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6 두두학당 글쓰기 워크숍 중 작성
최근 한 사람에게 온실의 화초처럼 컸냐는 말을 들었다. 온실의 화초, 나이는 서른, 직업은 없고 부모님과 함께 산다. 그간 모래알만큼 모은 돈을 조금씩 파먹으면서 산다. 그 말에 자존심은 상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서 화가 났던 마음이 금방 사그라졌다.
온실은 이곳저곳에 있다. 그중에서도 삶의 대부분은 경기도 광명시 광명 1동의 작은 반지하 집, 그 방 안에서 보냈다. 지금은 개발 단지로 묶여 허물어진지 오래라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창문을 열면 보이는 기울어진 길이 특징인 곳이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단골 수퍼가 나오고, 거기서 왼쪽으로 몇 블록 걷다보면 낡은 비디오 가게가 나온다. 침대 위, 빌린 비디오테이프의 푸른 빛, 쌀쌀하고 건조한 밤공기는 친근하다. 지금도 그때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말수가 줄고 잠잠해진다.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화초도 얕은 상처쯤은 있다. 잡풀만큼 여러 사람에게 짓밟혀가며 살아남기 위해 애써본 적이 없는, 보호받으면서 길러진 주제이니 억센 잡풀에게 내세울 영웅담은 없어 초라하지만.
나는 단지 돌봐주던 주인이 어느 날 사라질 게 두려웠다. 어느 날은 돌아오지 않아 슬펐고, 그가 언제 돌아올지 혹은 돌아오지 않을지 오랜 시간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또 어느 날은 갑자기 돌아온 주인이 그 사이 주지 못했던 물을 한꺼번에 부어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가장 아픈 건 이러나저러나 주인이 옆에 있으면 싫으면서 좋은 내 감정, 감정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