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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클라우드 Jan 12. 2021

'꼼꼼이' 에게 받은 편지

선생님의 존재와 역할

  통지표를 나누어 줄 때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들과의 일 년 여정이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음을 뜻한다. 평년 같으면 다가올 종업식을 기다리며 '진도도 다 나갔겠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드게임, 초성게임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예기치 못한 코로나 19로 인해 시시각각 학교 상황은 변해갔다. 지난달 경기도 모든 학교가 원격 수업으로 전환됨에 따라, 자연스레 다가올 종업식 또한 비대면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뜻하지 않은 아이들과의 생이별? 에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몇몇 아이들에게라도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다.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서 아이가 교실에서 직접 통지표를 수령해가도 된다는 학교 지침이 내려온 것이었다.


  오후 3시, 약속한 시간에 맞춰 00 이가 교실로 찾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통지표를 나누어주며 덕담 한 마디라도 건네주려 하는데, 00 이가 앞으로 맨 크로스백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아직 저경력이지만, 교사만의 촉이랄까? 
 나는 단번에 그것이 '편지'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실 가방 지퍼를 열기 전부터  '선생님께 편지를 썼어요!'라는 말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00 이의 얼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게 뭐야?" 시치미를 떼며 물으면서도 내 입꼬리는 씰룩씰룩 춤을 추고 있었다.


"선생님, 이건 제 마음입니다. 일 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


쑥스러워하며 00 이는 내게 작은 편지 봉투를 건넸다.


"선생님에게 편지 써 줘서 고마워 00 야. 선생님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어쩌지.. 미안해. 대신, 선생님이 
편지 읽고 꼭 답장 줄게!"


 아이가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 조심스럽게 편지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에는 반듯하게 접힌 두 장의 편지지가 들어 있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천천히 글을 읽어나갔다.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수업 시간 때면 늘 똘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00 이. 자리 정돈도, 숙제도 꼼꼼히 해내는 모습을 보고 '꼼꼼아~'라고 불러주곤 했는데 편지 속 '보내는 사람'을 보니 다행히도 별명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꼼꼼이는 평소 내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편지 속에 모두 털어놓은 듯했다.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제법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4학년 아이가 이렇게 또박또박 편지를 잘 쓰다니! ' 꽤나 흥미로워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편지를 받고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뻔하디 뻔한 반응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고마운 마음, 아쉬운 마음, 미안한 마음, 그리고 행복한 마음까지.. 마음 속 여러 감정들이 서로 "내가 먼저 다뤄져야 해!" 외치는데, 어떠한 것도 우선이 될 수 없었다.


'다정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주어서 고맙고

선생님도 너희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지 못해서 아쉬워.

나로 인해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면 미안하고,

나의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기억해주고

무엇보다 선생님을 생각해주면서 편지를 써줘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


 꼼꼼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지난 일년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내뱉은 사소한 말 한 마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했고, 발표 못 한 것이 속상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드니 한없이 미안해졌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마음을 추스르고, 답장을 꼭 써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카오톡을 열었다. 한참을 고민하며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주고 싶은 말들을 정성스레 작성했다. 그리고 다행히, 나의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다.



  꼼꼼이에게 받은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나의 역할, 선생님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본다면 나의 따뜻한 말, 격려의 제스처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모든 것이 내 '의지'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버거운 마음이 들면서도, 가능성으로부터 오는 설렘 또한 느껴진다. 앞으로 치열하게 나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고민 또 고민해봐야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그날까지.


 P.S 꼼꼼아. 선생님도 2020년의 꼼꼼이 평생 잊지 않을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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