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2018년, 어느 날의 편지

by 클로이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2년이나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변하고도 더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엄마에게 편지 한 통 쓰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계신 납골당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차가운 납골당의 공기를 마시면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 두려운 마음에 그랬습니다. 10년이 더 지났는데도 참 이상하지요.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아득한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엄마의 얼굴, 목소리를 떠올리다가 결국에는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만큼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서도 뚜렷한 것은 있습니다. 하나, 그 뚜렷한 기억들이 저를 괴롭게 합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행복한 모습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안 좋은 기억들만 파편처럼 남아 가슴에 꽂혀있는 느낌입니다. 가끔, 거리에 지나가는 중년의 여자들을 보면 엄마를 떠올립니다. 엄마가 살아서, 웃고 울고 떠들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엄마에게는 살아있어도 힘든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엄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같이 알게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도 행복할 때면 엄마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동시에 너무도 행복할 때면 엄마가 옆에 없다는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행복을 가장 나누고 싶은 사람이 옆에 없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사람들은 알까요. 그래서 어떨 때는 오히려 행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무 행복하면 엄마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엄마는 죽었는데. 그래서 행복은 항상 반만 느끼려고 합니다. 아마도 슬픔이 더 익숙하게 되었다 봅니다. 엄마의 옆에 항상 따라다니던 그 슬픔이 아직도 제 안에 있습니다. 알고 계시겠지요. 엄마가 살아생전 느꼈던 그 감정들을, 지금은 제가 대신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더욱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겠지요.


그래서 두렵습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일이, 제게는, 엄마와 더 가까워지는 일이라 무섭습니다. 내 곁에는 엄마가 더 이상 없을 텐데 나만 홀로 남아 묵묵히 슬픔을 받아들여야겠지요.

너무 슬픈 얘기만 한 것 같습니다. 좋은 얘기도 해드리고 싶어요. 엄마가 죽고 나서부터는 엄마는 제 마음속의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힘들 때마다 엄마를 떠올리면 되니까요. 엄마를 신처럼 여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면역이 생겼습니다. 살아가는 일들에, 특히 힘든 일에 강한 내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나이가 많진 않지만, 저는 제 자신이 산전수전 다 겪은 노파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또래에 비해 성숙하고 초연하지요. 하지만 그런 제 자신이 싫지는 않습니다. 얼굴은 아직 앳되지만, 마음만은 어떤 힘든 역경도 이겨낼 자신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엄마. 이런 강한 마음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혼자서 제대로 살아나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여러 가지 사건이 많습니다. 아이들끼리의 갈등도 있고, 아이들과 선생님 간의 갈등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무엇이든지 학교에서 일어납니다. 아이들의 어머니도 다양합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훌륭하시지만, 아이를 방치하는 엄마도, 엄마가 없는 아이도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이혼하신 아이와 상담을 하다가 펑펑 울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울다니, 정말 꼴사납지요. 그 아이는 어릴 적에 헤어진 어머니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원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머니를 여전히 사랑하는 아이의 모습이 애달파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어찌 되었든, 자식은 부모를,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처럼 가슴에 어머니를 만날 수 없는 슬픔을 묻고 사는 아이의 모습이 가여웠습니다. 사실은 아이보다 제 자신이 더욱 불쌍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셔 영원히 만날 수 없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울다가 도리어 학생에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못난 선생인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엄마를 그리워한다고 말하지만, 엄마보다 더 행복해서 죄책감이 든다고 말하지만, 나는 괜찮은 줄 알았지만, 나도 아직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딸은 엄마가 항상 필요합니다.


엄마와 딸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같이 수다를 떨고, 장을 보기도 하고, 목욕탕을 가기도 하고, 요즘에는 엄마와 딸, 단 둘이서 여행을 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부러운 일입니다. 딸과 엄마는 서로 자식과 부모이자 친구보다 더 가까운 친구입니다. 남에게는 못할 얘기도 엄마에게는 다 할 수 있지요. 그런 감정의 나눔이 저에게는 가장, 필요한 건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저의 이런 얘기를 할 수 없어 이렇게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니까요. 물론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딸들도 많습니다.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책 제목도 있더군요. 그만큼 엄마와 딸은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감정의 갈등을 겪는 거겠지요. 저에게는, 그런 엄마와의 갈등조차도 부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엄마와 이런저런 것을 같이 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참 좋아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대신에 나중에 겪게 될 슬픈 이별을 미리 겪었다고 생각해봅니다.


엄마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지금껏 스스로의 엄마가 되어 살아온 것 같습니다. 엄마도 아시다시피, 모든 걸 혼자서 다 해왔습니다. 덕분에 아주 독립적이지만 외롭습니다. 앞으로도 외롭겠지요. 이런 외로운 마음을 엄마에게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저를 외롭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제 자신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나 혼자이다, 라는 생각으로 계속 살아왔으니까요. 저도 지금의 나이만큼 또 나이가 들면, 그때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요. 그때는 저도 가족이 있을까요. 가족이 생겨서 더 소중한 것이 마음속에 있으면, 엄마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될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제 인생에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남들보다 훨씬 미성숙한 건지도 모릅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감정적인 두려움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엄마, 제 인생에 이제 ‘엄마’라고 소리 내어 부를 일은 없지만, 이렇게 글을 쓰니 참 좋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엄마에게 편지를 쓰게 될까요. 부칠 주소는 없지만, 엄마가 이 글을 읽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실은 제 일거수일투족을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와 저, 남동생이 엄마의 기일에 작은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올립니다. 알고 계시지요. 12년째 제사를 치르다 보니, 오히려 실감이 나지를 않습니다. 엄마는 또 왜 하필, 추석 전날에 돌아가셨을까요. 추석이 되면 엄마의 기일이기 때문에 명절 같은 느낌이 덜합니다. 엄마가 빠진 우리 세 식구가 그대로 잘 버티고 있구나,를 확인하는 시간 같은 것이지요.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동생과 제가 단둘이 제사를 지낼 생각을 하니 참으로 쓸쓸합니다. 그게 또 살아가는 과정이겠지요. 그래도 우리 세 가족은 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퍼즐 조각이 모자란 퍼즐이라도 나름 제 역할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 생각보다는 훨씬 잘 살아냈습니다.


내년이면 저도 벌써 스물일곱입니다. 아직 젊지만, 이제 슬슬 어른이 될 나이인 것 같습니다. 엄마 없는 딸에서 벗어나, 조금 더 성숙해지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엄마가 제게 주신 이 슬픔도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언제까지나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아이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엄마. 제 삶의 한 단계, 한 단계에는 항상 엄마를 기억할 것입니다. 엄마가 제게 가르쳐 주신 삶과 죽음을 마음에 품고 더 열심히 살 것입니다. 세상에, 엄마가 없는 슬픔보다 더 큰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 슬픔을 가지고 행복할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이제는 그게 저의 숙제입니다. 엄마, 지켜봐 주세요. 제 인생이, 제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항상 엄마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게요.


미리 하늘에 가 계시니, 저를 위해 기다려주세요. 언젠가 꼭 만나겠지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저를 낳아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