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신을 안 건 열두 살 때였다. 외로웠던 난 방과 후 우연히 들어간 한 교회에서 예수라는 인물을 듣게 되었다.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아들, 그 죄를 대신 씻기 위한 속죄물로써 피 흘린 어린 양, 인류가 죄로부터 자유로워져 의롭게 변할 수 있다는 걸 죽음 후의 부활로 증명한 메시아. 그 이야기가 내게는 너무 강렬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날 그곳에서 그 이야기를 전한 선생님과 나는 마주보고 있었고, 해가 질 무렵 노을빛에 방 안 전체가 붉게 물들어있었다는 인상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날 이후 어떻게 예수처럼 죽을 수 있을지 고민이 생겼었다. 세상에 그런 사랑을 실천하다 간 사람은 그 사람 하나뿐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죄 없이 깨끗하게 살 수 있을지. 사랑하고 싶지만 밉기도 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 그만큼 완전하고 올바른 사랑을 과연 나는 받을 자격이 있는지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웃긴 건 그 선생님이 내게 기도문을 외우라고 강요했다는 이유로 어느 교회에 소속되려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외골수에 반골기질까지 타고나 자기 기준에 이해가 안 되는 걸 조금이라도 요구받는 게 어지간히 싫었나보다. 어렸던 나는.
가끔 내 신앙에 호기심을 갖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대답은 달랐다. 믿음이라는 건 기대 외로 벼락을 맞듯이 한 번 세게 관통된 뒤에 저절로 샘솟는 힘은 아니었다. 또 기본교리와 같은 정보가 아닌, 신앙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속 깊은 질문은 그때그때 깨달은 정도까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다른지를 아는데 어떻게 신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확신에 차서 함부로 말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래서 종교를 주제로 한 대화는 되도록 먼저 시작하지 않았고 말을 아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다지 편하지는 않다. 이상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불안하고 화가 나지만 믿음의 계기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말을 시작한 김에 끝은 내야겠지. 어쩌면 하나님께선 내가 타인 앞에서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길 바라셔서 이 시간을 허락하신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아무튼 내 신앙생활은 처음에는 어떤 숭고함이랄지, 기분 좋은 충격으로 시작됐지만 그 후로는 마치 장애물 많은 장거리 연애처럼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이길 저길 그렇게 흩어지던 믿음이 전환점을 맞은 건 몇 년 전, 엄마의 옷을 갈아입히던 중이었다.
다정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여전히 표정과 말투와 몸짓이 반사적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게 작은 고민이지만 이 일을 겪기 전 그 당시에는 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 치밀었고 화가 나는 나한테 질렸었다. 사람은 취하면 맨정신에 못하던 걸 한다던데. 그는 어떤 날에는 어린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겨우 방 안으로 데려와 ‘이제 그만하고 얌전히 누워서 자 제발!’ 외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나는 대신 그의 옷을 거칠게 벗겼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그의 몸이 떨렸다. 제 발이 저렸던 난 급하게 다른 옷을 꺼내 입히다 순간 그의 움푹 패인 눈과 마주쳤다. 마주하기 괴로울 정도로 지친 눈이었다.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 눈을 바라보다 이 사람도 나처럼 괴롭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외롭고 곁이 허전해서 오랫동안 방법을 찾아 헤맸다는 걸, 습관으로 배버린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이, 다르게 살고 싶은 신실함이 눈 안에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동시에 딸인 나와 다르게, 나보다 더,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믿음과 사랑으로 그를 위해 또 날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떠올랐다.
그날에서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 사이는 엄마와 딸이기 전에 피를 나눈 형제이고, 각각이 하나님께서 주관하는 무른 생명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날 줄곧 집착해왔던, 내 마음 안의 엄마를 놓아줬다. 그전에 이곳에서 조용히 죽기로 한 날 그가 남몰래 아버지에게 내 생명을 맡기겠다고 기도한 것처럼 마침내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