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발견

2023.05.26 두두학당 글쓰기 워크숍 중 작성

by 쌀닭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시는 담대님이 길고양이를 입양했다고 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자기 공간을 줄이는 대신 고양이 자리를 만들어주는군. 그런 자세가 사랑이겠지? 고양이는 아니지만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해야지.’였고, 하나는 ‘굳이 집 안에 들여놔야 할까? 역시 상대에게 점점 더 많은 걸 바라게 되는 게 인간적인 사랑의 문제다. 주의해야지.’였다.


난 서로 감정적으로 의존하는 관계가 불편하다. 누군가가 의지해오는 것도 불편하지만, 의지하려는 내 자신이 느껴질 때가 가장 불편하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사물이건, 신이 아닌 대상을 통해서 (특히) 정서적인 위로와 기쁨을 얻으려는 시도 자체가 죄라고 오랫동안 믿어 와서 관계를 맺는 게 즐겁다가도 그 즐거움을 마냥 반길 수 없었다.


관계는 맺되 기대는 금물!


삶의 제 1원칙은 신보다 사람에게 감정이 휩쓸리고 자꾸만 그 이상을 바라는 습성을 절제하고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대한 이해가 시간에 흘러감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상한 금욕주의에 빠져 옷을 한 벌만 고집스럽게 입고 다니거나, 밥을 한 끼만 먹고 오랫동안 씻지 않기도 하고, 관계에 중독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스로에게 일말의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아서 작정하고 끊어낸 시기도 있었던 반면 그와 정반대의 행동을 했던 때도 있었다. 더 많이 먹고, 더 자주 만나고.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학창시절에는 위와 같이 이짓저짓 한 까닭에 친구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 없어 외로운 것이 문제가 아니고, 친구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려는 욕구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 온 정신이 거기에 팔려 심리적인 타격은 크게 없었다. 별 반응이 없으니 신체적인 괴롭힘 또한 아주 잠깐 있다 사라졌다. 이 경우에는 왕따를 당했다기보다 그냥 어울리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지 않나 싶다.


두두학당은 건강한 경계와 정서적인 공감에 대해 깨닫기 위해, 거의 처음으로 자진해서 또래관계 자체를 목적으로 신청했다. 그 외의 이유도 여러 가지 있지만, 어쨌건 나는 나를 상대로 실험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의 관계를 기대하고 포기할 수 있을지, 그때마다 마음속의 감정을 얼마나 제어하고 신에게 흘려보낼 수 있을지, ‘나’의 고집을 버리지 못해 생기는 이기심을 얼마나 덜어낼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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