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세뇌당해왔다
“사랑해.”
“······.”
누군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할 때면 나는 언제나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도 사랑한다고 말을 해줘야 하는 타이밍임을 알지만 차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과연 나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인가. 사랑이 무엇인데?
우리 사회 속에선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 희생, 동정과 연민, 성적인 흥분, 자기애까지. 모두 사랑으로 불리지만 다 같은 사랑은 아니지 않나. 사랑의 범위를 이성간의 사랑으로 한정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는 아가페, 육체적이고 성적인 사랑관계 에로스, 현실적인 사랑을 말하는 프라그마 등. 무수히 많은 사랑의 형태들 가운데 당신이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나는 그 당시 마주치던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타깝게도 내게 명쾌한 답을 준 이는 없었다. 더러 질문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이렇게 조언했다. 연인에게는 이 질문을 하지 말라고. 연인과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된다며. 하지만 나는 이미 그들의 조언대로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연인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나는 내 말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친구의 조언이 이해되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사랑과 상대의 사랑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순간 더 이상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싸울 때 계속 생각난다고. 하지만 사랑의 형태와 의미가 같을 수 있는 건가. 사랑에 대해 인생을 바쳐 고민한 선인들도 의견이 갈리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다. 쇼펜하우어는 사랑을 종족번식을 위한 본능이라 정의했고(이는 미국 최근의 한 심리 연구 결과도 지지하는 정의이다.), 니체는 삶의 긍정으로써 사랑을 정의했다. 사랑에 대한 무수한 자료들을 봤을 때 답은 “사랑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였다.
그렇다면 친구는 왜 서로가 가진 사랑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 된다고 했을까. 무엇이 무서워서. 사실 나조차도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렇게까지 심화되기 전에는 상대의 ‘사랑한다’는 말에 어영부영 ‘나도 그래’ 라는 말을 던져왔을 뿐, 상대에게 그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건 우리가 ‘사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써 그 모든 형태들을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사랑의 형태가 다르다는 사실이 생소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가정, 대중가요의 가사, 드라마, 종교적 교리를 통해 사랑하는 존재와 연인이 되는 것이고, 연인과는 당연히 사랑해야한다고 세뇌 당해 왔다. 어느 누구도 그 사랑의 형태가 다양할 수 있음은 알려주지 않았다. 사회는 그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만을 주입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사랑의 형태는 너무나 다양하다. 수많은 모든 것들이 사랑일 수 있다. 그렇기에 상대와 나의 사랑의 형태가 다르다는 사실에 슬퍼하거나,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랑해’ 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을 함축시켜 상대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는 것보단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더 건전하지 않을까. 연인이라면 서로에 대한 사랑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는 것이 좋을 테니 말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해서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면, 상대방에게 ‘내가 너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해주길 원하는지, 나는 너에게 어떤 대상이 되면 좋겠는지’ 이야기하라. ‘나를 사랑하는 건 맞아?’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너와 함께 있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네가 떠오르고, 슬픈 감정도 너와 함께 나누고 싶다’처럼. 당신의 상대는 그 이야기로써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로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