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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클라우드 Jan 04. 2021

신혼 2개월차, 똥퍼 남편  

아내 허락 맡고 올리는 생생체험기

1. 폭풍전야 (진돗개 셋)

 

깨소금 볶는 신혼생활 2개월 차, 아내와 나는 아늑한 주말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7평 남짓한 작은 집 안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떠다녔고, 향긋한 캔들 내음새를 맡고있자니 마음이 절로 평안해지는 여유로운 토요일 밤이었다.


 노트북 화면에 빠져있던 터라 시간이 꽤나 지난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간 지 10분이 넘은 것 같은데 인기척이 없었다.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는 실례는 굳이 신혼부부가 아니어도 범하지 않을 터. '때가 되면 나오겠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2. 경계태세 강화(진돗개 둘)


 어라?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슬슬 증폭되는 불안감. 배가 아픈가? 대변이 잘 안 나오나? 설마 잠든 것은 아니겠지.. 그 때 벽 너머 화장실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남편아.." 


 '다행이다. 일단 잠든 것은 아니네. 그런데 목소리가 약간 이상한데..?'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억양, 톤, 세기 모든 부분에서 낯선 파동이 느껴진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남편아..(3초 쉬고) 변기가 막혔어."

 괜찮다. 언젠가는 마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조금 빨리 온 것일 뿐이다.

 "그래~? 괜찮아 자기야. 내가 변기 뚫어줄게!"  전투태세 완료.



3. 즉각 출동(진돗개 하나)


 "아니야!! 일단 아직 들어오지마. 들어오면 안 돼. 진짜야. 들어오지마."

 "자기야~ 내가 군대에서 뚫어뻥 기계었어. 괜찮아~" (도서관리담당이라 훈련소 이후로 뚫어뻥 써본 적 없다)

그렇게 1년 같은 10분이 흐르고.."하.. 진짜..미안해.. 잠깐 들어올 수 있어?"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절대 표정을 찡그려서는 안 된다. 아무렇지 않은 말투와 평온한 얼굴을 유지해야 한다. 변기도 뚫고, 아내의 놀란 마음도 어루만져줄 수만 있다면야 이쯤이야 견딜 수 있지! 정신 교육 완료.


 너무 쉽게 생각한 걸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놈은 어마무시한 녀석이었다. 전날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오늘 아침 겸 점심을 생각해보았다. 행복했던 만찬들이 괴물을 낳았군. 


 츄악. 촤아악. 각양각색의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갈색 빛깔의 물이 뚫어뻥 펌프질에 맞춰 변기 밖으로 밀려나온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아내는 변기를 향해 계속해서 샤워헤드 물줄기를 지원해준다. 나의 발 밑으로 한쪽에서 온 깨끗한 물과, 다른 쪽에서 흘러내려온 혼합물이 서로 뒤섞인다. 내 마음도 걱정인지,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들이 마구 뒤엉키는 기분이다. 



4. 끝없는 교전


전투 20분째, 굳게 막힌 변기구멍은 여전히 함락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투 30분째, 기어이 뚫어뻥이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새로운 무기를 구입하러 집 앞 마트로 뛰어간다. 집으로 오는 길, 괜히 사람들이 나를 똥 싼 녀석이라고 보는 것 같아 잠바로 뚫어뻥을 감싼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전투 50분째, 새로운 무기도 무용지물인 듯 하다. 이미 갈색 빛은 제 빛을 찾은 지 오래. 건더기들은 어디로 갔는지, 패잔병들만 남아 '긴박한 전투가 있었노라' 이야기해주고 있다.

전투 60분째, "남편아 정말 미안해.."  "제발...제발!!!!!" 서로 같은 말만 반복한다. 이 전투의 끝은 있는 것일까. 처음 들어올 때는 10분 아니 5분 안에 승전보를 울리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찌 장기전이 될 것 같다.

전투 120분째, 마지막 무기를 찾아 나선다. 이번 전투에서 패배하면 전문 용병을 부를 수 밖에 없다. 마지막 무기는 바로 '패트병'  "이게 된다고? 이걸 어떻게.. 설마..?" "패트병이 최고래.." 



5. 124분만의 승리, 아내의 자랑스러운 똥퍼 남편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후각과 시각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한다. 장엄한 표정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마지막 무기를 집어든다. 물 속으로 손과 무기가 함께 들어간다. 

"풍덩. 풍덩. 퍽, 퍽" 이제 정말 이판사판이야. 여기서 지면 나 오늘 잠 못 잔다! 그렇게 3분..


"꾸꿍꿍꿍" 간절히 바라던 그 소리. 우리 모두 염원했던 그 소리와 함께 두 시간 넘게 자리를 지키던 혼합물이 내려갔다. 전쟁 발발 124분만의 기록한 첫 승리로 나의 똥퍼 데뷔전은 막을 내렸다.


 "남편아 고마워..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거지.?" 

"아니야.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괜찮아 자기야!!"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아내는 미소를 되찾았고, 나는 밝아진 아내의 표정을 보며 승리를 만끽했다.

이후 우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전장터를 복구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화장실 대청소를 진행했으며 그 후로 자주 화장실 가기, 휴지 변기에 많이 넣지 않기 캠페인을 실천하고 있다.


신혼 2개월 차, 나는 전쟁에서 승리했고, 아내의 자랑스러운 똥퍼 남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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