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피카고, 두 거장을 닮으려는 그의 세계관은 로봇에서 시작된다.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문덕관
만화가를 꿈꿨고, 영화를 전공했다.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하다 뒤늦게 작가의 길을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순수미술 외길(?)을 걸어온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이력이 독특하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찾기까지의 과정이었다. 만화를 워낙 좋아해서 처음에는 만화가를 꿈꿨지만, 연재라는 형식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다가 미디어와 영상을 떠올렸고, 대학에서도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개최하는 과정 자체에 굉장히 재미를 느끼고 있더라. 이십 대 때 꾸준히 해온 작업이기도 하고. 그때부터 회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로봇을 주제로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회화로 방향을 정하고서도 작업의 방향을 찾는 것부터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예술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굴에서 금을 채취하듯, 세상에 없던 것을 찾아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미국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골동품을 파는 가게에서 녹슨 양철 로봇을 발견했다. 그걸 보는 순간 보석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타워즈>도 좋아하고, 만화도 좋아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작업한 작품을 처음 전시에 선보였는데, 이전 전시에서와는 다르게 모든 작품이 판매되었다. 그때 확신을 얻었다. 로봇이 나와 관객의 접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객과의 코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고흐와 피카소를 존경하는데, 두 작가의 캐릭터는 양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지만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만을 팔았던 가난한 화가이고, 반대로 피카소는 6만 점 이상의 작품을 작업하고 또 사랑받으며 엄청난 부를 이뤘다. 나는 그 양쪽 모두, 즉 영혼이 깊이 깃든 예술적인 생각과 상업적인 성공 모두를 얻고 싶었다. 그런데 로봇은 나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면서도 대중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의 캐릭터를 소개해준다면.
로봇과 나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부분이 있다. 익살스럽고, 귀엽고, 사고뭉치 같으면서도 외로움이나 우울한 느낌을 가진 부분들. 눈 부분이 깨져 있다든지, 팔이 떨어져 있다든지 하는 외양을 통해서 나의 상처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로봇의 성격을 구체적인 단어들로 정의 내리고 싶지는 않다. 관람객 스스로가 로봇에 대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두고 싶다. 스스로와 닮은 부분을 찾아내거나, 친구처럼 말을 걸어도 좋다. 반대로 감정이 없는 사물 자체로만 봐도 괜찮다.
로봇은 흔히 감정도 결점도 없는 비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애니쿤의 로봇은 상처와 우울함이 깃들어 있다.
이 역시 나를 투영한 결과다. 쓸모를 잃고 벼룩시장에 놓여 있는 양철로봇에서 서글픔을 느꼈고, 로봇을 표현하는 과정에 어린 시절의 상처를 녹여내게 됐다. 동시에 나의 이중적인 부분도 반영했다. 스스로가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사정이 안쓰러운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순간적으로 저 사람이 정말 힘든 사람이 맞나 의구심이 든다든가 하는 순간. 그런 양면성이 비인간적인 로봇 같다는 생각을 했다.
NFT로도 작품을 내놓았다. 새로운 장르에도 거침없이 도전하는 이유는.
작가는 머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앤디 워홀의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모습이 진정한 예술가다운 것아닌가 싶다. 회화뿐 아니라 조형에도 도전했던 피카소, 대형 캔버스에 작업을 펼치는 데이비드 호크니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보며 도전을 거듭하면서 세상에 계속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역시 페인팅에 머물지 않고 형식이나 스케일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나가려고 한다.
선배 작가들에게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인가.
크리에이티브한 마인드를 가지기 위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와중에 국내외 거장들의 전시와 작품을 공부했고, 자극을 많이 받았다. 이를테면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순간도 그렇다.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꾸준히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해왔지만 스스로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 나오시마에 있는 이우환 미술관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캔버스에 점 하나를 찍은 그의 작품을 마주친 다음이었다. ‘본질’이 무엇인지 느낀 것이다. 다른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찾아내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전업 작가를 결심했고,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내 나름대로 세계관을 그리는 부분이 있다. 지금 나이가 40대 초반인데, 40대 때까지는 ‘애니쿤은 로봇을 그리는 작가’라는 것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싶다. ‘로봇 하면 애니쿤’이라는 공식을 세운다고 할까. 50대 때는 자연을 주제로 표현해보고 싶고, 60대가 되면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다. 그이후에는 다시 한 번 나와 살아온 생에 대해 초점을 맞추며 작가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작가 애니쿤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Life is Art.” 삶 자체가 예술이었으면 한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작가들의 작품만 예술인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휴대폰만 보더라도 멋진 디자인이 녹아있지 않나. 세상은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이끌어간다고 생각한다. 예쁜 그릇을 모으는 것 역시 예술이다.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전시장에 가고, 예술 작품을 하나 소장하는 소박한 여유로 삶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각자의 삶이 예술이 되는 과정에 아티스트로서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애니쿤
주요 경력 홍익대 영상영화과 졸업, 스타파이브 갤러리·국립부산과학관 개인전 외
예상 가격 35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