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피아노가 좋았다.
건반에 손을 올리면
괜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냥 소리를 따라가고 있는데,
어느새 복잡한 생각들이 멀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그 소리가 내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 건.
놀고 싶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고무줄,줄넘기,숨바꼭질 등
나는 창밖으로 그 장면을 보며
가방을 다시 멨다.
피아노 레슨 가는 길.
손엔 악보가
마음엔 한숨이 들려 있었다.
레슨실 문을 열면
익숙한 피아노 냄새와 차가운 정적이
먼저 나를 맞았다.
넓은 방에 피아노 하나.
그리고 나 혼자.
레슨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혼자 연습을 하며
나는 자주 혼잣말을 했다.
'왜 이렇게 안 되지...'
'어제는 잘 됐는데...'
어느 날
같은 부분을 수십 번 반복했는데도
계속 틀렸다.
손끝이 말을 듣지 않았고
마음은 조급해졌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졌다.
처음엔 참으려고 했다.
그런데 멈추지 않았다.
소리 없이 울면서도 나는 계속 연습을 했다.
건반 위에 떨어진 눈물
그건 내가 정말로 지쳐 있다는 신호였다.
무서운 피아노 선생님 앞에서 건반을 누르는 순간
손끝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조금만 틀려도 날아오는 날카로운 시선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훈련이 시작됐다.
엄마는 악보를 펼쳐놓고 예습과 복습을 시키셨다.
아직 세상도 잘 모르는 나이에
그 무게는 너무 벅찼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선생님과의 싸움이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 한가운데서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단 한 번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는
점점 커져갔다.
누군가 다 괜찮다고 말해주길 바랐지만
아무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피아노는 잘 치고 싶었지만
잘 치는 만큼 점점 외로워졌다.
칭찬을 들을수록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은 길어졌고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괜히 혼자만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 애썼다.
하지만...
너무 외로웠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조용히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5학년 어느 날
내 마음은 말라 있었다.
레슨 가기 싫다고
연습 못 하겠다고
계속 시간을 끌다
조용히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피아노 그만두고 싶어요..."
엄마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무언가가 툭하고
가슴 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날 이후
나는 피아노를 그만뒀다.
연습실도
콩쿨도
건반 위의 나도
나는 피아노가 싫은게 아니었어.
나는 잘 쳤어.
그저
혼자 너무 오래 버텼고
외로움과 눈물 속에서
내 안이 점점 비어갔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