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 중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글을 쓴 작가가 있었다. 그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거나 혹은 성장시키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이라 느껴졌다. 그의 글쓰기를 하는 이유를 읽다 보니 나는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를 생각해봤다.
퇴사 후 우연한 기회로 자영업을 시작하였다. 나는 대학교 앞에서 카페를 운영했었고, 그때 만난 몇 명의 손님들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것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손님 중 2명은 손님에서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동료가 된 손님은 나에게 책을 읽는 이유를 알게 해 주었다. 그 친구들은 카페에서 시간이 날 때면 항상 책을 읽었고, 그 모습을 1년간 지켜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책을 읽을까?"
왜 책을 읽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 친구들 중 한 명은 자신이 가장 재밌게 읽었다는 책을 빌려주며, 그냥 재밌으니 읽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 친구가 건네준 책은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이었다. 그 책을 시작으로 철학 서적 위주로 독서를 시작했다. 그리고 책의 저자들이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라고 불리는 독자가 있기 때문에 글을 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체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아마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글을 쓰는데 읽을 사람이 없다면 아마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일기로 글을 쓰기도 하겠지만 책 혹은 이렇게 공개적인 App을 사용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라 불리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썼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누군가로 불리는 독자가 나의 글을 통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글을 쓰는 이유에 포함이 된다. 또 생각해보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좀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내 글을 읽어줄 독자가 한 명은 있을 거라 믿고, 나의 글을 신뢰하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이왕이면 인정도 받고 공감도 받고 싶어서 글을 쓴다. 내가 읽은 책들의 작가들도 사실 나처럼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는지 많이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책을 읽다가 공개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를 하나 더 꼽자면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서이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부모님 두 분은 예술 쪽에 종사하시고, 동생이 있는 작가가 꿈인 국문학과 학생 손님을 만났다. 그 손님과 우연한 기회로 대화하게 되었었는데, 그 손님은 자신의 불우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모에게 외면받은 자신의 상황과 심리적인 고립감으로 환청이 들렸고 잘못된 선택을 했던 이야기였다. 사실 자신의 취약한 점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믿을 만큼 깊은 관계에 있는 타인에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너무 힘이 들고 답답할 때는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랄 때가 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처음 보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상황을 케어해줄 만한 지식과 경험이 없었다. 그냥 무료 커피를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손님이 나를 다시 찾아왔었다. 아마 그날은 내가 좀 바빴고, 아마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내 할 일을 끝내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간이 꽤 흘러있었다. 작가 지망생 손님은 이미 가고 없었다. 그리고 예전에 곧 군대를 가는데 가기 전에 인사하러 온다는 그가 한 말이 기억났다. 그날 이후 작가 지망생 손님은 보지 못했다.
아마 지금은 그 학생이 군에서 제대했을 것이다. 혹시나 그 작가 지망생 손님이 쓴 글이 있는가 싶어서 브런치에서 여러 글들을 읽고 있지만 아직은 못 찾았다. 지금의 나는 무료 커피는 못주지만, 백수라 여유는 생겼다. 그냥 혹시나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다면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신호에 대해서-백취생의 생각>
살면서 많은 신호를 본다. 신호등의 초록불처럼 눈에 보이는 신호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느낌으로 전해지는 신호도 있다. 대부분 느낌의 신호는 나의 생존을 위해 나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예로 배고픔의 신호는 나에게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하게 해 주고, 반대로 배부름 신호는 과섭취로 인한 질병에 걸리지 않게 도와주며, 두려움은 나에게 해가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느낌의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올바르게 대처하는 행동은 우리를 건강한 상태로 생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