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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May 04. 2023

삶의 투사는 늘 승리한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후기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관에 오래 앉아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보지 못했다. 재개봉했을 때, '이번에는 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또 놓쳐버렸다....웁스....


결국 얼마 전에 갑자기 유튜브로 영화를 급결제하여 혼자 조용히 감상했다. 영화를 보기 전 후기를 보았을 때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상당히 갈린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주로 정신이 없다는 내용)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이야기의 콘셉트 자체가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는 콘셉트이라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이라는 여성이 우유부단한 남편과 엇나가는 자식,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라는 사면초가와 같은 자신의 상황을 극적으로 극복하고 어떻게 행복을 찾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드라마물이 아닌 '다중우주,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1. 삶과 싸우는 여주인공 투사 '에블린'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아무래도 주인공 '에블린'이었다. 에블린은 남자 하나만 보고(?) 미국에 이민을 와 세탁소를 운영하며 삶을 헤쳐나가는 전형적인 이민가정의 어머니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큰일까지 자신이 다 도맡아야 직성이 풀리고, 남을 잘 신뢰하지 못하고, 남편과 자녀에게 잔소리가 심한 그녀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그리고 주변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참..많지 않은가. 삶에 대한 '완벽주의'와 그로 인한 '신경질 적인 모습'은 타인도 힘들지만 자기 자신에게 가장 힘들다. 에블린은 원래 더 멋지게 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삶에 불만족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상징한다.


아! 내가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영어 문법 가정법 아님 주의)


이라는 말과 생각을 나 역시 평소에도 자주 하는 편인데 그녀의 모습에서 그런 후회와 좌절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캐릭터에서 주목할 점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원한 삶이 아닐지라도, 끝까지 싸우고 '고집이 센' 그녀의 모습에서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눈앞에 닥친 상황에 대해서 바로 정면으로 맞서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 상황이 내 맘대로 되지 않더라도 일단 싸우는 자세(실제로 싸운다!)에서 삶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에 싸우고 싸운다는 느낌이 들었고 강한 활기와 생명력이 느껴졌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에블린이 행동할 때마다 모든 영화의 장면은 다채롭게 흘러갔고 그녀의 인생도 계속 재생되었으니 말이다.



지난날이 후회돼도 나는 앞으로 간다!라는 그녀의 태도에서 인생은 역시 '행동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발을 디딘 지구는 행동하는 별이고 삶의 투사에게는 승리만이 있다.





2. 다중우주가 존재해도 모든 삶이 완벽할 수는 없다


에블린은 세무조사를 받으러 가던 도중, 엘리베이터 안에서 또 다른 우주의 다른 '남편'으로부터 멀티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이상한 기기를 착용하게 된다. 그 후로, 또 다른 '남편'과 함께 '버스 점프!(또 다른 우주의 다른 자아의 능력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기술)'를 시도하며 악에 맞서 싸운다.


지금의 우주가 아닌 또 다른 우주에 또 다른 나 자신이 있다는 설정은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요즘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뜨고 있는 만큼, '다중우주', '다른 차원의 나' 등의 개념들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여 꽤 친숙다. 개인적으로도 인간이 인식할 수 없을 뿐이지, '다중우주'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인간이 밝혀내기 어려운 수준이라고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난 거의 믿는ㅋㅋ설명은 생략)



그러나 영화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다중우주' 개념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중우주에서 여러 모습으로 활약하는 에블린의 삶이 모두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에블린은 또 다른 우주에서 각각 요리사, 여배우, 무림의 고수, 핫도그 손을 가진 이상한 외계인 등으로 살고 있었다.)


에블린은 현재의 삶에서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가족들을 원망했지만, 다중우주의 또 다른 그녀는 늘 '혼자'였다. 여러 가지 특수한 기술을 가지고 화려한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아마 늘 허전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화려한 여배우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 오히려 지긋지긋한 지금의 남편에게(그 삶에서는 남편과 어릴 적 헤어졌었으나 여배우가 되고 나서 다시 재회함.) 다시 사랑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그렇게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하지만, 막상 그것을 가지게 되면 다른 것을 열망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타고났다. 다중 우주가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깨닫게 하는 장치로 이용된 것이 몹시 흥미로웠다.


완벽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의 삶도 (나름) 완벽하다.


3. 고통스러운 삶 자체가 결국 의미이다


영화에서 모든 다중우주를 경험하며 자유롭게 포털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인 에블린의 딸 '조이 혹은 조부 투바키'는 '인생은 의미가 없으며 허무하므로' 모든 것을 빨아들일 수 있는 블랙홀인 '검은 베이글'을 만들어 많은 악행 끝에 마침내 자신을 스스로 죽이려고 한다. 너무 많은 삶을 경험했더니 재미가 없더라는 부분이 왠지 가슴에 와닿았다. 인간이란 존재는 항상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다양함을 추구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경험하기를 소망하지만, 모두 경험한 사람은 그것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 너무 웃기지 않은가. 조이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은 있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에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고 늘 삶에 대한 '미련'이 있는 에블린이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본인은 그런 기대조차 없으니깐.




심지어 영화 중간에는 에블린과 조이가 '돌'이 되는 다중우주도 나왔는데, 그 어떤 인간사도 드라마도 없는 허허벌판 속의 자연물 그 자체가 된 둘이서 나누는 대화도 꽤 흥미로웠다. 동시에 '고통에서 멀어지면 행복에서도 멀어진다'는 말도 생각났다. 인생은 희로애락의 연속이지만, 희로애락이 있어 감정이 생기고 행복도 느끼는데, 희로애락이 사라지면 아예 감정이 느낄 일이 사라지니 그것 자체가 허무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돌 장면'에서 조이 역할을 맡은 돌이 허무감에 스스로 굴러 떨어져 자신의 존재를 없애는 모습을 보다 보니, 차라리 돌이 되어도 굴러 떨어질 거면, 인간으로서 적절하게 경험하면서 사는 게 낫지 않은가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고통스럽지만, 그것도 또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영화가 넌지시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그 고통에서 결국 행복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잔잔하게 고통스러운 삶을 격렬하게 싸워서 쟁취해 내려는 에블린의 '투사정신'이 그것을 말해준다.


4. 모든 허물을 덮는 사랑



사실 이 영화의 찐 주인공은 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 인지도 모르겠다. 에블린의 남편은 처음에는 억세고 생활력 강한 아내한테 묻혀가는 전형적인 무능력한 남편인줄 알았는데, 보다보니 이 남자의 친절함과 다정함에 나 역시 동화되어 버렸다. 다정하지만 자신의 가족이 먼저이며 책임감이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 거친 아내의 언행에도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둥글게 받아줄 수 있는 그릇이 넓은 남자. 그는 '사랑'이 무엇인줄 아는 사람이며, 우유부단하고 물러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생존력이 강한 사람이다.


영화 말미에 그는 "싸우려고 하지말고 모두들 좀 더 친절해져달라."고 호소하고, 에블린에게 "당신과 아버지는 내가 너무 착하고 무르다고 하였지만, 나 역시 투사이며 이 방식으로 살아남아왔다."고 말한다.


착하면 생존력이 약하고 의존적이라는 기존의 편견을 깨고, 착하고 다정한 것도 '무기'일 수 있다는 시각이 새로웠다. 사람이 살다보면 '에블린'처럼 성격이 변하기가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다정하기가 힘들고 히스테릭해지기가 일쑤이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할 수 있는 것은 마음 속에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모든 감정 중에서도 가장 범위가 넓으며 힘이 세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싸우고, 자신과 싸우기 보다는 포용하고 사랑하는 그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삶과 투쟁하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여자 '에블린'과, 그러한 그녀를 사랑하며 역시 삶을 포기하지 않는 남자 '웨이먼드',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며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딸인 '조이'는 모두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복잡하고 모순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을 통해 과연 나는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으며,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투쟁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즐거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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