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중국 드라마는 어릴 적 보았던 '황제의 딸'로 시작되어 가장 최근 감명 깊게 본 '후궁 견환전'까지 궁정에서 일어나는 후궁들의 암투와 음모를 다룬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보면서 공감보다는 다른 시공에서 일어나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주로 '즐겼던' 기억이 많다. 그러나 <겨우, 서른>은 달랐다. 외국의 드라마를 보고 내 일처럼 진심으로 공감한 적도 처음이며 이렇게 바로 리뷰를 쓰는 것도 처음이다. 서른을 앞둔, 여성이라면 꼭 이 드라마를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리뷰를 쓴다.
꿈꾸는 자의 도시, 상하이
겨우 서른의 첫 장면은 상하이에서 '살아나가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아침 일찍 조깅을 하고 아이와 남편을 챙기는 슈퍼우먼 '구자', 시골에서 상경하여 악바리처럼 열심히 사는 백화점 명품관 직원 '만니', 친구 같은 남편과 아슬아슬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백화점 직원 '샤오친'까지, 세 여성의 삶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쁜 대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니는 이러한 자신의 삶을 계속 음식을 집어삼켜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팩맨'이라는 게임에 비유한다. 그녀들에게 '상하이'는 단순한 삶의 터전이 아닌 끊임없이 싸워나가야 생존할 수 있는 전쟁터이다. 상하이를 뉴욕이나 서울로 바꾸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도시는 신분 상승과 더 나은 삶이라는 꿈을 가지고 상경한 자들로 가득한 곳이지만, 그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는 자들의 '슬픔'도 서려있다는 것을. 욕망을 포기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와버렸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시는 낙오자를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서른을 앞둔 그녀들은 직장인으로서, 주부로서 치열하게 상하이에서 두 발을 딛고 자신의 인생을 견디는 중이다.
우리 모두의 워너비: 외강내강의 여자, 구자
구자는 모든 여자들의 이상형이다. 키가 크고 세련되고 아름답다. 감정 조절에 능하고 이성적이며 살림과 육아, 내조까지 퍼펙트하다. 그녀의 인생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완벽하며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나가는 장기 프로젝트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꿈이 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 맨 꼭대기 층으로 입성하는 것! 지금도 남부럽지 않게 사는 그녀이지만, 더 완벽한 삶을 살고 싶어 돈 많은 사모님들의 모임에 '잠입'아닌 잠입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런 그녀의 결정에 남편인 환산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다. 구자의 말은 곧 법이고 룰이기 때문에, 환산의 회사가 잘 운영되는 것도 사실 구자의 공이 크기 때문에, 자신보다 똑똑한 그녀의 말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환산은 그녀의 행보를 응원할 뿐이다. 과연 구자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머리가 비상하고 지능이 뛰어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거의 본능으로 알고 있고 사람의 결핍을 잘 파악하고 마음을 쉽게 움직인다. 친구인 샤오친과, 샤오친 덕분에 알게 된 새로운 친구 만니까지 모두 동원해 사모님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아들의 유치원 입학과 새 거래처를 따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눈 깜짝할 새에, 구자는 극 중에서 가장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구자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감탄한 것은, 그녀의 미모도 그녀의 돈도 그녀의 똑똑한 머리도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고운 성품은 돈이 많든 적든, 아름답던, 그렇지 않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신분상승을 원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깔보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모님들과 어울리지만, 사모님들과의 우정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샤오친과 만니를 세상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대한다. 자신의 아이를 위협한 학부모님들에게는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는 화끈한 모성애가 있다. 그런 그녀는 그야말로 슈퍼우먼에 걸맞은 캐릭터이다.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마음은 여리고 여린 약한 여자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쟁취할 수 있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따뜻하고 강한 여자. 모든 여자들이 진정으로 닮고 싶어 하는 롤모델이 바로 구자라는 캐릭터이다.
흙속의 연꽃: 외강내유의 여자, 만니
만니는 백화점 명품관의 직원이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친절하며 항상 웃고 있는 그녀는 매장의 에이스이며 사람들이 신뢰하는 동료이다. 시골에서 넉넉하지 않은 집의 외동딸로 태어나 혈혈단신으로 상하이에 올라온 만니는 전형적인 '캔디' 캐릭터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씩씩한 사람이다. 만니의 꿈은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노력으로 드디어 큰 건을 맡게 된다. 이번 건만 성공하면 만니는 그토록 원하던 승진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으로, 만니는 고객의 포인트를 대신 사용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직장에서 쫓겨날 위험에 처한다. 그때, 안면을 트고 지내던 샤오친의 도움으로 만니는 누명에서 벗어나게 되고, 한 고비를 넘긴다. 그 후, 몸도 마음도 지친 만니는, 크루즈 여행을 떠나게 되고 럭셔리한 VIP실에서 '량정셴'이라는 한 남자를 알게 된다. 자신이 어떤 함정에 빠지게 되는지도 모른 채, 만니는 오랜만의 달콤한 로맨스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만니 캐릭터는 이 드라마를 보는 여성들이라면, 가장 공감하는 캐릭터일 것이다. 너무 완벽해서 현실감이 없는 구자도 아닌,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성격인 샤오친(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다)도 아닌, 똑똑한 머리와 신분 상승하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만니는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을 대표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요즘 여성들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도, 사랑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해내길 바라는 '완벽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지쳐있는 줄도' 모르는 공허함도 있다. 자신을 위해 '일'을 하고,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서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와는 달리 그 틈을 파고드는 사랑에 결국은 약해진다. 만니는 그러한 현대 여성들의 '모순'을 가장 잘 보여준다. 사랑도 일처럼 완벽하게 처리하는 구자와는 달리, 만니는 그동안 외면해왔던 자신의 약한 모습을 량정셴이라는 나쁜 남자와의 연애에서 직면하게 된다. 사실, 그녀는 매우 여리고 여린 여자다.
귀여운 오뚝이: 외유내강의 여자, 샤오친
샤오친은 귀엽다. 귀엽고 어려 보이는 외모에 성격도 어리바리하다. 어리바리한가 하면 정의감이 있고, 뚝심도 있다. 인내심도 강하면서 한 번씩 사고를 치고 종잡을 수 없는 여자다. 그래서인지, 극 중에서 남자들이 가장 어쩔 줄을 몰라하는 매력 있는 여자이다. 샤오친은 본인 피셜로, '주관이 없는 의존적인 여자'이다. 성격 강한 어머니 밑에서 평생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샤오친이고, 오래 사귄 '천위'와 자연스럽게 결혼해버렸다. 그런데, 어째, 이 결혼이 맞는 결혼이 아닌 것 같다. 샤오친 눈에 천위는 자기 자신과 물고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남자'이다. 샤오친보다는 일이 우선이고 둘 사이에는 어느새 대화보다는 냉랭한 침묵만이 흐른다. 그러는 동안, 샤오친은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를 갖지 말자고 딱 잘라 말하는 냉정한 천위의 말에 정이 딱 떨어져 버린다. 이혼해버릴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 와중에 직장에서는 잘생긴 연하 직장 동료인 '샤오 양'이 자꾸 들이댄다. 서른을 앞두고, 결혼한 유부녀의 애정관계가 자꾸 꼬이고 꼬인다.
이성적이고 똑 부러진 구자나 만니와 달리 샤오친은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캐릭터(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구자나 만니 같은 여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요즘 여자들은 다 똑 부러진다)이다. 샤오친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현실에 중압감을 크게 느끼는 두 인물과는 달리 샤오친은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도 큰 욕심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인 욕망이 큰 것도 아니다. 남편과 알콩달콩 보낼 수 있으면 그만인 사람이다. 그 남편이 말썽이라 문제이지, 샤오친은 지극히 평범한 여자이다.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고, 감정에 솔직하다. 그 모습이 어린아이 같지만, 밉지가 않고 심성이 곱고 순수하며 악의가 없다. 그래서 구자는 샤오친을 매우 아낀다. 사람의 성품이 눈에 보이듯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구자 같은 똑똑한 인물에게는 샤오친만 한 짝꿍이 없을 것이다. 샤오친은 누구나에게 다 사랑받을 수 있는 성격을 타고난 여자이고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순수한 동심을 지닌 인물이다.
인생은 1인분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우리의 주인공들은 하나씩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사모님들의 모임에 잠입하여 큰 계약을 따낸 구자는 한 사모님에게 뒤통수를 맞게 되고, 그 와중에 남편과 어린 여자 '유유'의 불륜이라는 큰 위기를 겪는다. 만니는 량정셴과의 연애에서 도무지 벗어날 기미가 안보이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오래 사귄 여자가 있는 프로 '플레이보이'다. 샤오친은 천위와 홧김에 이혼해버리고 연하남 샤오 양과의 썸을 즐기는데, 도무지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극 중의 전개를 위해 이런 '클라이맥스'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째 드라마를 보면서도 남일 같지가 않았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글쎄 그게 아니더라. 사람마다 강약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이런 인생의 위기를 겪게 된다. 특히, 내가 가고 있는 인생의 길이 맞는 길이 아닐 때는, 내가 가장 믿었던 사람, 가장 의지했던 소중한 관계에서 먼저 탈이 나기 마련이다. 단순한 관계의 파국이나 인연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고 뒷맛이 영 씁쓸하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런 배신을 겪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구자는 남편이 남자로서 가정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줄, 불꽃 디자이너로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줄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을 유능하게 처리하는 구자의 모습 뒤에서 쉬환 산은 항상 묘한 패배감을 느꼈을 것이고 구자는 자신의 그런 통제적인 성격이 가정에서 트러블을 일으킨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애초에, 쉬환 산은 구자의 그릇에 맞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애초에 남녀가 아닌 엄마와 아들 같은 부부였다. 쉬환산이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자가 바람이 나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하는 잘 나가는 와이프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자신이 남자라고 느낄 수 있는 여자에게 마음이 저절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편, 만니는 자신이 감정적으로 너무 지쳤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상하이에서 꿈을 잡기 위한 그 시간들 속에 자신의 감정을 돌보지 못했고, 량정셴의 기약 없는 달콤한 말들로 그것을 보상받으려 했다. 그의 마음이 진심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만니는 상하이라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너무 많이 노력한 가여운 자신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속이고 싶었을 것이다.
샤오친의 경우는 어떠한가? 샤오친은 자신의 남편이 물고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극 중에서 가장 제대로 된 남자이다.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것일 뿐, 샤오친을 아끼고 사랑하는 책임감 있는 남자이다. (물론 샤오 양도 괜찮은 남자이다, 샤오친은 남자복이 있는 편ㅎㅎ) 결국 이혼을 하고 많은 방황을 겪고 나서야 전남편에 대한 자신의 깊은 감정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인생의 기로에서 우리는 결국 인생이란 누군가와 함께 하다가도 1인 분임을, 나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해, 인생은 시련이라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구자도, 만니도, 샤오친도 그때의 시련이 가장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음을 후에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보다 값진 우정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따뜻한 순간들은, 단연 여자들 간의 우정이 돋보이는 장면들을 볼 때였다. 신분과 배경의 차이를 넘어서 여자로서 서로 공감하는 그 순간순간이 보는 내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특히 구자가 펜트하우스에 살지만 자식한테는 무시받는 천 여사에 깊이 공감하는 구자의 얼굴에서, 남편에게 평생 헌신하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천 여사가 백화점에 와서 명품 가방을 지르려는 순간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만니의 얼굴에서 여자들 특유의 동정심과 공감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고 했던가, 우리가 친구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감정을 대신 느껴주는 그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에서 세 사람이 모여서 파자마 파티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 울고 위로하는 그 장면이 나는 몹시도 부러웠다.
이런 우정은 정말 흔치 않다. 여자들의 우정은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서로 간의 질투와 비교로 얼룩지기 마련인데(일반적으로^^),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족만큼이나 끈끈하다. 어릴 적부터 친했던 샤오친과 구자의 경우에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구자와 만니는 서른을 앞두고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 진심으로 우정을 나누게 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특히 량정셴과의 나쁜 연애에 빠져 괴로워하는 만니에게 직언하는 구자의 역할은 진정한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반대로 구자가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되어 괴로워할 때 위로해주던 만니와 샤오친 역시 진정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련을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서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동년배 간에 서로 공감하고 같이 울고 웃고 하는 시간들이 우리의 인생을 버텨내게 하는 치료제라는 것을 이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다. 아마도 친구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면서 함께 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과 나를 속이지 않는 환상
드라마를 보면서 유일하게 울었던 장면이 한 장면 있었다. 바로 만니가 자신이 혼신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근무했던 백화점을 그만두던 장면이다. 만니는 이렇게 얘기한다. '열정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남과 나를 속이는 환상과 집념이다', 이 대사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나도 만니처럼, 지난 몇 년간 사회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꾹 참고 일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은 계속 타들어갔었다. 무엇을 위해 일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언제까지 열심히 살아야 할까? 나는 지금 행복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간중간에, 나도 역시 만니처럼 (만니와 나는 정말 성격이 비슷하다, 겉은 강하지만 속은 여리다) 내 감정적인 결핍을 파고드는 나쁜 남자에게 빠져 깊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렇다. 열정도 사랑도 결국 나를 속이는 환상과 집념인 것이다.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나를 위해 연애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지나치게 나를 속여왔기 때문이다. 나의 20대는, 돌아보면 남들 눈에 옳고, 남들 눈에 괜찮고, 남들 눈에 적당한 그런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온 것 같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일했고, 인정받았지만 그만큼 남들보다 더 많이 울고 후회했다. 모든 것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일까.
만니는 결국 백화점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갔다가 다시 상하이로 돌아온다. 자신을 속이는 열정에 지쳐, 환상을 버리려고 했지만, 결국은 그 환상에 다시 배팅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만니는 예전의 만니가 아니다. 이번에는 '남과 자신을 속이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다시 한번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성공해낸다. 그리고 또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한다. 그런 만니의 도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30대에 나는 어떤 환상을 추구하게 될까, 이번에야말로 나를 속이지 않는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 인생에 힘든 일이 있더라도, 또다시 스스로를 속이게 될지라도, 나 자신과 나의 인생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니와 샤오친, 구자가 그랬던 것처럼 인생의 굴곡에서도 결국 우리는 다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게 될 테니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