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편 : 민주정치와 시위문화와 당쟁(당쟁)
당쟁(黨爭)
당쟁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무리를 지어 당(黨)을 만들어 서로 싸우는 형세를 의미하는 정치적 용어인데, 당쟁과 함께 사용되는 단어는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의 개념이다.
당을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이 3권분립에 의한 의회정치이기에 1948년의 제헌헌법 때부터 있었고, 제3공화국 박정희 대통령(1960~1962년) 때인 1962년 12월 30일 정당법(政黨法)이 공표되면서 입법화되었다.
사실 의회 민주정치에서는 국회의원 한명 한명이 국민을 대표하는 개별적 입법기관이고 따라서 국회의원 각각이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여 의결에 참여하면 되는데, 굳이 당을 만들어 싸운다는 것은 민주라는 헌법 정신에 위배(違背)되는 불법으로 보인다. 아마도 국회의원과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는 정치인이 각각 행동하게 되면,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어 파당을 만들고 이를 입법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쟁의 역사는 조선 시대 때 특정한 지역적, 학문적,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 집단인 붕당(朋黨)을 만들어 당파(黨派)싸움을 한 붕당 정치(朋黨政治)가 시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붕당은 본래 중국에서 정치인의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었기에 고려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이고, 사실 유교적 정치 이념에서 붕당을 형성하는 것은 범죄로 인식되었다.
결국, 중국에서 범죄시 되던 붕당(朋黨)이란 이념이 고려와 조선으로 건너와 당파(黨派)라는 이념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인데, 뜻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무리를 짓는 것을 당(黨)이라고 한다면 당파의 역사는 그 이전인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본다. 삼국시대로부터 시작된 정복의 역사에서 국가가 세워진 당대는 권력층과 지배층으로 무리가 나누어지고, 국가역사가 바뀔 때마다 구 세력인 구신(舊臣)과 신 세력인 공신(功臣)으로 무리가 나누어지며, 따라서 출신과 지역 등 인맥에 따라 또 무리가 나누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 생각에 당쟁은 전제 군주시대에는 통신기술과 교통이 발달되지 않아 정보전달이 원활하지 않았기에 있을 수 있지만, 통신기술과 교통이 발달하여 지구촌까지 하나가 될 정도로 밝은 대명천지의 국민주권 시대에 무리를 지어 작당해 당쟁의 폐해를 만드는 것이 용인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소리라 생각한다.
당쟁의 폐해를 더 하게 하는 또 하나는 당파를 형성하여 당쟁의 폐해를 만드는 국회의원만은 임기 동안을 꼬박 지켜보아야 할 뿐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방법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한 형태인 선거로 뽑은 사람 중 문제가 있는 사람에 대해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투표로 파면시키는 제도인 국민파면(國民罷免) 혹은 국민해직(國民解職) 등으로 불리는 국민소환제(國民召喚制)가 있다. 물론 국민소환제가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어려워 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다시 말하건데 현대처럼 통신기술과 교통이 발달하여 지구촌까지 하나가 될 정도로 밝은 대명천지에는 얼마든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실시할 방법이 있다고 보며, 결국 국회의원들이 제 밥그릇 지키기 위해 입법하지 않는 것이다.
(1)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사전적 의미로 보면, 보수와 진보는 사회적 관점에서 구분하는데, 보수(保守)는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기존의 사회질서(체제)를 지키면서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오히려 기존의 사회질서를 아무런 변화 없이 유지하는 것은 수구(守舊)이고, 한술 더 떠 아예 과거로 회귀하려는 성향을 반동(反動)이라 부른다. 진보(進步)는 보수의 반대 개념으로 기존의 사회질서(체제)를 깡그리 뜯어고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볼 때 보수는 과거의 토대 위에서 새롭게 고쳐지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 수구는 없으므로 보수와 수구와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고, 따라서 반동과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것이 옳다. 기존의 사회질서를 아무런 변화 없이 유지하는 수구와 기존의 사회질서(체제)를 지키면서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는 보수를 같은 개념으로 볼 때, 수구(守舊)와 보수의 개념을 총괄하는 전통(傳統)이라는 단어가 있다. 따라서 반동- 전통(수구+보수)-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기에 덧붙여 보수가 진보보다 나을 수도 있고, 보수에서 진보로 나간다고 하여 더 좋아진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인류는 좀 더 나은 삶과 좀 더 발전된 사회질서체제를 원한다. 따라서 과거의 나쁜 사회질서 체제를 고수하는 것을 보수라 하고, 과거의 나쁜 사회질서체제를 고쳐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진보로 규정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수와 진보는 정치적 가치관의 차이로 구분한다.
보수는 개인의 자유와 기득권유지를 가치로 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경제를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유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를 지지하고, 자유주의·성과주의·개인주의·사유재산권·기득권유지를 가치로 지지한다.
반면 진보는 집단의 의지와 평등권 유지를 가치로 한다. 그래서 진보주의자는 시장을 자율에 맡기기보다 정부가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반적으로 통제 시장경제와 ‘큰 정부’를 선호하고, 민주주의·복지주의·집단주의·사유재산권의 제한·기득권타파를 진보적 가치로 지지한다.
1) 정부 수립 전 보수와 진보의 구분
① 조선 시대 말에는 왕을 비롯한 전제통치국가의 기득권 세력이 보수라면, 동학농민운동과 3.1운동의 예처럼 국민주권을 요구한 국민들이 진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이전인 고려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이다.
② 일제강점기에는 전제통치국가 조선의 기득권 세력이 친일 세력으로 변하여 기득권을 이어가 보수의 계보를 잇는다.
일제 강점기 임시정부(1919년 4월 11일~ 1948년 8월 15일)가 수립되면서 국권을 회복했을 경우 주권을 조선의 왕과 기득권층에게 돌려주느냐 국민이 가져오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임시정부 헌법에서 이에 대한 해답이 국민주권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임시정부 헌법에서는 3·1독립정신· 삼균주의(三均主義)· 국민주권· 자유권보장· 삼권분립주의· 의회제도·법치주의 및 성문헌법 등을 규정하고, 특히 ‘3·1운동정신’의 국민주권이 우리 민족의 건국 정신임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와 조선의 독립을 바라던 조선 백성이 진보의 계보를 잇는다.
2) 미군정~ 6.25
①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미군정이 실시되었는데, 미군정은 미국 유학 출신인 이승만과 함께 친일 세력과 손을 잡고, 중국과 소련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용공세력으로 몰아 견제하였다.
이때는 이승만을 비롯한 친일 세력이 보수의 계보를 잇고, 중국과 소련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진보의 계보를 잇는다.
참고로 이때 까지만 해도 국민들 사이에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개념이 없었고, 민족주의와 친일주의만 있었다.
②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으로 임시정부의 헌법을 계승하여 국민주권이 실현되었지만, 이승만 정부는 미군정의 뒤를 이어 친일 경찰을 앞세워 경찰독재를 행하였고, 이때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에 맞섰던 선량한 국민들이 용공세력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였다.
이때는 이승만과 친일 기독교 세력과 친일 경찰 세력이 보수의 계보를 잇고, 독재에 맞섰던 독립 운동가들과 선량한 국민들이 진보의 계보를 잇는다.
참고로 이때까지도 국민들 사이에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개념이 없었고, 민족주의와 친일주의만 있었다.
3) 6.25와 그 이 후 보수와 진보의 구분, 좌익과 우익
좌파(좌익)와 우파(우익)의 개념은 프랑스 시민 혁명(1789년 7월 14일~1794년 7월 28) 당시 국민 의회에서 혁명파는 좌측, 왕당파는 우측에 나뉘어 앉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왕당파는 기득권 세력인 귀족계층으로 보수에 속하고, 혁명파는 전국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원했던 일반 시민계층으로 진보에 속하는데, 즉 좌익=진보, 우익=보수가 된다.
산업혁명(産業革命, 1760년~1820년)으로 노동자계급이 생기고, 18세기 마르크스의 공산사회주의에 의해 일반적으로 좌익은 노동자 중심의 공산 사회주의 이념인 진보, 우익(右翼)은 귀족과 지주 계층 중심의 자유 자본주의(사유재산 주의)인 보수를 의미했고, 여기까지는 우익=보수와 좌익=진보의 개념이 일치한다.
1917년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으로 노동자 계층의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가 적군(赤軍), 기득권 계층의 부르주아가 백군(白軍)이 된다. 이에 의하면 우익= 백군=보수가 되고, 그 반대인 좌익(左翼)=적군(빨갱이)=진보가 되는데, 여기까지도 우익=보수와 좌익=진보의 개념이 일치하지만, 실제로는 공산 사회주의 이념인 진보가 독재체제를 도입하여 좌익(左翼)=적군(빨갱이)=보수로 바뀌었고, 자유 자본주의(사유재산 주의) 이념인 보수는 민주주의를 도입하여 우익= 백군=진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6.25 전쟁(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 전반에 좌파(좌익)와 우파(우익)의 개념이 뿌리내린다.
6.25 전쟁(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으로 한국인들은 김일성의 공산 독재 인민군이 점령했을 때는 국군에게 국군이 점령했을 때 때는 인민군에게 시달렸고, 따라서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공산 독재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6.15를 전후로 저질렀던 용공 조작사건을 덮기 위해 정권에 반대한 사람들에게 적군과 피를 형상화하여 빨갱이로 몰아 좌익(좌파)프레임을 씌워 우익(우파)의 개념이 뿌리내리면서 공산 독재에 치를 떨게 되었다. 참고로 6.25 이전에는 친일에 반대하는 민족주의가 강했고, 이승만이 친일경찰과 손을 잡고 적대세력인 독립운동가들과 많은 국민들을 좌파로 몰면서 이승만 정부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다.
조금 깊이 살펴보면 이승만 정권은 기득권 세력으로 보수(독재)=우익(우파)=친일세력이고,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항거해 국민주권을 지향했던 진보(민주)=좌익(좌파)=빨갱이가 되며, 이런 인식이 군사정부까지 이어지는데, 민주주의의 의미로 보면 독재를 통해 기득권을 지향하는 보수(독재)=친일 세력=자익(좌파)가 되고, 국민주권을 지향하는 진보(민주)=우익(우파)가 되는데, 이승만의 좌익(좌파)=빨갱이라는 좌표 찍기 때문에 졸지에 진보(민주)=좌익(좌파)=빨갱이와 보수(독재)=친일 세력=우익(우파)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한국 보수와 진보의 진정한 역사는 1956년에 죽산 조봉암을 중심으로 진보주의 정당인 진보당(進步黨)이 창당되면서 시작된다.
조봉암은 원래 공산주의자였는데, 해방 후인 1946년 5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폭력성, 이데올로기 과잉 및 소련을 조국으로 여기는 일탈된 공산주의자들의 행동에 많은 갈등을 느껴 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결별하고 사회민주주의로 전향하였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던 시기에 이승만은 물론 신익희조차 가족들을 데리고 먼저 서울에서 도망쳤을 때, 이들과는 달리 끝까지 서울에 남아서 다른 국회의원들의 피난 비용을 마련해주고 북한군에게 넘어가서는 안 되는 공문서들을 불태우고 정리하여 새벽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그 과정에서 정작 아내 김조이는 함께 피난하지 못했고 결국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6.25 전쟁이 끝난 2년 후 민주당의 신익희가 사망(1956년 5월)했는데, 그는 1950년대 이승만에 맞섰던 대표적 야당 정치인으로,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의 초대 당수이자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기도 했다보니 오늘날 일각에선 민주당계 정당의 아버지라는 평가도 받는데, 유세활동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조봉암은 그로부터 1년 후 전쟁이 끝난 지 3년 후인 1956년 11월 부산에서 진보당을 창당하고 정치에 참여하여 이승만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 되었는데, 검찰은 진보당의 '평화 통일' 정강이 반공법 위반이라는 혐의로 조봉암을 좌파 빨갱이 공산주의자로 몰아 기소해서 사형을 선고하고 진보당과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이때부터 정치권이 진보=민주세력=좌파=빨갱이와 보수=참칭 민주세력=우파로 나누어지는데, 참칭 민주는 민주의 이름을 빌린 친일 경찰독재이다. 즉 진보=민주=좌파=빨갱이=야당(민주당, 진보당, 민정당, 국민의당 등)과 보수=참칭민주 경찰독재=우파=친일세력=여당(자유당)의 개념이 형성되는데, 이것은 이승만 정부가 조봉암을 모함하여 생긴 일로, 좌파=민주=빨갱이라는 좌표찍기를 중단해야 하여야 한다.
또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져 국가 경제가 북한을 능가하고 국민 수준이 향상되어 있는 지금 우파(우익)=민주세력과 좌파(좌익)=용공분자로 구분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의 프레임 씌우기에 지나지 않으니 속아서 쓰지 말아야 한다.
한편, 조봉암은 33년이 지난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 정부 시절 국회에서 복권시키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기인 2007년 9월 18일 진실화해위에서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 특무대가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수사에 나서 재판을 통해 처형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인정되는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 사건이다.”고 결론이 내려졌으며, 결국 2011년 1월 20일 이명박 대통령 때 대법원은 재심을 통해 조봉암의 무죄를 선고해 그에 대한 사형 집행이 정치탄압을 위한 ‘사법살인’이었음을 인정했다.
한편, 자유당은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여 해산된 2년여 만인 1963년 재창당이 논의되었으나, 배종덕을 중심으로 한 자유당 재건파· 김법린을 중심으로 한 민정당 참여파· 이활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참여파· 이범석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 참여파 등으로 나뉘어 갈등을 겪다 의견을 모으지 못했고, 결국 장택상 등 일부가 '이승만 정신 계승'을 내걸고 '자유당'이라는 이름으로 재창당했지만, 만년 원외 군소정당 신세를 면치 못하다 1970년 유진산,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 등이 중심이 된 단일 야당 신민당에 흡수 합당되며 공식적으로 명맥이 끊어졌다.
제2공화국의 혼란이 끝나고 5.16으로 1963년 제3공화국의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유당, 민주당 등 기성 정당 출신 세력, 정구영 등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일부를 흡수하여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였다. 이때부터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자유당의 기득권을 뺏어 기득권층인 ‘보수=참칭 민주 군사독재’가 되고, 신민당이 ‘진보=민주세력’이 되는 당쟁이 이루어졌다.
전술했듯이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하자,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으로 5.18 민주화 시위를 진압한 후 정권을 잡는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창당한 민주정의당은 여당으로서 전두환 대통령(1980년~1988년)의 군사독재를 거쳐 3당 합당 이전의 노태우(1988년~1993년)까지 이어지는데, 결국 민주 정의당이 민주공화당의 독재를 이어받은 것이고, 이로써 민주공화당의 기득권을 이은 민주정의당이 기득권층인 ‘보수=참칭 민주 군사독재’가 이어지고, 신민당의 ‘진보=민주세력’이 이어지는 당쟁이 계속되었다.
한편, 1985년 제5공화국의 전두환 정권에 의해 내려진 정치 규제가 풀리자, 기존의 민주화추진협의회 쪽 인사와 정치규제가 풀린 김대중·김영삼·이철승 등 옛 신민당 인사들이 합쳐서 새롭게 야당인 신한민주당을 만들었고, 신한민주당의 다수파인 김영삼(YS)의 상도동계와 (김대중, DJ)의 동교동계가 1987년 4월 탈당해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으며, 비슷한 시기인 1987년 10월 김종필(JP)을 중심으로 한 민주공화당 세력이 민주화 이후 충청권 보수정당인 신민주공화당을 만들어 삼김시대(三金時代)를 열었다.
이로써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민주공화당이 기득권층인 ‘보수=참칭 민주 군사독재’가 되고, 신민당을 이은 신한민주당과 통일민주당이 진보=민주세력이 되는 당쟁이 이어졌다. 참고로 당시 김영삼과 김대중은 스스로를 개혁보수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민주화 세력임으로 개혁보수가 아닌 진보에 속한다.
1990년 1월 22일 대한민국의 여당인 민주정의당, 야당인 상도동계(YS)의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합당한 3당합당(三黨合黨)이 일어났다.
즉 진보 세력인 야당인 상도동계(YS)의 통일민주당과 김종필 계의 신민주공화당이 보수세력인 여당 민주자유당으로 들어가 3당합당(三黨合黨)하였고, 야당인 동교동계(DJ)의 통일민주당만이 유일한 원내 야당으로 남았으며, 이로써 스스로 개혁보수라 칭했던 김영삼이 보수로 돌아서 민주당으로 들어가자, 역시 개혁보수를 칭했던 진보의 김대중은 원치도 않았는데 졸지에 혼자 진보로 남게 되었다. 문제는 여당인 보수세력의 민주자유당이 김영삼으로 옷을 갈아 입어 진보를 참칭(僭稱)했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와 진보가 헷갈리는 헤프닝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래도 민주자유당이 보수임에는 변함이 없다. 어쨌든 김영삼의 보수당 입당으로 인해 이전까지 호남 vs 부산·경남(PK) vs 대구·경북(TK) vs 충청도의 4자 구도로 이어져 왔던 지역 정치 구도가 순식간에 호남(진보) vs 비(非)호남(보수)으로 단순화되면서 정치적으로 호남 지역이 상당 기간 고립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시기별로 보수와 진보의 변화와 함께 당의 변화를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조선시대: 왕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보수
동학농민운동과 3.1운동의 예처럼 국민주권을 요구한 국민들=진보
② 일제강점기: 친일 세력= 보수
중국과 소련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진보
③ 미군정: 이승만을 비롯한 친일 세력= 보수
중국과 소련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진보
④ 이승만 정부(1948년~1960년)
여당(자유당)=참칭민주 친일 경찰독재=보수
야당(민주당, 진보당, 민정당, 국민의당 등)= 독재에 항거=진보
⑤ 박정희 정부(1963년~1979년)
여당 민주공화당(자유당+민정당)=참칭민주 군사독재=보수
야당 신민당=민주세력=진보
⑥ 전두환 정부(1980년~1988년)
여당 민주정의당=참칭민주 군사독재=보수
야당 신민당=민주세력=진보
⑦ 노태우 정부(1988년~ 1993)
여당 민주정의당, 야당 신민주공화당(JP)=참칭 민주 군사독재=보수
야당 신한민주당(YS)과 통일민주당(DJ)=민주세력=진보
⑧ 김영삼 정부(1993년~ 1998년)
여당 민주자유당(민정당의 3당합당)-신한국당=개혁보수(신보수: 보수인 민자당이 진보인 김영삼의 옷을 입었기에 붙인 이름인데, 개혁보수는 원래 김영삼과 김대중이 스스로를 칭했던 명칭이다)
야당 평화민주당(DJ)=민주세력=진보
⑨ 김대중 정부(1998년~ 2003년)
여당 민주당-새천년 민주당(DJ)-열린유리당-통합민주당=민주세력=진보
야당 한나라당(신한국당+통합민주당)=개혁보수(신보수): 정치계에서는 한나라당을 진보로 보는데, 개혁보수가 정확한 표현이다.
⑩ 노무현 정부(2003년~ 2008년)
여당 –새정치 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진보
야당 한나라당=개혁보수(신보수)
⑪ 이명박 정부(2008년~ 2013년)
여당 한나라당=개혁보수(신보수)
야당 더불어민주당= 진보
⑫ 박근혜 정부(2013년~ 2017년)
여당 한나라당=개혁보수(신보수)
야당 더불어민주당=진보
⑬ 문재인 정부(2017년~ 2022년)
여당 더불어민주당=진보
야당 한나라당=개혁보수(신보수)
⑭ 윤석열 정부(2022년~ ? )
여당 한나라당- 국민의 힘=개혁보수(윤석열 대통령 본인은 개혁보수(신보수)도 진보도 아닌, 그냥 자기 이익에 충실한 친일 검찰 세력이다)
야당 더불어민주당=진보
살펴보면 보수는 권력을 추구하여 시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옷을 바꾸어 입으면서 기득권을 유지해 오고 있고, 진보는 끊임없이 국민주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진보 역시 기득권이 되어 국민주권의 저해 요소가 되고 있는데, 현재 개혁보수인 국민의 힘의 역사와 진보인 더불어 민주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독재는 진보와 개혁보수가 검찰을 이용해 엎치락뒤치락하며 기득권 다툼을 한 결과 생겨난 사필귀정· 자업자득의 결과로 보이고, 따라서 개혁보수당인 국민의 힘을 등에 업고 미쳐 날뛰는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독재를 막는 것만큼 진보의 개혁 또한 필요해 보인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판결이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어 국민들의 탄핵시위가 혹한(酷寒)을 이기며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극우 보수세력들의 탄핵 반대의 소리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과 경찰 공수처의 압수수색은 물론 대법원의 탄핵 심판 서류 송달조차 차단한 채 경호처의 보호 아래 칩거하고 있는 용산집무실에는 극우 보수세력들이 보내는 화환이 줄을 짓고 있고, 국민의 힘과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에 책임이 있는 국무위원들이 이런 극우 보수의 기세에 힘입어 전세를 역전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진보인 야당을 국가전복을 획책하는 종북 좌파로 몰고 있는데, 좌익(좌파)과 우익(우파)의 구분은 공산 독재를 하는 북조선이 좌익이고 국민주권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우익이며, 국내로 보아도 현재 국민지지율 80%대인 진보=야당이 우익이고 국민지지율 20%대인 보수=여당이 좌익이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의 역사와 의미가 확실하듯이 민주국가 대한민국의 국내에서 이미 확실하게 구시대의 유물이 된 좌익(좌파)과 우익(우파)이라는 낡은 이념을 정치에 이용해 국민을 갈라치기해 기득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악용하지 않아야 하고, 국민이 국민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에 속지 말아야 한다.
"제 3편 : 민주정치와 시위문화와 당쟁(시위문화)"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