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출장 중 사색 (18)

근거 없는 자신감에 관하여

by 백취생

어느덧 18번째 글을 쓴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1편 정도 글을 쓰기 때문에, 중국 출장을 나온 지 17개월이 넘었다는 말이 된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는 국내에 공장이 없다. 모든 공장이 해외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이 회사에 근무한다면 나는 계속 해외 출장을 다녀야 할 것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다른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다. 아무래도 이 생활이 계속된다면 나는 불행할 것이다. 근거 있는 추측이다.


우연한 기회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내가 지원한 회사들 중 현재 회사보다 규모가 큰 곳 중 한 곳이다. 온라인으로 면접을 본다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직접 대면 면접을 보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새 정장도 마련해야 했고, 그렇게 단 한 번의 면접을 위해 약 100만 원을 썼다.


면접장에 도착했을 때,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인원은 나를 포함해 단 두 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면접 시작 전 비는 시간이 있어 잠시 내 경쟁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렸다. 게다가 학벌, 외국어 실력 등 여러 조건에서 나를 압도했다. 심지어 잠깐의 대화 속에서도 그의 인성마저 훌륭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면접장에 오기 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어쩌면 한국에서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겠다.'라고 생각한 기대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국민학생이던 시절 나는 꿈이 많았다. 서울대라는 곳에도 입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음만 먹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많은 근거를 보여주었다. 중학교 나의 IQ는 89였고, 이런 IQ는 내가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근거가 되었다. 달리기에 자신이 있어 운동선수가 하고 싶었지만, 대구 체전에서 탈락한 성적이 근거가 되어 나는 운동선수의 꿈을 접었다. 그렇게 세상이 나에게 보여준 근거에 따라 나의 꿈은 현실에 맞춰 계속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 전 꿈이 없다는 것은 자신감이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나는 10대에 가장 자신감이 있었고, 지금은 자신감이 없는 중년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10대의 나는 꿈이 있었지만 40대의 나는 꿈이 없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내가 다시 이렇게 해외에 출장을 다니며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약 10년 전 이 생활에 지쳐 퇴사를 결심했었는데, 다시 이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보니 가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난 어떤 삶을 살고 싶었지?


통화 중 여동생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어렸을 때 꿈이 가장 컸어.'


나는 꿈이 컸다. 그리고 그런 꿈이야기를 남에게 하기를 좋아했었나 보다. 시간이 흐른 후 타인의 입으로 과거 내가 했던 꿈 이야기를 다시 들었을 때, 현재의 내 모습과 그 꿈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에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래도 그 감정은 부끄러움인 것 같다. 큰 꿈을 이야기하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노력이 과연 충분했냐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네"라고 답 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이 현실이 비록 괴로울지라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더 이상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없어졌다. 수많은 벽들을 경험하고 자신과 타협하며, 회피를 선택했다. 부딪혀보고 안되면 빠르게 포기했고, 선택 가능한 영역에서 가장 나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다. 그 결과 지금 나는 후회도 없지만 자신감도 없어졌다.



면접을 본 지 한 달 후,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다. 예상대로 탈락이었다. 이미 탈락에 대한 근거가 있었기에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었고, 그래서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에 직접 가서 면접을 본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화상으로 면접을 보았다면, 경쟁자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결과 발표일까지 막연한 기대감에 일에 집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최종적으로 떨어졌더라도 화상 면접이었기 때문에 탈락했을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이렇다.


나의 나이는 어리지 않고, 만약 내가 운이 좋아 최종 면접까지 가게 되더라도, 만나게 되는 경쟁자들의 객관적인 스펙은 나보다 좋다. 그들은 더 많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


백수 시절 자신감이 사라지는 많은 근거가 쌓였다. 그러다 우연히 5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취업을 하게 되자, 갑자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이직 시장에 계속 도전하다 보면 분명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자아가 있다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이 만든 이론이다. 그는 이 개념을 이용해 행복에 대해서 설명을 했었다. 현재의 순간을 실제로 살아내는 자아인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을 저장하고 해석하는 '기록하는 자아'가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다. 즉, "지금 내가 행복한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경험하는 자아'이고,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이 기록하는 자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를 보았을 때 전반적으로 지루했지만 마지막 장면이 재미있었다면, ‘기록하는 자아’는 그 영화를 “재미있는 영화였다”라고 기억한다. 이것이 바로 피크-엔드 법칙이다. 기록하는 자아는 특정 순간의 강렬한 경험과 끝맺음을 중심으로 과거를 해석하기 때문에, 실제의 경험과는 다르게 기억을 왜곡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결정을 내릴 때, 경험하는 자아보다 기록하는 자아의 판단을 더 크게 따르는 경우가 많다.


나의 이직 경험도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직 과정에서 수많은 회사로부터 거절을 당했지만, 결국 내가 능력에 비해 과분하다고 여긴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이때 ‘기록하는 자아’는 그동안의 고통스럽고 좌절된 경험들은 잊어버리고, 단 한 번의 통쾌한 성공만 강렬하게 남겨 놓는다. 그래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경험하는 자아'는 현재의 나를 행복하기 위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 선택에 대한 결과는 '기록하는 자아'에게 넘긴다. 그래서 근거 없는 자신감은 '기록하는 자아'의 왜곡에서 비롯될 수 있다. 내가 순간의 행복을 위해서 살다가 운이 좋아 어떤 좋은 결과를 이루었지만, 때로는 '운이 좋았다.'라는 과정은 빠지고 결과만 남게 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노력으로 이루었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순간의 경험을 충실히 즐기면서도 기록하는 자아가 중요한 근거들을 왜곡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요즘 글을 쓰는 이유도 그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과거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과 선택을 했는지를 기록함으로써, 기록하는 자아의 왜곡에 속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게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 '기록하는 자아'는 현재 내가 행하고 있는 생각과 행위들은 잊어버리고 결국 하나의 결과만 기억할 거이다.


"출장은 유익했는가?"


그리고 나는 이 질문에 긍정적인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오늘도 '경험하는 자아'에게 행복은 잠시 포기하고 고통을 강요 중이다. 언젠간 나도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출장 중 사색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