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예 May 05. 2019

똑똑한 ‘을’ 되기

을의 연애로 슬퍼하는 이들이여, 의견을 펼쳐라

 ‘나는 왜 언제나 을일까?’ 

 친구가 호소했다. 자신은 언제나 상대에게 휘둘린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무조건 갑이 되겠다며 호언장담을 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참동안 친구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헤어져.”


    '을'인 사람은 언제나 '을'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친구는 언제나 상대에게 휘둘리는 연애를 해왔다. 갑에게 연애권력을 다 줘버리는, 흔히 말하는 을의 연애. 생각보다 그런 친구들은 많았고 그들에게 왜 굳이 그런 연애를 지속하는지 물으면 ‘을’인 친구들의 대다수는 이렇게 답했다. 

 “그 사람이 좋으니까. 그리고 을인 게 생각보다 속 편하다?” 


    스스로 을이 되기를 자처한 그들

         상대와 다른 자신의 의견은 말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나를 잠시 뒤로 미뤄놓고 그저 상대가 말하는 대로 행동한다. 상대의 의견이 옳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상대와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한다. 그들 스스로 일방적인 을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들은 침묵을 통해 상대에게 권력을 위임했다. 

      물론 그게 속 편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제 3자의 입장에선 속이 터진다. 상대의 무리한 요구에도 헤어지는 게 무서워서 고분고분 수긍해버리고, 혼자서 상처받는다. 이렇듯 을인 사람들은 상처를 혼자 감내하는 경우가 지나치게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당장 왜 갑이 되지 못하냐고 말 할 수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모두가 갑이 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연애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걸까. 세상에 모든 권력 관계를 없애야 하는 걸까? 권력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말인가? 감히 말하건대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란 존재할 수 없다. 하물며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자 하는 연애관계에서도 갑과 을이 생기는데 사회에서는 더 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당연한 존재인 권력 앞에서 언제나 ‘을’로서 당하기만 해야 하나.

      아니다. 절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강한 연애가 존재하는 것처럼 고정적인 갑을관계로만 정의되지 않는 건강한 관계 역시 존재할 수 있다. 물론 개인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어떨 때는 내가, 어떨 때는 네가 관계를 제어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에게 편하게 할 수 있는 관계가 비교적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


    침묵이 '을'을 만든다    

         권력이라는 것은 제어당하는 이의 동의 없이는 작동될 수 없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갑의 노력만큼이나 을의 노력이 중요하다. 연애관계에 있어 을은 자신이 해야 하는 말조차 침묵하기 때문에 더욱 심한 상처를 받는다. 

    똑똑한 '을' 되기

       사회 속에서도 똑같다. 우리가 ‘갑’에게 해야 하는 말조차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멍청한 ‘을’이 되어버린다.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는 사회 안에서 ‘을’인 경우가 많고, 을의 연애를 하며 받는 상처만큼이나 많은 상처를 받는다. 청소년이어서, 취준생이어서, 여성이어서, 노동자여서 받는 수많은 설움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에게 상처 주는 것들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하는 갑도 중요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만 이런 게 아닌가봐’라는 생각으로 다수의 침묵에 동참한다면 우린 언제나 당하기만 하는 을이 될 것이다. 갑에게 어디까지 권력을 위임할지 스스로 정하는 을이 되자. 목소리를 합쳐서 국가의 최고 권력자까지 통제했던 것처럼, 미투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당연하다고 여겨지기 쉬운 권력을 견제하자. 나를 통제하는 ‘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똑똑한 을이 되자. 

      덧붙여, 을의 연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하자. “어떻게든 상대에게 네 의견을 말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