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또 글을 쓸 예정이지만, 나는 교사를 크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직업이기에,
다시 돌아간다면 진심으로 다른 직업을 택할 것이다.
(나는 내 생각에 강사가 더 잘 맞는 성향이다, 지금도 인기 강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선생님이 되고 '교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라고 느낀 순간들은 모두 아이들과 상담을 하던 때였다.
사람을 크게 좋아하지도 않고 방어적인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여는 것이 학생들이다.
참 신기하게도..
내가 아이들을 상담한 게 아니라,
결국 끝에는 아이들이 나를 상담했다.
아이들이 나를 치유하고 내 거울이 되어,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 모든 순간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처음 담임교사가 되어 상담을 한 것은, 우리 반의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2명의 학생들이었다. 둘은 각각 다른 이유로 학급에서 힘들어했다. (학생들을 각각 ABC순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1. A는 중학교 때까지 활발하게 지내다가, 고등학교가 되어서 무리가 바뀌고 적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아이들이 자신을 미워하는 건 아닌지 항상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실은 아무도 A에게 관심이 없었고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문제가 없는데 문제를 만든 셈이다. 자꾸만 위축되는 자기 자신에 A는 어쩔 줄을 몰랐다.
상담을 하던 중, A의 어머니 얘기가 나왔다. A의 어머니는 교사였고, 많이 바쁘신 분이었다. 게다가 외동에다가, 아버지도 바쁘신 듯해 보였다. A가 눈물을 터뜨렸다. 형제자매도 없는데 부모님이 바쁘니, 문제없는 화목한 가정이라도 사랑이 부족하다 느낀 것이다. 결국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필요한 A 였다. A에게 어머니가 바쁘더라도 A를 생각하고 있다고 너는 사랑받는 아이라고 말해주었다. A는 상담 뒤에 얼굴이 부쩍 밝아졌다.
2. B는 반 아이들이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악의는 없는데 눈치는 없고, 엉뚱하고,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학생들이 전형적으로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B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사실 나도 이해가 되었다. 그만큼 단체생활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 B는 사실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하셨다. 겉은 엉뚱해 보이지만, 속은 진지하다. 이혼한 아버지는 새 여자 친구가 생겼고 복잡한 마음이다. 어릴 때 이혼한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B에게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를 위로하려고 했는데 너무 눈물이 났다.
너무 울다가 나중에는 학생에게 위로를 받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B와 나 사이에 작은 공간을 만들고, 치유를 일으켰다.
우리 둘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슴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다음 해에는 더욱 마음이 힘든 학생들이(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우리 반이 되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만.
3. C는 중학교 때 이미 여러 번 자해 시도를 했다. 관심군 학생으로 선정되어, 처음부터 마음이 쓰였다. 부모님까지 학교에 오시고, 여러 차례 상담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물 줄을 몰랐다. 원인은 엄마와의 의사소통이었다. C의 어머니와 C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사정으로 아팠으며 아픈 딸을 보듬어 줄 상황이 못되었다. 그런 C는 엄마가 더 아플까 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고, 공감받지 못했고, 자신이 버려졌다고 느낀 것 같았다. 교우관계에서도 당연히 문제가 있었다. C가 자꾸 죽으려 할까 봐 나도 겁이 났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죽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저 사랑이 필요할 뿐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애를 붙잡고 이야기를 했고, 조금이라도 감정 표현을 하도록 말을 붙였다.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일 년이 지난 후 정말 밝아졌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지금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학교 다니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그거면 되었다.
4. D는 우리 반 우등생이었다. 그런 D가 마음의 상처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습적으로 자해도 하는 듯했다. 항상 억지로 웃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마음의 병이 깊었다. 상담을 하면 눈물만 줄줄줄 흘렸다. 원인은 당연히 부모님과의 관계이고 이번에는 아버지였다. 장녀로서,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아버지의 기대에 많이 지쳐있었다. 게다가 중학교 때 반복된 서로 따돌리고 따돌림을 받은 경험은 D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런 D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다가 상처가 곪은 내 이야기를. D는 처음에는 놀란 듯했지만 이내 바로 이해했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진심으로 이야기하다가 나도 많이 울었다. 그 후로도 상담을 하다가 많이 울더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여러 가지로 활발하게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는 듯하다. D가 괜찮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찮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아픈 이유는 거의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감받지 못하고 진짜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해서이다. 아픈 이유를 알아주면, 아픈 마음은 사라진다. 그것을 솔직하게 소통하지 못해서 문제가 커진다.
쉽지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우습게도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결국에는 아이들과의 상담이라는 것도, 아이들을 통해서 내가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결과적으로는 이기적인(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행위가 되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아픈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그 사람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도, 비단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가 친하게 지내고 소통하는 그 모든 행동이 결국엔 나와 관련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되어있는 구조이다.
우리의 마음이 모순덩어리이다.
그래서 넓게 보면, 세상에는 내가 아닌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경험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와 상담했던 우리 반 아이들이 부디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