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점에서 보는 사랑에 관하여
관점(觀點)을 말 그대로 풀이하면, 보고 점을 찍는 것이다. 점을 찍는 것은 무엇인가를 끝을 낸다는 것이고,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무언가를 보면 판단을 한다는 의미와 유사하다.
우리는 서로가 가진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특히 성인이 되고 나서는, 관점의 차이를 불편해서 인정하지 않거나, 혹은 불편하지만 억지로 인정하느냐 두 가지 경우로만 나뉘는 것 같다. 아이일 때는 없던 견해의 견고함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관점의 차이를 쉽게 수용하는 듯 보이는 사람조차,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면 그 태도는 인정이라기보다 "그래, 네 관점도 있겠지."처럼 무시에 가까웠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다 보면, 타인과 나의 관점의 차이를 깊이 이해하려 애쓰는 것이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상과 사물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물리학 관점에서는 열역할 제2법칙과 엔트로피 법칙으로 이를 설명하고,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의 관점도 시간에 따라 변한다. 10대였을 때의 나의 견해와 그에 따른 관점은 현재 나의 그것 과는 다르다.
견해(見解)의 발생과 관점(觀點)의 고착화
결론적으로, 현상과 사물은 변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관점 또한 변하기에 나는 하나의 현상을 통해 어떤 견해를 얻을 때마다, 그것이 정말 진실일까를 자주 되묻곤 한다. 또한 불확실한 현상과 불확실한 관점이 만나 하나의 결과를 이해할 때 얻어지는 견해(見解)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견해는 관점을 만들고 관점은 판단을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결과는 다시 견해를 가지게 한다.
무작위로 일어나는 결과지만,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을 의미하는 견해는 일정한 경향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살다 보면 어떤 결과들은 더 자주, 더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믿게 된다.
한 개인의 관점과 견해는 상호작용을 하는 형태를 가진다. 결과는 달라도 그 결과에 따른 해석은 항상 비슷하고, 그에 따른 견해의 최빈수(가장 자주 나타나는)가 다시 관점으로 변모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주 부족하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자주 충분하다고 느낀다. 이런 관점이 선택에 영향을 미치면, 그 결과들은 비슷해질 확률이 높아진다. 경험상 평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을 관찰해 보면 불평불만이 많을 만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불평불만을 할만한 결과들을 만드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타인의 관점을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의 삶을 불행하지 않게 할 확률을 높인다고 믿는다. 타인의 관점에 대해 살펴보면 어떤 관점들은 내 삶의 순간순간 중요한 판단에 많은 도움이 된다.
<사랑과 관련된 견해와 관점>
나를 아낀다고 느끼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것을 느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느낌에 약한 편이다.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좀 더 머릿속으로 생각해야 이해하는 편이다. 나는 DSM-5 ASD(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포함되는 아스퍼거 장애가 있다고 추정된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약간의 그런 경향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다. 주변으로부터 그런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관련 서적의 독서를 통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이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닌데, 그들이 생각하는 평균의 타인에 비해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람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의 글에서도 나의 이런 상태에 대해서 기술했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대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서 보이는 반응이 평균의 사람들보다 조금 늦거나, 다를 수 있다. 아주 기뻐해야 할 때, 왜 기뻐해야 하는지 이유를 몰라서 덜 기뻐한다던지 아주 슬퍼해야 할 때 왜 슬퍼야 하는지 몰라서 덜 슬퍼하는 그런 식인데, 보통 타인이 화나 짜증이 날 때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 잘 이해해주지 못하면 그들은 내가 공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내가 생각하는 누군가 나를 아낀다는 견해는 아래와 같다.
1. 나에게 화를 내고 비난을 하다가도 나를 걱정하며, 친절하게 대해준다.
2. 종종 대화하며 답답하다고 말하면서도 나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
3. 마지막으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 때 자주 나에게 밖에 나가서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한다.
(사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말을 잘 안 한다.)
경험상 이 세 가지 조건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은 나를 많이 아끼는 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아내는 현재 나를 가장 많이 아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어머니가 나를 아주 많이 아꼈다. 앞서 말한 두 사람은 신기하게도 세 가지 조건에 맞는 행동을 했다.
아내에게 '아끼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일까?'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아내는 사랑하니까 아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랑은 원인이고, 아끼는 것은 결과라고 했다. 그래서 반대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아끼는 것의 조건이 위의 3가지가 맞다면, 아내는 사랑하기 때문에 위의 세 가지 행동을 한다는 말이 된다. 우리 어머니도 나를 사랑했기에 그랬었구나 하는 것을 우리 아내를 보며 깨닫는다.
요즘 아내를 보면 딸을 많이 사랑한다는 생각을 한다. 대신 나를 예전보다 덜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살아보니 아내가 날 좀 덜 사랑해주어도 좋은 것 같다. 아내가 딸을 아끼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사랑은 아끼는 것이고, 아낀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가스라이팅과 아끼는 것은 비슷해 보인다.
자녀를 사랑하는데 화를 내고 통제를 하려는 마음은 자신을 자녀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무의식적 방어기제인데, 우리가 자녀에게서 나 와 닮은 모습을 볼 때 분노, 짜증, 혐오로 들어 난다는 것이다. 특히 결핍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혐오가 심한데, 이는 타인에게서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면 결핍이 작은 사람보다 더 큰 분노, 짜증, 혐오를 보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아낌의 과정 중에 분노, 짜증, 혐오가 아낌을 받는 존재의 생존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심한 경우에는 이것은 사랑에서 비롯되는 아낌이 아니라 결핍에서 비롯된 가스라이팅이 된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내용은 아내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사색이었다면, 이제는 사랑에 대한 나의 관점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참고로 난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 떡이 생길 확률이 높다. '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몇 년 전, 사랑이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은 나에게 다양한 견해를 가지게 해 주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능력 혹은 기술이라고 이야기했다. '사랑은 기술' 이것이 나의 사랑에 대한 관점이다.
9월 사랑하는 남동생의 결혼식에 축사 제안을 받았다. '어떻게 축사를 마무리할까' 고민하다가 사랑에 대한 나의 관점을 알려주는 것으로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진심으로 결혼 축하한다.
이렇게 축사를 끝낼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결혼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노하우 딱 하나 정도는 말해야 될 것 같다.
보통 연애할 때, 상대에게 보이는 모습은 대체로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그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될 거다. 왜냐하면 둘 다 모든 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으로 너의 평생 동반자가 될 신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왜냐하면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도 이해가 안 될 때가 오기 때문이다. 사실 형도 그렇고 대부분 부부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상대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오면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 되더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시험 공부할 때나 사용하고, 이제 너는 너의 신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살아보니 평생 함께 할 사람이란 것을 서로 인정하려고 노력만 해도, 자동적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는 따라오더라. 너도 알겠지만, 시간은 금방 간다. 사랑만 하기도 모자란 시간이더라. 이해 안 되는 걸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마라.
사랑의 기술이란 서로의 관점을 그대로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사색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