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 말고 '행복한 엄마'

나에 대한 재정립

by 리앤

나는 재정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재정립이란 국어사전의 의미로 '다시 바로 세움'이란 뜻이다. 리셋과도 비슷하면서 리부트 정도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로 바로 직역하면 Reestablishment가 된다고 한영사전에 나온다.


영어로 말하면 다소 긴 편이어서 아무래도 리부트 Reboot : 재시동하다 가 쓰기 편할 수도 있겠다. 다시 바로 세우는 일은 시동을 거는 것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는 같은 의미로 보고 싶다.


내 삶에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이를 키우며 흐트러진 나를 바로 잡는 일이다.


"아니 애엄마가 무슨 시간을 가져. 아이들 금방 커. 애나 신경 써!"


꼭 한 사람은 '좋은 엄마'가 되라고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댓글로도 이런 식의 조언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아서 나는 아니다. 나도 그런 댓글을 받아보고 싶긴 하다.


내가 좋아하는 아니 즐기며 대리 만족하는 유튜버가 한 명 있다. 패션계 쪽에 관심이 많은 여자인데 아이가 둘이다. 그것도 지금 내 아이만큼 어린 자녀가 있다. 집에서 유튜브를 직접 찍고 편집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한쪽에서 노는 화면도 보여준다. 아이가 화면 밖에서 놀고 있다가 엄마를 부르면, 여자는 패션과 일상, 추억 등을 얘기하다 말고 고개까지 돌려 대답한다. 아이들이 화면에 나와 자연스럽게 인사도 한다. 그러다가는 중간에 이야기의 맥이 끊기기도 한다. 그런데 나름 그런 재미로 육아하는 엄마들이 많이 보기도 한다. 나처럼 대리만족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엄청나게 긴 댓글이 달리고 말았다.


엄마의 잔소리 같기도 한 충고인데 따끔한 지침과 비난도 섞였다. 그 댓글에 대댓글이 달리며 정말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졌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그게 뭐 어때서, 다. 두 아이의 엄마라고 아무것도 안 하고 아이들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연장선상을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나름 열심히 기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내팽개친 채 화면에만 몰두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에게 아침 챙겨줘야 한다고 카메라를 켠 채 토스트를 하기도 하고, 함께 먹고 얘기하는 순간을 다 담아내기도 한다.


엄마도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 여자로 돌아가 온전한 나로 서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육아 전문 블로거인 맘스 라디오 김태은 대표는 '엄마 모드'는 잠시 꺼두고, '여자 모드'를 켜고 몇 시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말해서 공감을 샀다. 맞다. 나도 가끔 여자 모드가 되고 싶다.


언제까지 엄마라는 타이틀로만 나의 에너지를 모두 고갈시키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엄마'보다는 '행복한 엄마'가 되어 아이를 보는 게 백 배 천 배 만 배 더 낫다는 결론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첫 3개월, 그러니까 내 존재가 없다시피 한 그 시절을 지나 꼬박 1년, 2년의 시간을 거쳐왔다. 이제는 나도 ‘좋은 엄마’만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5%에서 10% 정도는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좀 쓰면 안 되나?


나의 경우는 혼자 육아를 담당해야 하다 보니 그런 짬은 아이가 낮잠 잘 때뿐이었다.


아이가 1살 넘어갈 무렵 일주일에 하루! 반나절도 아닌 하루를 나에게 자유시간으로 주겠노라고 쿨하게 말했던 남편! 아! 나는 그 거짓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쿨한 것과 다르게 내가 자유로운 날은 한두 번 뿐이었다. 그 하루를 위해 일주일을 산 내 모습이 처절하리만큼 뭉개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시간은 역시 나만의 착각이었다. 달콤한 착각. 그리고 마침내 선언했다.


"하루를 쉰다는 건 꿈이지! 일주일에 반나절은 나한테 자유를 줘!"


남편은 또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이번에도 남편은 쿨했다. 남편의 들쑥날쑥한 사업의 일정은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모든 건 그냥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그게 현실이었고, 나는 일찍 마음을 접는 편을 택했다. 혹시나 남편이 아이를 봐준다며 달콤한 유혹을 해온다면, 인증숏으로 찍어 두었다가 들이밀기를 권한다.


Re-리플러스 대표인 박재연은 독박 육아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1. 나만의 시간을 가져라!

2. 내 일이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걸 스스로 인식하라!


많은 시간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엄마도 지치고 모든 에너지가 아이로 인해 소비되고 바닥이 날 때가 많다. 물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늘 실감하며 지나간다. 그래도 엄마가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에서 에너지가 발산된다는 뜻이다.

쿨한 남편은 그마저도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졸지에 그렇게 독박 육아를 뒤집어쓰고 육아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의 개월 수가 채워져 갔다.


지금에야 요령이 생겨서 어느 때 나의 시간을 써야 하는지 알게 되었지만, 아이가 어린 한 두 살가량까지는 정말 멋모르고 당하는 육아였다. 전쟁도 싸워야 전쟁이지 이건 늘 당하는 것만 같고 어어어 어~ 만 외치다가 전쟁의 밤이 다가왔다. 그러면 총 한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기절하는 식이니 나를 돌볼 겨를은 단 1도 생기지를 않았다.


지금은 밤마다 기절하듯 쓰러져 자는 일은 같지만, 새벽같이 일어나는 일은 달라진 점 중에 하나다. 고정적인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누가 주지 않으면 나 혼자라도 그런 시간을 만들면 되지, 라는 오기도 생겼다.


아니 내가 어떻게 이렇게 똑똑해지고 씩씩해 진거야? 가끔 나 자신도 놀랍다. 너무 힘든 날에는 컨디션을 조절하며 아침까지 아이와 함께 자기도 한다. 단 그런 날을 일주일 내내 만들지는 않을 뿐이다. 그래도 나 스스로 가지는 시간에 대해 더 당당해졌다.


내가 내 잠을 좀 줄여서 쓰겠다는 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그것도 뭐라 하는 사람은 있다. 바로 쿨한 남편이다. 나는 8시간을 꼬박 자야 하는 사람이었다. 누우면 자고, 눈뜨면 바로 아침이었으니 그 8시간은 도둑맞은 듯 그렇지만 하루의 컨디션은 매우 좋은 하루하루를 즐기던 사람이었다. 내가 잠을 6~7시간으로 줄이니 걱정이 되었나 보다. 설마 그 피해가 아이에게 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뭐 그래도 할 수 없고.


어쨌든 나를 위한 말이니 고맙게는 받았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그럼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한두 시간 주던가' 하는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남편은 밤에 사무실에서 일하고 낮에 잠시 집에 들러 자기도 하고 짬이 나면 열심히 아이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낸다. 나는 이때다, 싶어 슬그머니 빠지기도 하고 덕분에 목욕물도 받아서 스파 하는 기분도 누려본다. 하지만 길게 이어지는 시간은 아니다. 중간중간 아이가 끼어들기도 하고, 배가 고프다면 간식이라도 챙겨주러 나와 부엌에서 또 주섬주섬 간식거리를 챙기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은 나에게 많은 시간을 양보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은 일하고 들어와 쉬고 싶은데 잠만 몇 시간 모자라게 자고는 바로 아이와 놀아주기 때문이다. 아, 슬픈 우리들의 인생이여~


어차피 아이가 어리면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부부는 이때쯤 대화가 서서히 줄어들게 되고 모든 관심사가 아이에게로 옮겨가게 된다고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아이가 있기 전에는 만나기만 하면 심도 있는 대화 나누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챙기기에 바빴던 우리가 이제는 아이를 중간에 놓고 아이 챙기기에 바쁘다.

예전 같았음 나에게 했을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샀어!'라는 말을 이제는 아이에게 한다. 스낵은 스낵대로 죄다 퍼와서 나에게 핀잔도 듣는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시점에서 재정립을 생각한다. 나를 위해 다시 시동을 걸 준비. 아이는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안겨준 현실 때문에 어린이집에 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과 남편이 아이와 잠시 놀아줄 때, 그리고 동트기 전 새벽시간에 나는 책을 읽고, 다이어리를 쓰고, 공부를 한다. 나의 재정립의 시간이다. 여기에서 뭘 더 끼워 넣을까 시동 거는 중이기도 하다.


배철현의 <승화>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이 하루 같다는 말이 실감 난다."

"이른 아침, 하루의 일과를 신중하게 기획하지 않으면 그 하루는 대개 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자연은 이른 아침에 최선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은 하루라는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선이며 어제의 잠으로부터 나를 깨우는 시간이다. 저녁노을이 아닌 이른 아침은 보람된 하루를 결심하는 최적의 시간이다. 오늘 하루가 어제보다 거룩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오늘은 어제와 같이 기억에서 벗어나 흘러가버리기 일쑤다."


배철현이 말한 이른 새벽, 아침에 대한 생각이다.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이 정도의 욕심은 내도 되지 않을까.


에너지에는 총량이 있다. 나를 위해 쓰는 에너지가 없을 경우 행복한 엄마는 결코 될 수 없다. -박재연의 공감톡에서


국어사전, 한영사전, 박재연 <육아맘을 위한 공감 톡>, 배철현 <승화>, 맘스 라디오 김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