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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Apr 06. 2021

미국에서 아이에게 영어로 말하지 않는 이유

 친정엄마와 전화로 실컷 수다를 떨고 끊을 때쯤 아이에게 시킨 인사말에 샛별이는 이렇게 대꾸했다. 


 "할무이 조심조심 다녀~ 빠이!"


 세 살 아이가 칠순이 훌쩍 넘은 할머니에게 조심조심 다니라고 하다니. 무슨 말을 하든 요즘은 아이의 말 때문에 웃게 되는 일이 많다. 정말 언어 폭발 시기다. 얼마 전에는 한인 마트 안에서 떡을 사다가 짧은 파마머리에 얼굴이 동그란 아줌마를 보고 "아줌마! 귀여워!"라고 말해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었다. 제 눈에 귀여워 보였나 보다. 


 또 동물이 여럿 나오는 그림책을 보다가 내가 물었다. 


  "사자가 좋아? 아니면 호랑이가 좋아?"

  

 아이는 내가 제시한 질문에 대답을 고르지 않고 바로 "무서워"라고 받아쳤다. 나였다면 무서워도 어떻게든 둘 중 하나를 골라 보려고 했을 텐데 아이의 자유로운 대답이 신선했다.  


 사실 미국에 살면서 한국말을 반만 가르치고 영어로 말해 주어야 하나 살짝 고민도 했었다. 어느 책에서는 3세부터 언어가 늘기 때문에 영어를 함께 사용하면 금세 적응이 되어, 모국어처럼 쓸 수 있다고도 했다. 여러 조언에 귀를 열고 있다가 나만의 결론을 내었다. 한국말부터 제대로 한 후 아이가 프리스쿨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 밖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결정한 것이다. 결심 전까지는 친정엄마도 그리고 친정언니도 한 번씩 나를 흔들었다. 


 "애가 한국말만 쓰네? 영어는 어릴수록 좋다는데 안 가르치니?"

 "샛별이 영어 안 써? 동시에 써야 좋대!"


 간단한 것만 가끔 영어로 알려 주고 주로 한국어를 쓴다. 그림동화책을 도서관(물론 영어로 된 책들이다)에서 빌려온 것이 한가득이기는 하다. 영어 그림책 소모임을 예전부터 해왔다. 한국 책보다는 영어책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이 크기도 하고, 책으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큰 목적이 된 모임이기도 하다. 책을 펼치고 영어로 읽어 주지만 아이는 잘 듣지 않는 눈치다. 긴 문장을 읽어 줄 때는 나를 제지시키기도 한다. 

 

 "엄마, 그만 말해! 말하지 마!"


 적당히 영어로 이야기한 후 한국말로 그림을 보며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림을 보면서 자기 나름의 상상력을 갖고 이야기하는 샛별이를 종종 목격했다.  


 "엄마! 나비가 꽃한테 빠이 한대! 엄마, 누나가 무셔워서 달려가는 거야!"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다음 질문을 가지고 그림책을 넘기면 알아서 이야기가 구성된다. 아이의 조잘거린 내용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앞뒤 맥락도 없고 가끔은 주인공이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구석진 풀밭에 붙어있는 무당벌레가 주요 인물이 되는 순간도 온다. 


  지금은 샛별이가 영어를 몰라도 이런 상상력과 한국어 능력이 우수하다는 게 나는 더 자랑스럽다.


  "엄마, 성공했네?"

  "상상이 깨지고 현실 되었어!"

  "색이 이걸로 변화하는 거야."

  "샛별이 아직 도착 안 했어?"


 세 살 아이가 구사하는 한국어 실력 치고도 월등히 말을 잘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단어를 어떻게 알고 조합을 시키는지도 궁금하다. 


 내가 미국에서 이렇게 당당히 영어를 안 가르치는 이유는 아마 한국이 아닌 해외라서 갖게 되는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영어를 쓰는 국가이기에 자라면서 영어는 모국어처럼 쓸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해외에 나가살면 자연스럽게 애국자가 되듯, 이곳에서 2세들이 한국말을 쓰는 게 너무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자녀들이 한국말로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듣고 있다가 옆 사람들이 더 놀라서 묻는다. 그 묻는 사람 중에 하나도 물론 나였다. 


 "어머!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한국말을 너무 잘하네! 기특해라!"


 나는 세 살 아이에게 무엇을 걱정했는가. 프리스쿨을 보내게 되면 집에서 오히려 영어만 쓰려고 드는 아이를 곧 보게 될 텐데 그게 더 걱정이 아닐까. 


 해오던 대로 많은 단어들을 구사하며 한국어를 표현하는 지금의 내 아이가 계속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성인이 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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