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레슨을 시작했다.
레슨을 쉬는 동안
교회에서 간단한 반주만 했다.
그래서인지 베토벤, 쇼팽 을 치기에는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고
마음은 잔뜩 긴장됐다.
'이제는 다 잊어버린 걸까?'
순간 두려움이 스쳤지만
나는 다시 결심했다.
이번에는 남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시작하는 길이니까.
그날 이후로 매일 연습실에 불이 꺼지지 않았다.
손끝이 얼얼해지고
팔에 힘이 빠져도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과거의 나는 억지로 시켜서
피아노 앞에 앉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스스로 원했기에
그 고된 연습조차도 이상하게 행복했다.
무엇보다 나를 알아봐 준 선생님이 있었다.
첫날 레슨을 마치고 선생님이 말했다.
"네 안에 음악이 살아 있어. 꺼내기만 하면 돼."
그 말은 내 안에 깊이 새겨졌다.
누군가 내 가능성을 믿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더 치열하게 연습했고
선생님은 끝까지 나를 붙잡아주셨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잃어버린 감각이 빠르게 돌아왔고
소리는 다시 살아났다.
나는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삼고
더 높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권유했다.
"경험 삼아 예고 시험을 봐 보는 게 어때?"
나는 웃어넘겼다.
"3년이라는 공백이 있는데 붙을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선생님의 진지한 눈빛에
결국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 날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손이 떨렸다.
하지만 건반 위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알았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내 발걸음이었음을.
며칠 뒤 합격자 발표.
내 이름을 본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말도 안 돼..."
기대하지도 않았던 합격이었다.
그 순간 나는 울고 말았다.
내가 피아노를
음악을 다시 붙잡은 그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예고 합격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건 피아노가 다시 나를 불러주었다는 신호였고,
내가 진짜 내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날 이후 나는 확신했다.
나는 더 이상 피아노에 끌려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길 위에서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