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아버지와의 오후

여전히 남은 세계

by 리앤

아버지는 집에서 햇살이 가장 잘 드는 자리, 창가 쪽 의자에 앉아 있곤 했다. 아침마다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동쪽 햇살은, 이른 새벽의 부지런한 농부 같았다. 눈부실 정도로 하얀 빛 아래서, 아버지는 초점 없는 눈으로 오래 앉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빛 속에서 아버지가 하얗게 부서져 먼지처럼 흩어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조용히 숨을 고르며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불러도 듣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꼭, 곧 떠날 사람처럼 보였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라는 단어의 울림이 좋았다. 친구들은 그 말이 낯설다며, "새아버지야?" 하고 묻던 시절에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버지'란 조금은 멀고, 무겁고, 단단한 존재의 다른 이름이었다. '아빠'보다는 '아버지'가 그에게 더 어울렸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다. 밥상머리에서도 거의 입을 열지 않았고, 대신 손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장마가 오기 전에는 지붕을 점검했고, 느슨해진 내 자전거 체인을 단단히 조여주었다. 강아지를 위해 목재로 집을 지어주던 그의 손길. 말없이 세상을 붙들어두려는 힘이 느껴졌다.


그런 아버지가 든든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믿음에도 금이 갔다. 내가 자라며 아버지의 빈틈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내밀며 “이건, 언제 찍었어요?” 묻자, 아버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가족의 기억을 가장 많이 간직했을 거라 믿었던 사람이, 가장 먼저 그 기억을 잃어버리다니. 정말 기억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걸까.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아버지의 말보다 그의 침묵의 무게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침묵 안에는 전쟁, 굶주림, 상실 같은 단어들이 숨어 있었다는 걸 훗날에서야 알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말이 없는 사람'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안다. 그 말없음이야말로 아버지가 세상을 견디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고3시절, 학력고사를 치르던 그 해 겨울은 내게도, 아버지에게도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야간자습이 끝나고 밤 10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면, 깜빡거리는 가로등 밑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나보다 더 지친 얼굴로. 전쟁의 그림자는 여전히 아버지 안에 남아 있었지만, 그보다 가까운 가족의 세계가 이제 그의 하루를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싸움은 가난과 그리움, 그리고 폭격의 잔해 속에서 버틴 지난날과의 씨름이었다. 나는 미래를 붙들고 교과서와 싸우고 있었고, 아버지는 과거를 붙들고 전쟁의 기억과 싸우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전쟁을 각자 치르며 날이 선 채로 고요했다. 자칫 폭발이 될 때면, 엄마가 끼어들었다.


"그만들 싸우시고, 각자 방에서 좀 주무시지요."


언제나 가정의 균형을 지켜준 건 엄마의 목소리였다. 내가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그 목소리 덕분이었다. 엄마의 존재는 다리처럼 우리 사이를 이어주었다.


치매가 찾아온 뒤, 아버지는 점점 어린아이처럼 변해갔다.
“밥 먹었냐?”는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했고, “엄마는 언제 와?”라고 물었다. "엄마는 또 시장에 갔구나!" 하고 먼저 받아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엄마가 살아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 엄마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 머리 위로 삐죽이 나온 흰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그의 시간은 점점 뒤로 흘러가고 있었다.


엄마는 진지함을 유쾌함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말이 없는 아버지가 소년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그래도 묵묵히 들어주었다. 어느 날은 조용히 설거지만 했고, 그럴 땐 아버지가 엄마의 등 뒤에 대고 조곤조곤 얘기하다 잠이 들었다. 엄마는 담요를 덮어주는 것으로 대답했다.


나와 함께 있는 때는 엄마가 화제를 돌렸다. "아이고, 엉클 짐은 편할 날이 없겠네. 오늘은 딸내미 뭐했나 좀 들어봐." 아버지의 진지함을 장난으로 바꾸며 내 쪽으로 바라보는 눈빛에,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그 순간마다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치매가 찾아온 뒤에도 엄마의 유머는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오늘 밥은?" 하면, "이제 막 먹고 돌아섰는데. 모자랐으면 두 그릇 줄 걸 그랬네. 아버지, 요리사도 바빠요!" 하고 능청스럽게 넘겼다.


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내가 대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나를 보며 엄마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엉클 짐이 되기도 했다. 나는 정정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가 조금이라도 온전하게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말한들, 그의 기억이 온전해질까. 오히려 나에게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다만, 아버지가 더 이상 나를 잊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햇살이 깊게 들어오는 오후마다, 나는 창가의 빈 의자를 본다. 여전히 아버지가 머물던 자리다. 어쩌면 아버지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아직 그 안에서 숨 쉬고 있었기에,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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