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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사진 에세이 #1

JANUARY 01

by 리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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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에도 한국보다 늦은 첫 년도 아침 해가 떴습니다. 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블록놀이에 심취했습니다. 새해와 상관없이 하루를 보내는 느낌은 어떨까요. 그저 어제에 이은 하루. 어른의 모든 새해 다짐들이 무심하게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해피 뉴 이어!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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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뽀삐뽀~

구급차가 급히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3살 아들 말로는 의사가 아파서 구급차 타고 왔다네요.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의사가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가 웃기는 거였습니다. 의사도 사람이니 아플 수 있으니까요. 육아를 하며 많은 것이 저를 가르칩니다. 때로는 기존의 생각을 깨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아이에게 배우기도 합니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도 합니다. 육아의 힘은 실로 대단하지요. 사십 년 넘게 산 삶을 겸손하게 만드니까요.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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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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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이 적은 노트입니다.

1월을 맞으며 뭔가 새로운 나를 상상합니다. 혹시 작심삼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나 생각합니다. 살면서 어떤 질문을 하느냐는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대학에 가는 이유는 우리가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질문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니까요. 나에 대한 질문은 답을 하며 좋은 걸 찾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좋은 질문을 만들어 가는 한 해는 어떨까요?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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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무를 썰어 건조기에 말렸습니다. 마른 무는 썩지도 않고 반년 넘게 거뜬히 제 모습을 유지했네요. 물에 담가 수분을 보충하고 꼬들 해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런 반찬은 나이 든 할머니들만 하는 것인 줄 알았지요. 도토리를 산에서 힘들게 주워 도토리묵을 쑤어 자식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시던 외할머니도 생각납니다.

지인이 저를 꼬드깁니다. "내가 도토리나무 많은 데 알아놨어요. 같이 줍지 않을래요? 도토리 갈아서 묵 만들어 먹으면 좋겠어요."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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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알파벳 책을 펼쳤습니다. 비행기 그림을 보며 코로나로 한국에 가면 2주 격리가 된다는 사실은 가고 싶은 마음의 발을 묶습니다. 그저 그림으로만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백신이 격리를 없애줄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여행의 기쁨을 다시 누릴 날이 오기를...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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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를 굽는 날엔 아침부터 고소한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웁니다. 내가 낸 모양대로 둥근 쿠키, 네모난 쿠키가 나올 테지요. 인생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만드는대로 고스란히 받는 삶.

"내 맘과 같지 않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또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기도 하나 봅니다. 마치 빨간머리 앤의 말처럼요.

아이는 쿠키가 언제 나오나 설레지만 저는 올 한 해가 어떤 모습으로 빚어질지 마음이 설렙니다.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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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진 한 장에 추억이 깃듭니다. 바로 엄마가 싸주던 '김밥'입니다. 내가 만드는 김밥과는 왜 맛이 다를까요. 그래도 저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왠지 그 김밥은 엄마가 해줄 때 먹어야 하는 김밥 같기 때문입니다.

타향살이를 하며 가끔 그 맛이 그리워집니다. 엄마의 김밥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운동회의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진, 이라며 설명하는 엄마. 엄마도 가끔 추억에 젖나 봅니다.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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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아들이 그린 물고기 그림입니다. 책상 앞에 굴러다니는 눈알을 주워 올려놓고는 저를 급히 부릅니다. 새로 사 온 물감에 은빛이 도는 게 있었나 봅니다. 반짝이는 게 물고기의 비늘 같아 웃음이 납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의 눈으로 그림을 보는 일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친구가 말합니다. "지금 나보고 애 키우라면 난 못 할 것 같아! 네가 대단해!"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아이 셋을 키운 친구는 왜 제가 대단해 보일까요.

결론은 엄마는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겠지요.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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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을 사 오면 아이는 그 날로 모두 짜내어 그림을 그립니다. 손으로 진득한 물감을 캔버스 위에 문질러 대는 아이를 보며 아빠가 한마디 합니다. "손으로 다 묻히면 어떻게!" 아들이 대답합니다. "괜찮아, 아빠. (손바닥에 물감을 칠해 도화지에 찍은 그림을 가리키며) 저거 봐. 손은 따끄면 돼!" 아빠가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집니다.

때로 아이의 말이 맞을 때가 있지요. 어른인 우리는 너무 큰 걱정을 하며 사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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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거실 테이블 위에 공룡과 차를 올려놓고 다른 놀이를 합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이 생각나네요. 차에 탄 사람은 괜찮을까요? 아니면 이미 도망 간 상태일까요?

티라노사우루스는 유일한 육식 공룡 몇 중 하나이지요. 공룡 종류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이고 하물며 발음도 어렵습니다. 그중 왜 티라노사우루스가 인기가 많을까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말하더군요. 힘이 제일 세서 좋아한다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런 동경이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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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AD, MY HERO!

아빠는 아이에게 정말 히어로일까요? 이 책은 나약한 아빠의 모습만 페이지에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가서야 아이와 시간을 함께 하며 노는 모습이 나옵니다. 엉뚱하고 어설픈 아빠여도 피곤함을 무릅쓰고 나와 놀아주는 아빠는 나에게 '히어'로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아이도 아는 것일 테지요. 결코 만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는 없다는 것을. 거울을 보고 있는 아빠가 팔뚝의 볼록 솟은 알통을 내보이며 스스로 멋져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부족해도 아빠는 언제까지나 나의 히어로가 될 수 있지요. 우리 아들도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키가 크고 힘이 센 줄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날이 와도 여전히 히어로일 테니 걱정은 안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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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큰 게를 박스 채 사와 집에서 쪄먹기고 하고 간장에 조리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큰 게는 구하기 어려워 냉동으로 주로 사 먹게 됩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게가 싼 편이지요. 한국에 있는 모든 식구를 불러다가 상에 앉혀놓고 함께 먹고 싶습니다. 서른 초반의 엄마는 혼자 자식 셋을 키우고 칠순을 훌쩍 넘겼습니다.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이면 이제는 아홉입니다. 이 한 박스면 가족 모두가 배불리 먹을 것 같네요. 혼자 타향살이의 나는 한국의 친정식구들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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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침대에서 자는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자는 아이보다 잠을 더 깊게 푹 잔다고 합니다. 트레이시 호구와 멜린다 블로우의 <베이비 위스퍼 골드>라는 책에 나와 있습니다.

부모와 한 침대에서 자는 아이가 정서적으로는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는 것은 또 별개인가 봅니다. 미국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따로 잠을 잡니다. 편하게 저도 잠을 자고 싶지만 아이의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굳이 같은 침대로 기어 들어가게 됩니다. 아이가 아닌 제가 더 같이 자고 싶은 마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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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도 안 맞는 그릇을 사서 쓴다고 친정엄마는 잔소리를 합니다.

짝보다는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그릇을 사 모으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납성분이 많은 예쁜 그릇은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는데 보기에는 좋지 않았나 봅니다. 조만간 세트로 바꾸어야 할까 봅니다.

그릇에 담는 모든 건 비로소 음식이 되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어떤 그릇이고 무엇을 담으며 살지 앞으로도 생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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