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허락 맡고 올리는 생생체험기
깨소금 볶는 신혼생활 2개월 차, 아내와 나는 아늑한 주말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7평 남짓한 작은 집 안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떠다녔고, 향긋한 캔들 내음새를 맡고있자니 마음이 절로 평안해지는 여유로운 토요일 밤이었다.
노트북 화면에 빠져있던 터라 시간이 꽤나 지난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간 지 10분이 넘은 것 같은데 인기척이 없었다.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는 실례는 굳이 신혼부부가 아니어도 범하지 않을 터. '때가 되면 나오겠지.'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라?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슬슬 증폭되는 불안감. 배가 아픈가? 대변이 잘 안 나오나? 설마 잠든 것은 아니겠지.. 그 때 벽 너머 화장실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남편아.."
'다행이다. 일단 잠든 것은 아니네. 그런데 목소리가 약간 이상한데..?'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억양, 톤, 세기 모든 부분에서 낯선 파동이 느껴진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남편아..(3초 쉬고) 변기가 막혔어."
괜찮다. 언젠가는 마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조금 빨리 온 것일 뿐이다.
"그래~? 괜찮아 자기야. 내가 변기 뚫어줄게!" 전투태세 완료.
"아니야!! 일단 아직 들어오지마. 들어오면 안 돼. 진짜야. 들어오지마."
"자기야~ 내가 군대에서 뚫어뻥 기계었어. 괜찮아~" (도서관리담당이라 훈련소 이후로 뚫어뻥 써본 적 없다)
그렇게 1년 같은 10분이 흐르고.."하.. 진짜..미안해.. 잠깐 들어올 수 있어?"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전략을 잘 짜야 한다. 절대 표정을 찡그려서는 안 된다. 아무렇지 않은 말투와 평온한 얼굴을 유지해야 한다. 변기도 뚫고, 아내의 놀란 마음도 어루만져줄 수만 있다면야 이쯤이야 견딜 수 있지! 정신 교육 완료.
너무 쉽게 생각한 걸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놈은 어마무시한 녀석이었다. 전날 크리스마스 저녁식사, 오늘 아침 겸 점심을 생각해보았다. 행복했던 만찬들이 괴물을 낳았군.
츄악. 촤아악. 각양각색의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갈색 빛깔의 물이 뚫어뻥 펌프질에 맞춰 변기 밖으로 밀려나온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아내는 변기를 향해 계속해서 샤워헤드 물줄기를 지원해준다. 나의 발 밑으로 한쪽에서 온 깨끗한 물과, 다른 쪽에서 흘러내려온 혼합물이 서로 뒤섞인다. 내 마음도 걱정인지,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들이 마구 뒤엉키는 기분이다.
전투 20분째, 굳게 막힌 변기구멍은 여전히 함락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투 30분째, 기어이 뚫어뻥이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새로운 무기를 구입하러 집 앞 마트로 뛰어간다. 집으로 오는 길, 괜히 사람들이 나를 똥 싼 녀석이라고 보는 것 같아 잠바로 뚫어뻥을 감싼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전투 50분째, 새로운 무기도 무용지물인 듯 하다. 이미 갈색 빛은 제 빛을 찾은 지 오래. 건더기들은 어디로 갔는지, 패잔병들만 남아 '긴박한 전투가 있었노라' 이야기해주고 있다.
전투 60분째, "남편아 정말 미안해.." "제발...제발!!!!!" 서로 같은 말만 반복한다. 이 전투의 끝은 있는 것일까. 처음 들어올 때는 10분 아니 5분 안에 승전보를 울리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찌 장기전이 될 것 같다.
전투 120분째, 마지막 무기를 찾아 나선다. 이번 전투에서 패배하면 전문 용병을 부를 수 밖에 없다. 마지막 무기는 바로 '패트병' "이게 된다고? 이걸 어떻게.. 설마..?" "패트병이 최고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후각과 시각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한다. 장엄한 표정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마지막 무기를 집어든다. 물 속으로 손과 무기가 함께 들어간다.
"풍덩. 풍덩. 퍽, 퍽" 이제 정말 이판사판이야. 여기서 지면 나 오늘 잠 못 잔다! 그렇게 3분..
"꾸꿍꿍꿍" 간절히 바라던 그 소리. 우리 모두 염원했던 그 소리와 함께 두 시간 넘게 자리를 지키던 혼합물이 내려갔다. 전쟁 발발 124분만의 기록한 첫 승리로 나의 똥퍼 데뷔전은 막을 내렸다.
"남편아 고마워..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거지.?"
"아니야.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괜찮아 자기야!!"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아내는 미소를 되찾았고, 나는 밝아진 아내의 표정을 보며 승리를 만끽했다.
이후 우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전장터를 복구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화장실 대청소를 진행했으며 그 후로 자주 화장실 가기, 휴지 변기에 많이 넣지 않기 캠페인을 실천하고 있다.
신혼 2개월 차, 나는 전쟁에서 승리했고, 아내의 자랑스러운 똥퍼 남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