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함께 블루스를

지나고 알게 된 마음의 병

by 클로이


지난 2019년, 2020년은 내면적으로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날들이었다. 마침 2020년 초에 터진 코로나와 쓰라린 배신과 맞물려, 나는 작은 원룸 안에서 내 안의 어둠과 대면해야 했다.


인생에게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은 기분, 나는 어릴 때의 역경을 겪고 나서 어느 정도 보상심리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고생을 했으니 이 정도는 행복해야 해.

아니, 그런 것은 없었다.. 첩첩산중,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가도 가도 나에게는 불행뿐이구나. 나라는 사람은 마음고생만 하다가 죽는 거구나. 이런 생각들이 수시로 떠올랐다.


그렇게까지 마음이 약해진 것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죽었을 때는 오기로라도 살고 싶었다. 엄마를 위해서..


하지만 그때는 그냥 모든 것을 다 놓고 홀로 떠나고만 싶었다. 노력이라는 것이 소용이 없고 포기만이 정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왜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없고,

나쁜 인연들만 있어서 나를 괴롭히는지.

내가 문제가 있구나.


알코올 중독인 무능력한 아버지, 일찍 돌아가신 엄마라는 부모복이 없는 것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기본이었고 그때는 내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직장동료와 친구들, 스쳐가는 남자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사귀던 남자가 뒤통수를 때린 것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오래 사귄 것도 아니지만,

나는 아, 이제 정말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질리고 싫었다. 마음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고 원래부터 사람들에게 속 얘기를 잘하지도 않는 나였다. 나도 힘든데,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의지하려는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모두가 미웠다.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이용하려 하지 않고, 진심인 사람이 지금 어딘가에 있다면.


그때쯤에는 아이들 틈에 섞여있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니깐,

아니면 남동생과 함께 있는 것이 위안을 주었다. 그래, 나에게도 가족이 있었지. 하면서.


그만큼 나는 많이 약해져 있었다. 마음에 병이 든 것이다. 코로나로 여행을 가지 못하고 활동 반경이 좁아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


본능적으로 살려고 그랬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고독한 섬에서 혼자 마시고 먹고, 자고 그러고 사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마음을 닫으면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그때부터 마음공부를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블로그 글이나 영상을 보고 울다가 공부하다가 반복했다. 마음이 아픈데 어떻게 공부를 해서 고치겠는가?


그러다가 밤에는 엄마를 외치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마치 어린 시절처럼,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엄마의 품을 그리며.. 왜 이런 세상에 나를 두고 갔느냐고 외쳤다. 결국에는 나는 결정적일 때 마음의 디딤돌이 없다는게 문제였다.



당연히 그런 것으로는 되지 않았다. 마음이 아픈 것에는 다른 약이 없었다. 아픈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밖에.


나는 약 1년반동안 운동에 집중하고 인간관계를 최소화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원래도 나에게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잘없어서 크게 어려울건 없었다. 일과 운동, 마음공부 세가지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내면적 위기에서 벗어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특정 사람들이 싫은 것과 이성관계에 있어서는 마음을 닫은 것은 여전하지만,


그때와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런 시간들을 견뎌준 내 자신에게 고맙다.


너, 고생했다고.

나는 니가 1순위고, 니 마음이 우선이라고.

너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이제 신경쓰지말자고.

말해주고 싶다.


수고했어. 이제는 너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