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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책갈피

by 초동급부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이 저물어 갈 무렵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단풍잎 채집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주말에 함께 아파트 옆 작은 공원과 이웃 놀이터를 다니며 잎들을 모았지요. 상처 없고 예쁜 녀석들로 골라온 그것들을 두꺼운 책 사이에 끼워 휴일을 보낸 후 월요일 등굣길에 들려 보냈습니다.


그날 밤 아이 이에 글씨를 쓰고 예쁜 나뭇잎과 함께 투명하게 코팅해서 만들어 온 단풍잎 책갈피를 자랑스럽게 책가방에서 꺼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읽고 있던 제 책에, 아깝지만 특별히 아빠에게 선물한 스누피 책갈피 대신 단풍잎 책갈피를 끼워주며

"아빠, 이제 책 읽을 때 이거 써."


무엇을 만드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저 학교과제라고 하니, 또 그런 건 아빠랑 하는 거라고 아내가 시키니 아무 생각 없이 줍기만 했던 터라 조금 미안하더군요. 친구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신 선생님이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뒤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낙관하고 있었던 일의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소식이었지요. 역대급 충격에 어두운 제 표정을 본 아이가 "아빠 왜 기분이 안 좋아?" 회사 일이 잘 안 됐다고 하니 "아빠는 왜 맨날 그렇게 어려운 일만 해?"

"회사 일은 다 어려운 거야......"


아이는 또 "그래도 힘내, 쭈니가 있잖아~" 하며 아빠 무릎에 앉아 연신 볼에 뽀뽀를 합니다. 이후에도 계속 제 옆에 찰싹 붙어서 등을 쓰다듬으며 "기분 풀어, 기분 풀어" 고개를 내리고 얼굴을 돌려 굳은 표정을 올려 보며 "응? 응?" 딸 같은 아들입니다.

기계처럼 모드가 바뀌어 "아빠, 쭈니 덕분에 기분 좋아졌어, 놀자~" 하고 싶지만 그게 안 되는 사람이라 그것이 되지 않아 미안한 아빠라 더 가슴이 아습니다.


며칠 지나 책갈피를 꺼내 보았습니다. 그 밤엔 보지 못했는데 나뭇잎이 웃고 있더군요. 기분풀라며 미소 짓던 아이의 모습처럼 말이지요.


일로 인해 아이와 가족에게 미안했던 경험들 많으시지요? 하지만 그 미안한 마음이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주는 것도 같습니다.


아이가 꾹꾹 눌러쓴 삐뚤빼뚤한 고마운 마음...

함께 웃고 있는 잎의 색이 피가 되고 무늬가 핏줄이 된 것처럼 제 심장에 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이의 짧은 글에 담긴

저작권은 그 랑을 깊이 간직하고 오래 지켜주 싶은 아빠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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