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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예 May 05. 2019

여기, 미혼부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리고 현재까지도 성 평등, 젠더 감수성, 페미니즘은 뜨거운 이슈다. 순탄치만은 않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많은 노력들 덕분에 점차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권리와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과는 관계없이 언제나 철저히 무시당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미혼부이다. 미혼모와 아이를 버리고 간 매정한 미혼부가 아니다.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육아를 담당하는, 일명 양육미혼부가 그 주인공이다. 


'사랑이 아빠', '양육미혼부'를 세상에 알리다

    양육미혼부의 존재는 몇 년 전 ‘사랑이 아빠’의 사연을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났다. 그는 한 방송을 통해 ‘생모가 출생신고를 해주지 않아 자신의 아들은 주민등록번호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혼외자의 출생신고는 무조건 ‘모’만 할 수 있었고 부는 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국가로부터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사랑이는 국가가 지원하는 의료혜택, 복지혜택 등을 하나도 누릴 수 없었고 병원비 부담 때문에 아플 때 치료도 제대로 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사연이 관심을 받으면서 생모의 인적사항을 모르는 경우라도 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하게 하는 일명 ’사랑이 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신고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모의 성명ㆍ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이라는 법조문의 해석 문제로 인해 생모의 이름만이라도 아는 경우에는 부의 출생신고가 불가능한 데다 신고를 하더라도 다양한 이유로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미혼부의 고충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2015년 미혼부 출생신고는 100건이 넘었지만 법원의 허가한 것은 16건에 그친다. 


육아에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더라도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미혼부들

    국가로부터 아이의 존재를 인정받는 ‘출생신고’ 과정에서부터 육아과정까지. 미혼모에 대비해 봤을 때 미혼부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미혼부는 약 만 명이 넘고 이는 미혼모의 약 1/3 정도로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게다가 아직 출생신고조차 못한 이들도 많기에 실제 양육미혼부는 더 많을 것이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한 지원시설의 수는 미혼모 지원시설의 1/20도 채 되지 않고, 남성은 여성에 비해 경제력이 높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미혼부는 지원 대상조차 되지 않는 지원정책도 있다. 미혼부들이 주거공간을 지원받을 수 있는 공동생활 공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왜 엄마만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

    이것은 엄연히 젠더 불평등의 한 모습이다. 혼외자인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오로지 엄마일 것이라는 인식이 가져온 불평등. 왜 아이는 엄마만 키운다고 생각하는가. 아빠의 사랑도 절대 그 어느 것에 뒤쳐지지 않는다. 그들은 혼자서라도 아이를 키우겠다는 용감한 선택을 한 후 자신의 아이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부모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양육미혼부의 존재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혼인을 하지 않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로서의 지위와 아이의 존재조차 부정 당한다. 이게 옳은 상황인가. 


그들도 부모다

    많은 이들이 거리에 나가 외치는 것처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한 권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어떠한 권리들만큼이나 임신과 육아를 선택하는 이들의 권리도 중요하다. 미혼부와 미혼모는 모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부모라는 경건한 존재로서 동등하게 지지받고 지원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본인이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미혼부의 존재에 대해 필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도망가는 아빠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혼자 키우는 아빠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그리고 타인의 상황과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그들을 응원하자. 우리는 지금 당장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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