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고 나서야 진짜 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by 빛소영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고 나서

내 하루는 갑자기 비어버렸다.


학교가 끝나도 서둘러 연습실로

가지 않아도 되었고

차갑게 나를 내려다보던 선생님의 눈빛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엔 해방 같았다.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 숨이 트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빈자리가 내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연습실을 향해 뛰던 발걸음

건반 위에서 흘러내리던 눈물

그 모든 게 사라지고 난 뒤

나는 이상하게도 허전했다.


'이제 나는 뭘 붙잡아야 하지?'


그 허전함을 채우듯

나는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처음 활을 그었을 때

현 위에서 떨리며 흘러나오던 소리는

내 마음 한구석을 울려주었다.


짧은 시간 동안은

정말 내가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팔은 점점 아파왔고

턱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바이올린은

피아노처럼 나를 사로잡지도 못했다.

나는 다시 놓아버렸다.


그러나 음악은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반주를 했다.

조용히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찬송가를 연주할 때

예배당 안에 울려 퍼지는 음들이

기도처럼 흘러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피아노는 나 혼자 울던 악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묶어주는

악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를 그 무엇보다

잘 표현해주던 악기였다.


중학교 2학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솟구쳤다.


"나... 정말 피아노가 치고 싶어..."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이제는 해야 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원했기 때문에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다시 건반 앞에 앉았다.


손끝에 닿은 건반의 감촉

울려 퍼지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날 이후 피아노는

나를 옭아매던 사슬이 아니라

내가 사랑해서 걷고 싶은 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