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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Mar 14. 2023

눈치를 삽니다.

눈치도 결국 사람따라 가더라.

 나는 주변사람의 눈치를 많이 본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너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거나 "눈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기 때문이다.


"눈치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눈치가 없다.'의 눈치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공감 능력을 의미하는 것 같다. 따라서 공감능력이 풍부한 사람은 눈치가 있는 사람이고, 반대로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눈치를 많이 본다.'에서 눈치는 남의 생각, 태도 등을 살핀다는 의미로 쓰인다. 같은 눈치지만 문장에 따라 하나는 행동을 의미하고, 하나는 능력을 나타낸다. 따라서 종합하면 나는 남의 생각과 태도 등을 많이 살피지만, 남의 마음을 잘 알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씁쓸한 결론이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타인의 행동과 생각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마음이 어디에 있고 무슨 기능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데, 과연 타인의 생각과 태도만 살펴서 타인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완벽히 알아낼 수 있을까? 그래서 이제 누군가 나에게 눈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여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너도 내 마음을 모르고, 나도 종종 내 마음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네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결국 우리 사이에 눈치가 없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일이고, 오히려 행동과 생각으로 타인의 마음을 알아채는 것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세상에 정상적인 사람은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밖에 없다."


 나에게 눈치 없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람들이다. 만난 지 하루 밖에 안된 사람이 나에게 눈치가 없다는 말을 한적은 아직까진 없다.


 어느 날 문득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왜 내 주변에는 정상이 없는 걸까?"

 그래서 나는 "정상이란 머야?"라고 도리어 친구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친구는 아까보다 더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왜 내 주변에는 정상이 없는 걸까?"


 나는 순식간에 눈치가 없거나 비정상이 되어버렸다. 친구는 그냥 자신의 한탄을 들어주기를 바랐고, 난 그냥 친구가 한탄을 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이런 나의 행동은 친구를 위한 행동이면서 나를 위한 행동이지만 친구는 나의 행동을 눈치 없는 행동으로 단정 지었고, 우리는 조금씩 사이가 멀어졌다. 그 친구는 자주 나에게 자신의 주변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친구로서 친구의 아픔에 대해 공감해 주어야겠지만, 어째 시간이 갈수록 친구의 반복되는 불평불만에 나는 자주 불편함을 느꼈다.


법정 스님의 <인연 이야기>에서 부처님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도를 배우는 데는 친구가 필요 없다.

 착한 벗을 만나지 못했거든

 차라리 홀로 선(善)을 닦을 것이지

 어리석은 사람과 짝하지 말라


 청정한 행을 스스로 즐기거니

 친구를 사귀어 무엇하리

 홀로 선에 머물면 근심 없으니

 마치 빈 들의 코끼리 같으리라


<법구비유경> 교학품


 나는 20대에는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선배들도 많았을뿐더러 외향적 성향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것에 크게 어려움이 없던 나는 그것을 나의 무기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불혹이 되었다.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이 재산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을 좀 가려서 만나야 한다는 가치관이 생겼다. 살아보니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그릇이 작은지 알게 되었고, 나의 그릇에 맞게 무리하지 않게 사람을 사귀어야 인연을 보다 향기롭게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근심을 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홀로 있을 때 보다 오히려 더 외롭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음 수양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을 방해하는 인연을 벗어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백수생활하며 깨달았다. 나는 의지가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근심을 주는 인연은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근심이 생겨도 이어가는 인연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이다.


"나는 왜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눈치가 없어질까?"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여자친구였을 때 아내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어했다. 그런데 나의 역할이 남편에서 아버지로 바뀌자 나는 눈치 없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다. 회사서도 만찬가지였다. 신입 때는 모르는 것이 많아 할말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의 생각을 말하자 눈치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퇴근 후 피곤하다고 육아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나에게 아내는 눈치가 없다고 했다. 회식자리에서 다들 2차 가는 분위기지만,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어 집에 가겠다고 말하는 나에게 동료들은 눈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눈치 없다는 말이 듣기 싫어 내 나름대로 육아에 참여하였고, 회사 회식에서 술이 취해도 2차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들은 눈치 없다는 말을 계속했다. 나름 열심히 육아에 참여했지만 아내 눈에는 전과 차이 없어 보였고, 회식에서 힘들어도 참고 2차를 참석했지만, 다들 3차를 안 간다고 눈치를 주었다.


 사실 나는 눈치가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과거 친구집에 놀러 갔다 와서 어머니에게 그쪽 친구와 엄마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이지만 너 정말 눈치 없는데, 네가 기분 나쁠 정도면 그 사람들이 눈치를 많이 줬나 보구나." 왜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눈치가 없어질까? 결론적으로 나는 관계가 가깝다면 어떤 행동을 해도 그 사람이 날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눈치도 사람 따라 가더라."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눈치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지인은 사이가 가까워도 나에게 눈치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지인을 만나면 서로 눈치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너무 편했다. 대화를 해도 좋고 대화를 하지 않아도 좋았다. 자주보아도 좋았고, 자주 보지 못해도 좋았다. 다만 그런 인연은 몇 없다. 그리고 눈치를 주는 사람 앞에서는 철저하게 조심해서 행동한다. 그들이 기분이 좋으면 나도 기분이 좋기 때문에 그들과는 대체로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만난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그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여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그래서 가끔 나는 사람을 가려 만나기도 한다. 나에게 너무 많은 눈치를 요구하는 사람은 나를 눈치 보는 사람으로 만들고, 나는 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눈치보는 것도 눈치를 줘야 본다. 결국 눈치도 사람을 따라 간다. 나는 눈치 보는 데 사용할 에너지를 함께 더 좋은 시간을 보내는데 쓰고 싶다. 그래서 타인과의 만남에서 눈치를 주지 않으려한다. 이런 나의 노력은 지금 만나고 있는 인연 앞으로 만나게 될 인연에게 서로 부담없는 편안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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