병에 여러분도 걸릴 수 있습니다. 병에 대한 면제권 같은 것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병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을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물론 질병이 생기는 원인은 복합적인 경우가 많지만, 대개는 혈액순환장애나 호르몬 분비의 이상, 면역력 저하 등이 선행됩니다. 심지어 바이러스성 질환의 경우에도 인체의 방어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똑같이 노출되어도 걸리지 않거나 가볍게 앓고 지나갑니다. 반면에 평소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거나 면역체계에 이상이 있었던 사람은 쉽게 감염됩니다. 뉴스에 나오는 유행성 질환은 혼자 다 겪는 것 같은 "병의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 주위에 꼭 한 사람씩은 있죠. 그런 사람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평소에 내 몸을 돌보면 질병을, 심지어 그것이 감염성 질환일지라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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