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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Feb 14. 2024

홍익인간 전당 이야기 8

아묵애(我黙涯) 전기 (1)


 홍익인간 전당이야기는 아묵애(我黙涯)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말 아무개로 불리는 아묵애는 홍익인간의 길을 걷는 인물인데,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인 동시에 실재하는 인물이자 차원을 옮겨 다니는 시간 여행자로 당신이 없었던 과거는 물론 당신이 사라지고 없을 미래에도 존재한다.      


홍익인간 아묵애의 삶을 통하여 차원을 옮겨 다니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다.     



  

 내 이름은 아무개, 내가 처음 홍익인간이 되어 차원을 옮겨 다닐 수 있는 시간 여행자가 된 것은 주나라가 상나라 즉 은나라를 멸망시킨 BC 1,046여 년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주나라와 기자 조선과 고조선의 뒤를 이은 삼한 조선이 있었는데, 주나라는 중국인들이 세운 나라이고, 기자 조선은 중국인인 기자가 고조선의 신교를 바탕으로 주 무왕의 도움을 받아 신교나라 고조선의 중심국으로 세운 나라였으며, 봉건 통치국가인 주나라와 기자 조선의 비 신교도들 VS 신교국가인 삼한조선과 기자 조선의 신교도 간의 다툼이 극심한 시기였다.      


 당시 나는 부모 형제 없는 천애 고아로, 성도 이름 없는 없이 어느 집에 얹혀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 주인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떠돌며 다니다, 어느 날 어떤 고아가 비 신교도의 집에 걸식(乞食)하러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고아는 집주인에게 문전박대를 당해 쫓겨났고, 집주인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그 고아를 따라가 거지새끼라며 죽을 듯이 폭행을 하자, 나는 이를 말리다 실수로 집주인 아들을 죽이게되었는데 이것이 내가 저질렀던 첫 번째 살인이었다. 

 나는 그 고아를 따라 고아 무리로 숨어들어 문전걸식하며 거지로 살게 되었다. 사실 고아 무리들이 문전걸식을 하여 거지라고 하였지만, 당시 신교도와 관계있는 시설이나 집에서는 무상으로 먹을 것이 제공되고 있었으니, 엄밀히 말해서 거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비 신교도 사람들은 고아 무리를 거지라 하였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거지가 맞는 말이기는 했다.

     

 어느 날 신교인(神敎人)의 도움으로 무리를 떠나 그 집에 얹혀 생활하게 되었고, 신교(神敎) 교당(敎堂)에 따라갔다가 선인(仙人)을 만났는데. 그는 나에게 나의 전생을 말해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 나의 전생은 홍생(洪生)이라는 개성 부상(富商)의 아들이었는데, 고조선의 옛 땅인 평양에서 놀다가 대동강 가에 있는 부벽루(浮碧樓)에서 기자(奇字)의 후예로 본래 고조선의 왕족이었던 신녀(神女)와 만났고, 신녀는 고조선을 세웠다는 어떤 신인(神人)을 따라 자부(紫府) 현도(玄都)라는 섬에 있는 현주(玄州)로 들어가, 그가 준 현주(玄州)의 불사약을 먹은 후 며칠 만에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나서 뼈 마디마디가 바뀌는 것을 느끼면서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데, 전생의 나 홍생은 그녀로부터 선계의 술과 음식을 대접받고, 그녀가 지은 시를 감상하다가 돌아온 뒤에 상사병에 걸렸다. 그러던 중 전날 꿈에 신녀(神女)로부터 선관(仙官)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날 시해(屍解)를 당했는데, 죽은 후 그 시체가 변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신선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선인의 말에 의하면 전생의 나는 살면서 지은 악업 때문에 시해를 당했기에 신선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이어서 마치 내가 과거 실수로 살인을 저질렀던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모든 것은 네가 만든 악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교단(敎團)으로 들어와 회계하며 살라고 했다.  

 나는 그 후 선인을 말에 따라 교단에서 사제(師弟)의 길을 걸으며, 선인 집단의 일원으로 살며 신교(神敎)의 교리(敎理)인 선교(仙敎)와 수행법(修行法)인 선도(仙道)를 배우게 되었는데, 스승은 나의 성정이 불같으니 선도를 배워 능력이 생기더라도 시비에 휘말려 목숨을 빼앗는 무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였다.       


 나는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여 나름 도인(道人)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는데, 세상은 점차 힘 있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변해갔고, 한 날 심부름을 가다 도중에 전에 함께했던 고아 무리들이 그들의 노예가 되어 두들겨 맞으며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긴 힘 있는 놈들이 힘없는 사람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필요하면 잡아가서 노에처럼 부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고아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나는 교당으로 돌아와 스승님과 선배 선인들에게 내 친구들을 구해달라고 했으나, 그들을 건드리면 큰 싸움이 일어나 무고한 백성들이 희생될 수 있으니 안된다며, 세상이 바뀔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 비겁하게 들려“세상이 언제 바뀌느냐? 과연 바뀌기라도 하겠느냐? 억울한 사람들이 다 죽고 나서 바뀐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냐고?”고 소리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혼자 고아들을 구하러 가서 그들과 싸웠다

 중과 부족으로 힘껏 싸우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었는데, 권력 높고 돈 많은 그들에 의해 나의 전번의 살인행위까지 알려지면서,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다. 

 선인들까지 그들의 눈치를 보며 교당의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를 붙여 나를 쫓아다녀 추적을 피할 수 없었고, 나는 선인들의 비겁함에 분노하여 교당에 불을 지르고 소도(蘇塗)로 도망쳐 들어갔다.


 나는 이후 소도에서 살게 되었는데, 소도는 당시 신교(神敎) 신녀(神女)가 머물며 천제(天祭)를 올리는 신성한 곳으로, 죄인들이 이곳으로 도망치더라도 도력이 높은 선인들이 지키고 있어 누구도 더 이상 쫓지 못하는 성역(聖域)이었다. 

 소도의 삶은 나름 도인의 경지에 오른 나에게도 힘들었는데, 특히 도피해 들어온 일반적인 죄수들에게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행이 밤낮없이 계속되는 고행으로 점철된 삶은 거의 죽지 못해 사는 삶의 연속이었기에 때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세상은 점차 봉건 통치국가인 주나라와 기자 조선의 비 신교도들에 의해 무법천지로 변해갔다. 

 주나라는 이른바 봉건제도를 시행했는데, 봉건 제도의 기틀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중앙에는 최고 통치자인 왕이 존재하고, 순서에 따라 공, 후, 백, 자, 남으로 이루어진 오등작을 유력 세력들과 왕 사이의 친밀도, 전략적인 중요성, 군공 등을 고려하여 왕이 직접 그들을 수순에 맞게 책봉했다. 이 중 신교 교단의 소 교주로 작(爵) 즉 술잔을 제단에 올려 제사를 지내는 후작(侯爵)이 가장 많았는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주나라의 귀족으로 봉작을 받았고, 이 때문에 이 귀족들 모두를 지칭하는 말로 모두 제(諸)자를 사용하여 제후(諸侯)라는 말이 통용되게 되었다. 제후(諸侯)들은 국(國)을 수여 받았고, 이후 이들 역시 내부의 공신들을 책봉하였는데, 이들은 경(卿) 혹은 대부(大夫)로 불렸으며, 가(家)를 수여 받았다. 다시 가 내부에서 공신 책봉이 이루어져서 사(士) 계층이 생겨났고, 이들은 단순하게 식읍 정도를 수여 받았는데, 기본적으로 주나라 시대에는 읍(邑)이 행정의 최소 단위였으므로 더 이상의 분봉은 없었다.     


 주나라는 봉건제도를 뒷받침하는 천명론과 종법 질서를 바탕으로, 국가의 신(神)을 교체했다. 

 본래 상나라가 숭배하던 신은 천제(天帝) 즉 옥황상제(玉皇上帝)로 이를 믿는 신교(神敎)가 천명론의 주체가 되었으나, 주나라 시대에는 왕(王)이 천(天) 즉 하늘의 신으로서 섬겨져 천명론의 주체가 통치자로 바뀌게 되었고, 왕이 다스리는 성읍 국가가 중국 전역을 주관하는 봉건제 통치로 성격이 달라지고 범위가 확장되어, 신의 성격 또한 세계 질서의 신에서 통치 계급만의 신으로 재확립되었다. 이에 따라 천은 신교 대신 통치자에게 운명 혹은 사명을 수여하게 되었는데, 이를 천명(天命)이라고 하였으며, 왕은 천으로부터 천하(天下)를 수여받아 천자(天子)로서 통치를 수행하게 되었다. 

 물론 왕뿐만 아니라, 각 지위에 오른 모든 통치자는 제 각기 나름대로 하늘의 대리인인 천자로부터 사명을 수여 받았으므로 제 역할을 다해야 하였다. 왕은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고, 제후는 국을 다스리며, 경과 대부는 가를 다스리고, 사는 식읍을 받아 스스로를 수양하여 국가에 이로운 지식인이 된다는 것이 그들에게 내려졌던 사명이었다. 이를 한자로 쓰면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였다. 

 한편 통치 체제의 지속을 위해서도, 상나라 시대의 불분명한 계승을 넘어 종법 질서가 확립되었다. 즉 맏아들은 대종(大宗)이 되어 해당 직위를 계승하지만, 그 이외의 아들은 소종(小宗)이 되어 대종의 신하로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계승 체계는 조상 제사를 통해 계속해서 재확인되었는데, 이러한 제사의 묘제를 확립하여 실현한 공간이 종묘였다. 다만 상하 계급 관계의 확대를 위하여 형식상 성씨가 다른, 즉 전혀 다른 계통의 제후들도 주나라의 소종으로서 친(親)의 질서 내에 포괄되어 있었다.   

  

 천명론과 종법 질서는 본래 상-주 교체를 정당화하기 위해 등장한 사상이었고, 만약 왕이 왕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역성혁명이라 하여 다른 사람에게 천명이 옮겨갈 수 있었는데, 이것은 천명론과 종법 질서를 내세웠으나 결국 천명론의 원래 의미인“왕이 천제를 섬기는 신교 밑에 있다.”는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천명론과 종법 질서 등의 등장으로, 주나라의 성격은 상나라 시대의 신정국가(神政國家)에서, 신정(神政)을 표방한 통치국가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실 통치를 위해 주나라의 천자는 회맹(會盟)이라는 절차를 통해 군사력을 확보하고, 주나라의 질서에 어긋나는 제후들을 토벌하였다. 이를 통해 초기 삼감의 난 등을 진압하면서 주나라의 통치는 한동안 확고해졌다.

 주나라는 봉건 통치 체제에 의한 천명론과 종법 질서로 권력층 중심의 인문주의적인 국가로 발전했다. 그래서 주나라의 권위는 현실 통치가 무력화되면 천명론으로써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고, 결국 신정국가로 돌아가거나 다른 통치체제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도로 도피한 지 30여 년이 흘러 결국 대오각성하여 홍익인간으로 거듭나 신성인간으로 신계를 드나들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 여행자로 차원을 오가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홍익인간이 된 후 삼한 춘추전국시대의 격동기를 넘어 700여 년을 더 살다가, BC 210년 진시황의 분서갱유 시에 신선이 되어 산신으로 숨어 살았다.

 그 후 후손들이 한반도로 모두 떠나자, 나도 한반도로 옮겨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차원을 넘나들며 김 아무개 박아무개 최아무개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역사 속의 인물로 등장하여 시간 여행자로 살고 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볼 수 없지만, 나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존재하는데, 어쩌면 당신이 길을 걷다 넘어지려 할 때 당신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일 수도 있고, 행상이나 김밥장사로 번 푼돈을 모아 굶주릴 지도 모르는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기부하는 할머니일 수도 있고, 불길 속으로 누군가를 구하러 몸 던져 뛰어드는 소방관일 수도 있으며, 값진 삶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희생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나를 통하여 당신이 사는 역사에서 올바른 길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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