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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r 05. 2023

'내가 예민한가?'라는 세상에서 가장 둔한 말

예민한 것이 아니라 둔하다


나는 타고나기를 선생인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잘 들어주는 능력이 있다.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도 혐오감도 내 나름 강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잘 들어주게 된다.(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팔자인 것 같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담가의 역할을 할 때가 많아, 고민이 있으면 들어주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 생각을 전달한다. 나 스스로는 남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런저런 사람들의 고민을 듣는 과정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기도 한다.



많은 사람(당연히 여자들이다)을 겪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내가 예민한가? 너는 어떻게 생각해?>이다. 물어보는 사람 자체가 본인의 감정을 확인받고 싶어서 질문을 했다는 것은 물론 명백하다. 물어보는 본인도 원하는 답을 기대하고 나에게 묻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본인이 스스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할 만큼 그동안 감정에 둔했다는 사실>, 그리고 <본인에게 무례한 사람들의 언행이나 공평하지 못한 처사에 제대로 대응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두 가지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던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잘 맞추어주고 성격이 좋은 것 같지만 그럴수록 그런 특징이 더욱더 두드러진다.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특히 가까운 관계인 친구나 연인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상사 등에게 <일방적으로 수용하거나 회피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소통이 아닌 <받아들임>에 능하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에 차곡히 쌓이고 쌓여 자신을 들어주거나 받아주는 사람에게 갑자기 터지고 과하게 감정적이다.


본인이 가장 인정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관계가 끊어질까 봐>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안전한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이 패턴이다.


그러나 사람 간에는 소통이 필요하고, 할 말을 하는 것은 싸움이 아니라 소통의 한 과정이다. 자기표현은 건강한 삶의 필수적인 도구이다. 그 표현의 정도를 적당하게 <그 즉시, 바로>하면, 삶에서 많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폭식보다 밥을 조금씩 자주 먹는 것이 건강한 식습관인 것처럼 자기표현도 마찬가지다.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착해 보이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표현을 극단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으며 본인이 예민한가?라는 말을 이용하여, 본인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을 감추려고 한다.


그것은 예민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둔한 것이다.


마음속에 본인보다 남의 시선이 우선이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 관계가 끝날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관계라고 할 것도 없는 사이에서조차..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 조차..심지어 성희롱을 당했을때도 말이 안나오는 사람이 많다.)


그러한 본인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인정해야 유아적인 어른의 모습에서 벗어나 성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예민한가?라는 말은 문장 자체가 비문이다. 모든 느낌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고  다 이유가 있다. 본인이 특별히 예민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기표현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이다.


정말로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은 본인이 싫은 것을 하지 않는다. 티를 내고 표현을 해서 결국 원하는 관계만 주변에 남으므로 하소연할 이유가 없으며 욕은 좀 먹지만 좁으면서 양질의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내가 예민한가?라는 생각이 들면 두 가지를 권한다.


1. 비언어적인 표현 먼저 하기: 정색하거나 째려보기 (사실 나는 1번으로 거의 다 해결한다. 쓸 일도 별로 없다.)

2. 목소리 톤을 낮추고 (상대방이) 한 말을 요약해서 되돌려주며 정중하게 의견 묻기.

Ex) 지금 네가 말한 것이 ~~~라는 건데, ~~~ 한 의도가 맞아?

3. 1-2로 해결이 안 되는 매우 화가 나는 상황에서는 '저한테 소리치지 마세요!' 짧고 간결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직장이라면) 원칙대로, (사적인 관계라면) 연락을 즉시 끊는다. 참고로 상대방이 남자일수록 잔소리나, 감정적인 호소는 거의 통하지 않고 짧고 단호한것이 먹힌다.


중요한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대방과 관계가 끊겨도 상관없다는 마음이다. 그것이 자신을 존중하는 정상적인 사람의 기본 마음가짐이다.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가장 두드러지는 지표이며 <특정 관계를 유지하여 사랑이나 관심을 받으려는 유아적인 마음이나 애정결핍>의 발로이다. 


이것을 버리면 삶이 편안해지고 주도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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