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이 Jan 24. 2023

정신병원이 된 학교:MZ세대의 실상

감정이라는 사슬에 묶인 아이들


몇 년 전부터 계속 서랍에만 넣어두다가 이제야 이 주제로 글을 쓴다.


7년 동안 여고에서 여학생들만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물론 아이들이 기특하고 예쁘기도 하지만, 주로 <안타깝다>라는 감정이다.


첫 제자들이 2001년생이고 지금 제자들이 2005년생이다. 요즘 mz세대의 범위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주로 2000년생 이후의 mz세대를 상대하고 있으니 나름 mz세대의 준전문가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영어'라는 교과목만 잘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다. (이것도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막상 교사가 되니, 내가 할 일이 가르침이 아니라, <감정케어+멘털케어>에 훨씬 더 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떨 때는 내가 카운슬러인가 싶기도 하다.


옛날 어른들이 '공부는 좀 못해도, 사람이 되면 된다'라는 말을 종종 하셨는데 그 말의 뜻을 저절로 깨치게 된다.


지금의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사람의 민낯을 드러내게 하는 시스템이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학생의 본분이지만, 우리 교육의 본질은 경쟁이며 아이들은 대학 이름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물론, 아예 공부를 손 놓은 아이들도 그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그래서 공부 좀 한다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년 내내 공부에 집중한다는 것이 보통의 인간이 쉽게 견딜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교사에게도 언제 컴플레인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나도 1년 내내 날이 선 채로 근무하며 늘 긴장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의 가장 흔한 해프닝(?)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1.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여  은따, 왕따를 당하는 경우 (일반적)

2. 친구들과 잘 지냄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에 알 수 없는 부적응을 호소하는 경우

3.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렸다며 거짓(!!)으로 호소하는 경우

4. 문제없이 잘 지내다가 갑자기 교사의 의미 없는 발언이나 행동에 버튼이 눌려, 부모님께 이르고 곡해하는 경우

5. 4번과 같이 평소에 잘 지내던 학생이었으나, 시험문제와 관련되면 억지로 컴플레인을 거는 경우


학교나 남자학교에 비하면 위의 경우는 문제라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여학생들의 일반적인 행동패턴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차라리 남자애들 치고박는 게 훨씬 낫다는 선생님들도 많다.


사실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공부로 압박을 받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내면에 있던 문제가 주로 튀어나오기 때문에 이것이 주변의 친구들 및 교사와 갈등을 만들어낸다.


나의 관찰로는 <가정에서 온전히 수용받지 못한 것>주원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 수용이란,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판단만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마음의 응어리가 생각보다 잘 풀린다. 어떨 때는 그냥 듣기만 하는 게 훨씬 좋다.


예를 들면, '너는 그것밖에 못하냐', '00 대학 가야 한다',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등이 당연히 대표적인 상처 입는 말이고, 생각보다 '나는 너를 믿는다'등의 부모의 신뢰 그 자체가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는 힘든 내색을 안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단순 신뢰나 칭찬이 마음의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갑자기 팍! 급발진을 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성적이 좋거나 적응을 잘하는 학생들은 이 가정에서의 수용이 잘되어있고 안정감이 있다. 본인의 노력도 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안정적이고 공부 자체가 이 친구들에게는 또 버팀목이라 선순환이다. 부모님들도 예외 없이 감정적인 성격이 없었고 가정에서 대화가 많다.


학교에서 위와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의 부모님들은  감정적인 경우가 많고 모든 원인을 학교나 다른 학생으로 돌린다. 그러한 습관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학교에서 결국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게 본인의 일이 되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운 때가 많았다. 그리고 아이 자체에 대해 집중하기보단 본인의 원래 가지고 있던 *억울한 감정, 분노*를 아이가 학교에서 만든 사건을 가지고 해소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부분이 참 흥미롭다고 느껴졌다. 부모의 어떤 무의식이 아이에게 그대로 옮겨가는 과정 같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라, 몇십 번씩 겪다 보니 사람들의 유형이 어느 정도 보이고, 아이를 보니 부모가 보였다. 결국은, 어차피 겪을 수험생활이라면,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대화와 관심이 중요하다. 그러나 보통 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과 하루종일 학교에 있는 아이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것도 쉽지 않다. 담임교사도 수업이 많은 날엔, 애들 얼굴을 못 볼 때도 많다.


공부는 둘째 치고, 본인이 왜 갑자기 억울하고 화가 나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일을 만들고 친구와 싸우고 선생님과 싸우고, 아니면 혼자서 끙끙 앓는 아이들을 수없이 보면서, 같이 싸워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정신병원에 있는 것인지, 학교에 있는지 분간이 안 갈 때도 있다.


요즘 mz세대들은 물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것도 맞다. 확실히 자기표현도, 주관도 뚜렷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공부도 노래도 춤도 만능이다. (요즘 애들은 거의 아이돌같이 춤추고 노래한다) 그러나 그 당당함을 한 꺼풀 벗기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해 두려움에 떠는 나약한 모습이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 자신의 모습도 보았고, 내 부모의 모습도 보았고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어쩌면 경쟁사회가 만들어낸 우리의 모습이 바로 mz세대의 학생들이 아닌가 싶다. 미디어에서 버릇이 없으면서 할말다하고 되바라진 모습(?)으로 희화화가 많이 되곤 하는데 그 모습뒤에는 감정에 많이 서툴고 sns가 더욱 익숙하고, 뭐든지 잘하고 싶지만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당한 가식은 이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